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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Aug 17. 2022

<헤어질 결심> 단평 : 장르, 신체, 권력, 변형

박찬욱과 정서경이 만든 정석과 파괴의 길.

※ 작품의 중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박찬욱은 참 독특한 감독입니다. 2000년대 CJ를 위시한 신규 재벌 자본의 진출 때 여러 감독이 수혜를 받았지만, 그 흐름의 수혜를 제대로 받은 사람 중에 시계열에 의한 변화는 있어도 그 이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나 <3인조>의 투박해도 기묘한 분위기를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로 승화하고 있죠. <복수는 나의 것>부터는 일반적인 대중 흥행 영화에서는 투자가 꺼려지는 소재를 기꺼이 계속 가져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박찬욱 작품의 특징이라면, 이제는 하나의 클리셰가 완성된 각각의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한편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장르가 지닌 어떤 한계, 또는 태생적인 모순을 스스로 파괴하거나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친절한 금자씨>가 일본에서 나왔던 ‘여성 교도소물-복수물’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로맨스를, <박쥐>(그리고 <스토커>)에서는 크리쳐물과 뒤섞인 싸이코 스릴러를, <아가씨>에서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원작 <핑거스미스>의 퀴어-시대극-스릴러라는 각각의 장르를 충실히 따라가는듯 하다가도 결국 어느 순간에서는 장르의 틈새를 향해 돌진해나가는 것입니다.


<헤어질 결심>이 따라갈 것 처럼 느껴지는 장르의 흐름은 소위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추리 스릴러죠. <이창>이나 <현기증> 등을 통해 알프레드 히치콕이 하나의 정형을 매만진 장르이자, 이후에도 브라이언 드 팔마 등이 계속 매만졌던 장르 형식입니다. 수완있는 남성 형사나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건과 연루된 매혹적인 여성과 관계를 맺습니다. 여성은 아무리 봐도 사건의 핵심적인 용의자 또는 참고인이지만, 여성의 매력에 주인공 남성은 그만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 사건은 더더욱 확대됩니다. 작품에 따라 최종적인 귀결은 각자 다르지만, 이래저래 ‘합리적-이성적이었을 남성이 여성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만다’는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도 얼핏 보면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장해준(박해일)은 ‘에이스’라 불릴 정도로 실력 좋은 형사에요. 끈질기게 범인을 쫓아가는 체력은 물론, 사건의 핵심에 이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송서래’(탕웨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한국계 중국인인 송서래는 밀입국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왔는데, 같이 밀입국한 사람들은 다 송환이 되었는데 무슨 일인지 출입국사무소에서 일했던 기도수(유승목)과 결혼을 하고 한국에 계속 남아있어요. 그런데 기도수가 호미산의 가파른 절벽에서 추락사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생전 기도수는 소유욕이 강한 남자였고, 송서래를 교묘하게 안 보이는 곳만 골라 때리는 가정폭력범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송서래 같아요.


하지만 장해준은 수사차 송서래를 만난 순간부터 조금씩 그녀에게 빠지고 맙니다. 동료 형사인 오수완(고경표)가 아무리 생각해도 송서래가 범인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장해준은 수사를 명목으로 계속 송서래를 만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송서래에게 유리하도록 수사를 이끌어 나갑니다. 게다가 계속 잠복수사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장해준은 신기하게도 송서래가 옆에 있으면 매우 깊게 잠도 잘 수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은 해결되고 이 둘의 관계는 끝나는 듯 싶지만, 그렇게 정리될 것 같은 순간에 작품의 시간은 13개월 후로 흘러 2부가 시작되고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제 장해준은 송서래의 새 남편인 임호신(박용우)이 사망한 사건을 수사해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따지면 일반적인 팜므 파탈 스릴러 영화처럼 송서래는 장해준을 유혹하며 이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장해준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준에게 다가가며 조금씩 해준이 담당한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찬욱, 또는 이 작품의 각본을 맡은 정서경은 이 지점에서 꽤 오랜 역사를 지닌 해당 장르의 어떤 한계를 적극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팜므 파탈’이 되는 여성은 분명 마냥 선한 존재라 말하긴 어렵지만, ‘왜’ 그 여성은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되는 걸까요? 수사에 대한 권력을 지니며, 공정해야 할 ‘권력자 남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그저 ‘팜므 파탈’의 문제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되나요?


물론 초창기 이 장르가 형성되었을 때는 ‘권력자 남성’이 ‘얼핏 연약해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 휘둘리는 것이 하나의 전복 효과를 지녔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20년대고, 1950-60년대의 권력 구도나 사회 관계-구조가 그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작품은 이 지점에 주목해, 이 장르가 그간 제대로 들여보지 않았던 ‘팜므 파탈’에 이끌리는 남성의 맥락을, 그리고 자의와 타의가 뒤섞이며 ‘팜므 파탈’이 되는 여성의 맥락을 해당 장르의 정석을 따라가는 동시에 헤집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이 둘이 지닌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입니다. 해준과 서래 모두 손이 유난히 부드러운 것은 물론 상당히 섬세하고, 예민한 존재들이죠. 그러나 이 둘이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 둘이 같아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밀입국 시도 전력이 있는, 이제는 반쯤 멸칭이 되고 만 ‘조선족’으로도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또는 재중동포), 형사와 피의자/참고인, 남성과 여성, 번듯한 정규직과 요양보호사. 이 차이는 사실은 같을 수 있는 사람이 결코 같은 대우를 받기도,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며 살기도 쉽지 않음을 보이죠.



작품은 이 같으면서도 같지 않음을 서사 뿐만 아니라 이미지로도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작품은 마치 이 장르가 처음 나왔던 1950-60년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비슷한 구도의 장면을 컴포지트(합성)시키는 연출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러한 연출은 오래된 장르를 따라가는 작품인 만큼 클래식함을 강화하는 요소로도 쓰이지만, 동시에 두 주인공이 놓인 맥락과 관계를 지속적인 이미지의 흐름과 접합으로 드러내는 연출로도 정말 효과적으로도 쓰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장르에서 주로 드러나는 ‘여성과 남성의 신체 접촉’도, 신체와 신체 사이가 지니는 관계도 단순한 성적 유혹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중요한 건 신체와 신체가 만난다는 이상으로, 어떠한 과정과 맥락과 구조의 위에서 이 신체와 신체가 만나고 있느냐니까요. 얼핏 보기에는 미시적인 한 장면에서 드러나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못한다면, 그 사이에 개입된 권력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파고 들어도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작품은 서사, 캐릭터, 1-2부의 대조되는 인물 등을 통해 이 ‘분석’을 계속 끝까지 파고 들어갑니다. 1부와 2부가 마치 거울쌍처럼 전개된다는 부분 뿐만 아니라 1부에서는 그렇게 쉽게 서래의 집을 찾아들었던 해준이 결국 2부에서는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서래를 찾지 못하는 장면, 사건의 핵심은 매우 잘 알아도 결국 ‘한국 남성’의 시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1부에서 해준의 파트너였던 수완과 달리- 2부에서 새롭게 해준의 파트너가 되는 여연수(김신영)은 ‘남성 조직의 얼마 안 되는 여성’으로서 수완보다는 사건의 핵심에는 조금 떨어져 있어도 결국 실질적인 흐름을 아는 모습들. 이러한 부분들은 영화를 ‘단서 찾기’처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놀이감’을 던져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인물, 대상, 사건, 상황에 어떻게 다가서야만 우리는 비로소 조금이라도 적확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영화적인 어법으로 <헤어질 결심>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미 이전에 각각 <색, 계>, 그리고 <연애의 목적> 등으로 성적인 관계를 직접적인 성적 장면의 결합을 통해서 능숙하게 보여주었던 탕웨이와 박해일은 직접적인 성적 관계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관능적인 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 관능이 단순히 성적 욕구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게 무엇인지를 각 배우의 관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수와 배우 양자 모두에서 단단한 입지를 만든 이정현의 해준의 아내인 ‘안정안’ 캐릭터의 연기는 비중은 낮아도 해준이 어떤 맥락에 놓여있는지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을 충실하게 잘 보여주고 있고요. 또한 이번 영화로 처음 본격적인 극영화 캐릭터 연기를 수행한 김신영의 연기는 또 다른 발견입니다. 희극 배우가 희극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극 전반을 인식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마치 이전 임하룡 등이 그랬던 것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극의 비중은 낮아도 자신이 이 극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무척 잘 아는 연기를 인상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헤어질 결심>은 정석적이지만 정석적이지 않게, 단순한 것 같지만 복잡하게, 미시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거시적으로, 기괴한 장면 없이도 정말 기괴한 상황과 맥락의 연속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찬욱은 이미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이전 작품에서도 이러한 지점들을 잘 드러낸 적이 있지만, <헤어질 결심>은 더욱 충실한 장르 이해에 기초해 다시 장르를 스스로 파괴하는 모습을 더욱 깊숙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헤어질 결심>이 작품의 전반적인 서사에서, 그리고 ‘정안’ 캐릭터의 설정상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안전해야 [하는] 경남 해변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자본이 지니는 어떤 폭력성과 얄팍함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CJ가 <공동경비구역 JSA> 이래 맺은 인연에 이어 이번 작품의 투자까지 이어지고, 다시 CJ 등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늪에 이 작품이 빠진 작품 외적의 상황은 다시 또 다른 고민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박찬욱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길을 가지 않을까요. <헤어질 결심>은 어떤 의미로는 영화 만큼이나 역설의 연속인 한국, 또는 세계 전반에 있어 박찬욱의 시선과 갈 길을 스스로 ‘결심’하는, 그리고 ‘선언’하는 작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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