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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Oct 01. 2022

오세연 <성덕> 단평 : 팬덤의 당사자성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을 '팬으로서' 묻고, 접근하다

오세연 감독은 '성덕'('성공한 오덕후'의 줄임말. '오덕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착된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변용 표현이나, 일본어 '오타쿠'보단 좀 더 범용적으로 팬 전반을 칭하는 경향이 있음.)이었습니다. 슈퍼스타K4로 이름을 알린 정준영의 성덕이었죠. 처음으로 사랑하는 가수 정준영의 눈에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팬미팅에 한복을 입고 가기도 했었고, 그 덕분인지 (KBS <주책이 풍년>보다 일찍 팬덤을 예능의 소재로 사용했던) MBC <별바라기>에도 출연할 정도였습니다. 2019년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의 '버닝썬 스캔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와 FT아일랜드의 멤버 최종훈 등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자신들이 직접 불법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정준영의 성범죄 혐의가 보도되기 시작하자 많은 팬들이 충격에 빠졌고, 오세연 감독 역시 정준영이 한 순간에 '범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준영과 최종훈 만이 유명 연예인으로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니었죠. 그 전에도, 다시 그 이후에도 결코 적지 않은 연예인이 다양한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열성을 바쳐 좋아하던 연예인이 불명예스럽게 판을 떠난 뒤 어떤 팬들은 남아 문제가 된 연예인의 결백과 복귀를 응원하고, 떠난 팬들도 그렇게 쉽게 자신이 불과 며칠, 몇달 전까지 좋아했던 연예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덕>은 바로 이 쉽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팬덤의 딜레마에서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영제인 Fanatic(광신도, 무언가에 열광하는 이들)처럼 어떤 이의 열성적인 팬덤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그 사람에게 푹 빠졌을 때 성립합니다. 개인이 지니는 고유한 특성과 면모에 의해서든, 기획사에 의해 갈고 닦아진 모습이든 한 순간에 취향을 '저격'하는 이들이 Idol이라는 말이 지니는 본래 의미처럼 '우상'이 되기도 좋죠. 팬들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물리적인 비용, 결코 쉽게 환산할 수 없는 온갖 기회 비용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그의 영원한 팬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이는 산업적인 특성상 아이돌에서 나타나기 쉽지만,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수나 배우, 정치인 등에게도 등장할 수 있죠.



하지만 100% 완벽한 사람이 없듯, 팬덤이 열광하는 이들에게도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 문제가 도저히 사과로 넘어갈 수 없는, 매우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중대한 범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감독 본인의 대사처럼, 팬덤이 결집하는 주체가 '범죄자'가 되고 말았을 때 대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요.


팬덤 외부에서는 쉽게 '팬을 그만두면 되는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에서나 말할 수 있는 군소리입니다. 각자마다 시간은 달라도, 한순간이나마 열광했던 대상이 순식간에 몰락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순간- 열광을 철회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과거에 열렬히 보냈던 애정을 회고하고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자신이 '정준영의 팬'이었다는 당사자성에 기초해서, 비슷하게 '팬덤'의 일원이었던 경험이 있으며 자신이 열광하는 대상이 한순간에 추락하고 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잡미묘한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은 처음부터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은 아닙니다. 감독 본인도 쉽게 왜 자신이 오랜 시간 정준영의 팬으로 있었는지, 그 열광들이 혹시나 정준영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는지, 간접적으로 정준영의 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미치지 않았는지를 조심스러워 하니까요.


<성덕>이 카메라로 담아낸 '팬'들의 모습도 결코 쉽게 하나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강경하게 팬덤이 저지를 수 있는 마이너스의 부작용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간 모아왔던 스타의 모습과 사인이 새겨진 '굿즈'를 버리기에는 참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한 대상에 열광했던 모습도 완벽하게 부정할 수도 없어요. 물론 잘못은 연예인 본인이 저지른 것이지, 팬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특정 스타의 문제적 행동을 비판하는 기사에 달리는 무수한 악플'처럼, 팬덤 자체가 문제의 주체는 아니더라도 결국 팬과 스타 사이가 지니는 다층의 맥락에서 때로는 진작 밝혀졌어야 할 문제가 묻히게 될수도, 그 문제를 밝히려고 노력한 사람이 규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작중에 등장하는 '박사모'의 박근혜 석방 요구 시위 모습처럼, 집단적으로 문제에 눈을 감은 채 자신들만의 정의를 내세울 수도 있죠. 감독은 무수한 질문과 질문, 그리고 그 사이의 경험담을 이어가며 조금씩 팬덤이 형성되는 맥락에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그 맥락은 크고 작은 좌충우돌과 '흑역사'와도 같은 부끄러운 과거를 회상하는 행보를 수반하지만, 그런 지난한 과정이 없이는 '팬'이 태어나는 이유에 쉽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었던 감독은 결코 쉽지 않는 자기 회고를 통해 '팬'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다큐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자신과 주변인이 생각하는 '팬덤'이 갈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도출하게 됩니다.


물론 이 역시 쉬운 길은 아니죠. 연대와 영역에 상관없이 무수한 전설을 낳은 팬덤이 최소 하나 이상은 존재했고, 점차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쉽게 누군가의 팬이 되기도 좋고, 쉽게 실수를 저지르기도 좋고, 다시 그 기록들이 꾸준히 데이터로 보존되기도 좋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행위' 자체를 폄하하는 대신, 어떻게 자신의 주체를 지키며 심각하게 자신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건강한 덕질'이 가능한지를 감독은 <성덕>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지으면서 되묻습니다. 연출 자체는 인터뷰과 자료 화면-영상의 연속에 가깝지만, 당사자성을 토대로 대중문화 내부에서 팬덤이 어떻게 구축되는지 그리고 바람 잘 날이 없는 연예계에서 팬덤은 어떠한 위치와 관계에 놓여있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귀중한 시도이자, 기록이며, 소중한 접근입니다.


<성덕>은 표면적으로는 '문제를 저지른 연예인과 그 팬'에 대한 이야기지만,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생적으로 누군가에 집중하며 애정을 표현하면서 형성되는 '팬'이 그 열렬함과 다시 어떠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모로 <성덕>은 넥슨의 오래된 온라인 게임 '일랜시아'에 여전히 남은 팬의 모습을 다룬 박윤진 감독의 <내언니전지현과 나>와 더불어, 또는 1990년대 일본 록 밴드 'X JAPAN'을 한국에서 좋아했던 작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 박소림 작가의 만화 <엑스> 같이 대중문화에 푹 빠져 경험한 이들만이 스스로 기록하며 사유하는 동시에, 외부에선 쉽게 접근하거나 동질화하기도 어려운 '팬덤'과 그 내부의 팬에 대해서 일종의 질적 연구를 인상적으로 수행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맥락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는- 그렇게 내가 위치한 공간과 주변의 관계성을 차근차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다지며 하나의 착안점을 발견하는,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초반 현재의 새로운 자기 서사-에세이 작품의 조류를 말할 때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창작물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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