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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Dec 10. 2022

김동령 박경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단평.

경계를 지우고 시선을 만드는 대안적인 다큐멘터리의 시도.

* 2022년 12월 한국영상자료원 공연 버젼에 기초한 글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이전 <청춘의 십자로>나 <이국정원>과 달리, 근래 개봉작을 공연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그러기에 본작이 지녔던 ‘살풀이’이자 ‘진혼굿‘의 느낌이 강화되었다. 성우 김상현의 내레이션은 더욱 감정의 완급이 더해지고 본작의 스코어를 맡은 일렉트로닉 듀오 ‘무명’, 아티스트 이주영, ‘씽씽‘의 멤버였던 신승태의 연주와 연기는 작품의 안과 공연이 펼쳐지는 밖을 이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내었다.


어떤 의미로는 <아메리칸 앨리>, <거미의 땅>에 이어 3부작에 걸친 ‘기지촌의 여성사‘를 기록하며 잇는 시도가 극장을 ‘굿판’으로 만들어내며, 스크린 밖의 관객을 제한적으로나마 스크린의 경계로 오도록 이끌어 ’하이퍼미디어가 된 역사 잇기’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구술채록과 푸티지/아카이브의 빈칸을, 제도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으나 망각되는 역사는 올해 초에 개봉작의 형태로 공개된 이상으로, ‘노션’으로 꾸준한 업데이트를 살며시 지속 중인 온라인의 하이퍼미디어와 이번 ‘다원 공연’이라는 오프라인의 하이퍼링크 등을 통해 ‘지속적인 이야기의 기억과 공유’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야기의 전하는 시선을 외부의 관찰자가 되어 위에서 아래로 바라다보는 것을 넘어, 설령 불완전하더라도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전형적이지 않더라도 전형적이지 않은 상황을 회피하지 않으며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접근법은 두 편의 전작에서 선보였던 시도를 가다듬으며 하나의 방법론으로 만들어내었다.


(그러한 접근은 비슷한 속성을 지닌 오멸 <지슬> <이어도> 등이 지녔던 한계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더렵혀진 순결과 민족혼’을 자극하는 문제적인 방식으로 활용된 ‘피해자 윤금이의 모습’을 제시하면서도, 좀 더 과감해진 폭력의 장면이 드러나면서도 느낌이 달라지는 이유는 ‘어디에’ ‘어떻게’ ‘누군가에게 전할’ 시선을 기초하고 있느냐의 차이가 분명 클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김진아의 <동두천>이 직접적으로 VR 기술을 활용하며 ‘피해자-되기’를 구현했다면,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픽션과 논픽션, 기록된 사실과 그렇지 못한 ‘구전’, 화자와 청자의 경계를 지우며 관객이 이 의정부 ‘뺏벌’ 마을과 기지촌이 지닌 이야기의 속으로 들어가게끔 하고, 공연은 더욱 몰입감을 키우는 기제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이 공연의 버젼이 기록 매체로 수록되어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접근을 좀 더 널리 인식하길 바랄 뿐이다. 기회가 되는 분들이 과거를 인식하면서도,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의 고인과 생존자와 접근자와 청자를 모두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불러모으는 ‘마당굿’이 된 이 영화를 많이 접하는 것이 ‘새로운 현대의 굿’을 더욱 모색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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