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취재 소재 영화’들 사이에서 부각되는, 섬세한 접근들
진실을 추적하기 위한 기자들을 다룬 이야기는 정말 좋은 작품만 추려봐도 무수하게 나왔습니다. 이런 류 영화의 고전격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1976년 작품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비롯해 최근에도 <스포트라이트>나 <더 포스트>가 있었죠. 한국에서도 <제보자> 같은 작품이 등장했었고요.
하지만 영화가 다루는 대상이 이 영화가 제작되는 ‘영화 산업 그 자체’의 치부라면 어떨까요. <그녀가 말했다>는 이를 다뤘다는 점에서 사실 쉽지 않은 문턱을 하나 넘은 셈이 된 작품이긴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을 폭발시킨 계기 중 하나였던 영화계의 유명 인사 하비 와인스틴의 장기간 지속된 성폭력 사건을 <뉴욕 타임스>의 두 기자- 조디 캔터와 매건 투히가 장기간 취재한 끝에 보도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제목 자체도 두 기자가 쓴 영화의 원작 논픽션에서 가져온 것이죠.)
하비 와인스틴은 지금이야 감옥에 갇힌 신세긴 하지만 보도가 처음 이뤄진 2017년만 하더라도 디즈니와 장기간 파트너십을 맺으며 디즈니 본체에서는 못 다루는 고수위의 영화, 소위 아트하우스 무비를 주로 취급하는 ‘미라맥스’와 <스크림> 시리즈를 비롯해 오랫동안 공포 영화 전문 레이블로 이름을 알린 ‘디멘션 필름’의 설립자이자, 디즈니와의 관계가 깨진 뒤에도 자체 영화 투자 배급사 ‘더 와인스틴 컴퍼니‘(TWC)를 세워 제법 기세를 보이던 영화 제작 투자자였습니다. 취재와 보도로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과 별개로, ’영화‘로 이를 다루는 것은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가 밝혀진 지금도 그가 영화계에서 지닌 지위를 가지고 벌인 행각, 그가 벌어는 온갖 권위주의적인 행동을 ‘카리스마 있는 원로 인사의 꼬장’ 등으로 취급했던 (미국) 영화계 전반에 대한 자기 반성이 동반되어야만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는 영화 내에서 영화판의 오랫동안 묵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제작진들의 구성에서 섬세함이 보입니다. 연출은 도리스 되리의 인상적인 페미니즘 영화 <파니 핑크>에서 열연을 보이고, 근래에는 <아임 유어 맨> 등을 연출해 감독으로서도 두각을 드러낸 마리아 슈라더, 각본은 이전 <이다> <콜레트>의 각본을 맡으며 페미니즘 소재를 영화 어법으로 직조한 레베카 렌키윅츠가 맡았습니다. 주연에는 <서프러제트>, 그리고 <프라미싱 영 우먼>의 메인 롤을 맡으며 페미니즘의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에 등장한 캐리 멀리건이 맡았죠.
이렇게 제작진도 제작진이지만, 영화가 실제 사건을 극화하는 방식에서도 여러모로 많은 고민이 드러납니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도 차츰 취재를 할 수록 사건의 수준이 막대함을 알게되는 충격, 이미 여러 차례 언론과 사법, 사회에 소외받은 것에 트라우마를 얻은 ‘생존자’와의 관계, 취재 사실을 알게 된 가해자의 대응과 이에 대한 맞대응은 꽤나 클리셰처럼 쓰였습니다.
이는 실제 취재의 과정에서도 숱하게 드러내는 일이니 단순히 극적 클리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했다>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취재의 전과 후, 그리고 ‘취재원’이자 ‘생존자’인 이들의 심리와 행보에 좀 더 방점을 찍습니다. 왜 두 명의 기자들이 이 사건을 계속 파헤치는지, 오랜 시간 같은 수법의 성범죄가 반복되었음에도 침묵이 왜 길게 이어졌는지, 그리고 법적-심리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이 무엇을 계기로 공개적인 피해를 증언하게 되었는지를 꽤나 한땀 한땀 긴 호흡으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비슷한 부류의 영화에서 주된 초점에 놓이는 이들이 주로 ‘기자’ 캐릭터였다면, <그녀는 말했다>는 ‘기자’의 용맹함을 강조하는 대신 기자가 다루는 사건의 생존자처럼- 기자 역사도 쉽게 사회의 위협에 놓이는 ‘현존하는 폭력의 구조’를 일련의 컷들로 드러내며 설득력을 키우는 한편, 기자를 생존자에게 ’공감하는 이‘들로 그려냅니다. 생존자들 또한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대신, 생존자 각각이 영화계에서 본래 지녔던 꿈, 성범죄 이후 그 꿈이 부숴지는 과정을 조목조목 짚어내면서 범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다시금 주목하는 한편 생존자 각각을 ‘주체를 지닌 인간’으로, 용기를 가지며 움직인 이들로 비춥니다.
그러한 섬세함은 <그녀가 말했다>에서 드러나는 취재의 과정을 비슷한 부류의 영화보다는 차분한 톤으로 그려내도, 관객들이 생존자의 증언과 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는 가해자와 그 조력자를 더욱 대비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취재를 마친 이후에도 최종적인 기사의 점검과 편집에 공을 들이는 시퀀스를 꽤 길게 할애하는 모습은, 성범죄에 대한 취재와 접근이 기자나 언론/미디어의 ‘공명심’ 이상으로 생존자 개개인에 대한 공감- 그리고 최소한의 연대가 필요함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습니다.
연출은 상대적으로 평이하더라도, 작중의 등장하는 캐릭터 다수를 이렇게 꼭꼭 펜이 종이를 지긋하게 눌러내듯이 담아내는 전개는 비슷한 주제 영화들이 이미 많이 존재함에도 <그녀가 말했다>가 그저 비슷한 아류작으로 남게하는 대신,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애슐리 주드를 비롯해 생존자 중 일부가 본인 역으로 실제 출연을 한 모습은 이 영화의 프로덕션 과정에 무수한 검토와 배려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고요. 다루는 소재의 중요함 이상으로, 그 소재를 상당히 섬세하게 다뤄내었기에 중요하게 봐야 할 작품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녀가 말했다>는 취재를 말하는 영화를 언급할 때, 중요해게 언급해야 할 작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