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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신수원 <오마주> 단평

여성 감독은 어떻게 태어나, 사라지기 쉽고, 다시 버티는가

by 성상민

* 프리뷰룸을 통해 보았습니다. 실제 상영 버젼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2010년 자신이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기 까지의 일을 자전적으로 다룬 <레인보우>로 데뷔한 신수원 감독은 최근까지 정말 쉼없는 길을 달려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2011년에는 MBC의 다큐멘터리 특별 기획 <타임>에 참여해 <여판사>의 홍은원 감독을 중심으로 한국의 초기 여성 감독의 등장과 사라짐을 다룬 <여자만세>를 만들고, 2011년에는 이현승 <푸른 소금>의 각색에 참여하고, 2012년에는 (상당히 제작부터 개봉까지 기묘함의 연속이었던, 본래 보건복지부의 출산장려 캠페인으로 기획되었으나 모든 감독들이 그 길을 따르지 않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가족시네마>에 참여해 단편 <순환선>을 만들었죠.


이후 이다윗을 주연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계급의 연쇄를 그린 <명왕성>(2013), 서영희와 권소현을 주연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연쇄를 그린 <마돈나>(2015), 문근영을 주연으로 SF를 가미한 환상동화적 작품이었던 <유리정원>(2017), 김호정과 정하담을 주연으로 각자도생의 사회를 그린 <젊은이의 앙지>(2020)에 이르기까지 최소 2-3년 간격으로 꾸준히 장편을 만듭니다. 심지어 이 사이에는 2018년 tvN 단막극 프로젝트 <드라마 스테이지>에 참여해 <물비늘>을, 2020년에는 해외문화홍보원의 국가 이미지 홍보용 단편 <춤, 바람>까지 제작했어요.



이 필모그래피를 제법 상세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 신작 <오마주>가 <레인보우>를 만들고 10년 이후 신수원 감독이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성격이 작품의 축 중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수원 감독은 작품의 완성도나 정합성에 상관 없이 계속 꾸준히 장편, 단편을 가리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 왔지만 <명왕성> 이후로는 점차 초점에서 멀어지고 있던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신수원 감독이 좀 더 영화를 잘 만들었으면 되는게 아니냐고 ‘매우 쉬운 답’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유리정원>부터 신수원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꽤나 아쉬움을 느꼈던 걱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답으로 모든 문제를 푸는 것이 가능할까요? 분명 영화는 흥행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쉽고, 어떤 이유로든 간에 흥행이 되지 않으면 바로 잊혀지기 쉬운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이 강한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꾸준히 ‘한국의 여성 감독이 너무 적고, 신작 발표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캠페인하고,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가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가 되기 쉬운 이들에게 지원에거 가점 등을 더하는 방식으로 제작 촉진을 유도하는 것은 단순히 ‘더 잘 만들면 된다’, ‘왜 진작에 흥행하는 작품을 만들지 않았냐’는 말로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오마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1950-60년대 같은 시절보다는 여성 감독의 활동 반경이 살짝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한국 여성 감독의 활동은 많은 고초의 연속입니다. 특히 결혼을 이미 하여 육아를 하거나 자녀를 길러야 하는 여성이라면, 가족 간의 관계에서 더욱 갈등에 처하기도 쉽습니다. 작품이 그나마 흥행을 한다면 조금은 부담감이 덜하겠지만, 흥행의 성과는커녕 손익분기점도 넘기기 어려운 작품이 태반인 상황에서 ‘흥행’으로 자신의 활동을 뒷받침하기도 어렵습니다.


직접적으로 <레인보우>의 후속작을 자처하지는 않으나, 작품은 여러 면모에서 이 작품이 자신이 처음 영화 감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시기를 다룬 <레인보우>의 후속적 성격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지완’ 역을 맡은 배우 이정은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감독 자신과 비슷하게 메이크업하고, <레인보우>에서는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어느 덧 20대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레인보우>에서 계속 드러났던 안정적 직장을 포기한 뒤 감독의 길을 택하는 선택은 <오마주>에서는 결국 그 불안감이 현실이 되고만 상황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계속 작품을 만들고 개봉을 하지만, 개봉관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고, 당연히 기록되는 흥행 실적도 좋지 않습니다. 작중에서 지완의 작품을 여럿 함께한 여성 프로듀서도 영화계에서 은퇴할 뜻을 드러냅니다. 설상가상으로 지완의 남편(권해효)는 자신이 곧 은퇴하는 상황에서 지완이 계속 돈이 안 되는 영화를 하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고, 아들(탕준상)도 딱히 자신의 활동을 응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와중에 자신의 옆집에 홀로 살고 있던 젊은 여성에게는 뭔가 일이 생긴 것만 같습니다. 어디서도 자신의 편을 발견하기 어렵고, 불안함이 가중됩니다.


이 상황에서 <오마주>는 하나의 축을 더 추가합니다. 바로 2011년 신수원 감독이 MBC <타임>을 통해 제작한 <여자만세>를 모티브로 한 순간입니다. 영화는 감독 자신의 경험을 조금 비틀어내 한국영상자료원을 연상하는 국가 기관에서 한국 두 번째 여성 감독의 연출작인 홍은원의 <여판사>를 복원하려는 프로젝트로 바꿔 풀어냅니다. (실제로도 <여판사>는 2015년에 필름이 발굴, 복원되었던 작품입니다. https://m.khan.co.kr/culture/movie/article/201606062128015/) 복원 비용도 터무니 없이 적고, 정말 급전 때문에 동앗줄 처럼 잡은 프로젝트이지만 지완은 이 프로젝트를 만나면서 조금씩 프로젝트가 비추는 대상이 점차 자신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완에게는 환각인지, 아니면 자신의 심리가 반영된 것인지 이미지의 등장인지 제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역사가 중첩되기 시작합니다.


그간 신수원 감독의 작품은 <명왕성>이나 <마돈나>, <젊은이의 양지>처럼 탈출구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구조에 갇힌 이들의 저항과 파국을 중심으로​ 그리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리얼리즘이기 보다는, 현실을 그리면서도 약간의 판타지나 비현실적 요소를 더해내 때로는 구조를 더욱 확대하여 보여주고 때로는 구조를 파쇄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였어요. 그것은 때로는 신수원 감독 특유의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욱 깊이 있게 와닿을 수 있는 연출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 사이의 연결고리가 상당히 위태하여 조금만 삐끗하면 몰입도 무너지기 쉬운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환상성을 가장 강조한 <유리정원>에서도 반복되는 상황이었죠.


<오마주>는 계속 되풀이되었던 이 한계를 넘어, 드디어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더욱 유려하게 이어냅니다. 지완은 이미 한계에 놓여 있습니다. 영화 감독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의지도, 주체성도 모두 위기에 놓였고,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자신들에게 계속 어머니의 역할을 요구합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성에게 몰려오는 위협적인 소식은 중년 여성인 지완을 더욱 핀치로 몰아넣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완이 만난 <여판사>의 복원 프로젝트는 과거에도 더욱 심한 형태로 반복되었던 역사를 다시 마주하고, 오랫동안 끊겨 있던 ‘여성 감독의 생존사’를 다시 기록해 ‘미싱 링크’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에요.


그 과정에서 이 ‘잊힌 역사’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지완의 시각으로, 다시 인지력으로 느낄 수 있는 역사입니다. 이는 단순한 ‘환각’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것이 한 개인의 심리적 상황을 넘어 산산조각 분산되어 있었어도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 그 역사가 만나는 순간, 또다른 생동이 가능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은 환상적 이미지를 요구하고, 환상은 이미지가 되어 현실과 만남을 시도합니다. <오마주>의 중후반부는 오랜 시간 신수원이 시도했던 환상적 현실, 현실적 환상의 만남이 드디어 접합이 이뤄지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오마주>가 10년 이상 계속 영화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쉼없이 달려왔던 신수원 감독의 ‘생존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박남옥이나 홍은원 같은 초기의 여성 감독, 이후 임순례나 이정향, 정재은 같은 그 이후의, 또는 이경미, 김보라, 윤가은, 이완민 같은 현재의 여성 감독이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버티려고 했는가를 어렴풋이 보이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 이후 약 10여년 만에 다시 자기 자신을 비춤으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여성 감독은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때로는 가늘고 느슨한, 그러나 때로는 결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연대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드러냈습니다. 현실에 대한 포착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영화 같은 창작 매체에서 가능한 과거와 현실의 환상적 만남을 통해서 말입니다. <레인보우>가 신수원 감독의 첫 발자국이었다면, <오마주>는 어떤 의미로는 신수원 감독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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