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고 뻔해도, 애니메이션으로서는 흥미로운.
일본 장기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그렇듯 <원피스 필름 레드> 역시 일종의 ‘본편과 이어질듯 하지만 크게는 아닌 스핀오프성 작품’입니다. 동시에 2009년 <원피스 필름 스트롱월드> 이래 <원피스>의 원작자 오다 에이이치로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원피스 필름’ 시리즈의 최신작입니다. 한편으로 이번 작품은 한동안 작품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주인공 ‘루피’의 정신적 지주 ‘샹크스’에게 ‘알고 보니 딸이 있었다’는 설정을 넣어 화제를 모으고, 그 딸 ‘우타’의 노래 역할로 <시끄러워>(うっせぇわ)로 일약 스타가 된 Ado까지 기용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은 어떨까요. 원피스 필름 시리즈가 다른 일본 장기 애니메이션 극장판과 달리 1년 주기가 아니라 최소 2년 이상의 긴 텀을 가지고 나오는 만큼 작품의 애니메이팅 퀄리티는 상당히 좋습니다. 근래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2D 작화와 3D 폴리곤이 정말 유려하고 자연스럽게 컴포지트되어 있으며, 덕분에 액션 장면과 뮤지컬 스타일의 장면이 유려하게 섞여 들어갑니다.
동시에 작품 연출에 있어서도 실험적인 측면이 많고요. 일본 2D 디지털 셀 특유의 작화에 전통 그림을 연상시키는 선 강한 작화가 섞이고, 다시 이 둘을 모두 접합하는 스타일의 작화가 더해지는 등 이래저래 ‘원피스 연재 25주년 기념 극장판’에 헌정하는 시도가 많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Mrs. Green Apple이나 Vaundy를 비롯해 근래 일본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이들이 대거 작곡에 참여한 Ado의 노래도 인상적입니다. 돌비 애트모스 믹싱도 생각 이상으로 능숙하게 이뤄져 공간감을 확실하게 주고요. 이렇게 최소한 보고 듣는 재미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스토리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이 작품이 상대적으로 스핀오프 성향이 많다지만, 그래도 작중 중요 캐릭터인 ‘샹크스’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극장판용 스토리에 사용했다는 생각이 강한 구성입니다. 극장판 자체의 임팩트를 주기 위한 캐릭터의 행보라고 생각해도 캐릭터가 낭비된다는 인상이 강한 면이 있습니다. 동시에 이 캐릭터에 집중을 하다보니 작품의 구성이 액션 이상으로 뮤지컬에 가까워지는 측면이 강한데, 실험적인 시도라는 차원에서는 흥미롭지만 ‘원피스 본래의 액션’이 끌리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강해질 측면도 있어요.
물론 ‘일본 장기 애니메이션 극장판’ 자체가 본편과 또 다른 재미를 주기 위해서 새로운 캐릭터나 특성을 창출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편과 이질적인 면모를 가지는 한계도 고려하긴 해야할 것입니다. (마치 극장판만 되면 착해지는 도라에몽 퉁퉁이 마냥)
어떤 점에서는 이미 <원피스>가 일본에서는 국민 애니메이션급이고,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인기가 강한 만큼 이 기본 설정-캐릭터를 안다는 인식 아래 25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을 쓰고 한바탕 실험을 해본 킬링타임 작품이라는 인상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물에 익숙하려면 일정한 허들이 있어야 겠지만,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연출이라는 측면에서는 2022년 현재 일본 상업 애니메이션이 어떠한 단계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있어요. 원피스를 좋아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시험 삼아 도전해본다면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