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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Dec 31. 2022

2022년 결산 : 눈여겨볼 만화들

합정만화상에서 채 풀지 못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만화들의 목록

2018년 이후 약 4년 만에 '눈여겨볼 만화/영화 리스트'를 재개합니다. (영화에 대한 리스트는 https://brunch.co.kr/@skyjet/141에서 정리해두었습니다.) 한동안 리스트를 쓰지 못한 영화와 달리, 만화는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합정만화연구학회'에서 2020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합정만화상'을 통해서 추천작품을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https://hj-comics.tistory.com/5 발표를 했지요. 하지만 비록 상을 주지 못했어도, 이래저래 어떻게든 말하고 싶은 작품은 분명 있습니다. 사적일 수도 있지만, 한 번이라도 눈여겨보면 좋을 작품들. 2022년 만화편을 써봅니다.





와야마 야마 지음, 현승희 옮김, <가라오케 가자!> (문학동네)


<빠졌어, 너에게>, 그리고 현재 연재하는 <여학원의 별>로 특유의 몰입감 있는- 약간의 퀴어적인 감각도 담겨 있는 코미디를 선보이는 와야마 야마의 작업. 성인 야쿠자와 중학교 합창부 부장이라는, 딱히 별 다른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은 참으로 느닷없이 ‘노래’를 계기로 만남을 시작한다. ‘우정’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진하고, 그렇다고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를 다루는 <가라오케 가자!>는 와야마 야마가 꾸준히 선보였던 코미디의 연장선에 놓인 동시에, ‘관계’라는 것이 어떤지를 함께 묻는 깊은 구석도 함께 담긴 작품이 된다.     



미깡, <거짓말들> (문학동네)


드라마화도 되었던 <술꾼도시처녀들>을 비롯해 <하면 좋습니까?> 등 미깡의 작업은 주로 짧은 리듬, 4컷 만화에 가까운 호흡의 전개가 많았다. <거짓말들>은 단 한 번도 웹 연재 없이 단행본으로 내는 작업이자, 좀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하나의 시도이다. 9편의 단편으로 이뤄지는 <거짓말들>은 조금은 낯설 수 있어도, 찬찬히 뜯어다보면 이미 미깡의 전작에서 조금씩 단초를 드러냈던 모습이다. 쉽게 본심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 그 사이에서 결국 거짓말을 하는 군상들. 미깡은 해당 작업을 통하여 이전의 모습에서 이어나가면서도, 좀 더 폭 넓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었다. 



심우도, <나의 꼬마 선생님> (카카오웹툰 연재, 심우도서 출간)


심흥아와 우영민의 공동 필명 ‘심우도’의 작업은 무척이나 세밀하고 섬세하다. <카페 보문>, 그리고 <우두커니>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이야기를 드러낸 심우도의 신작 <나의 꼬마 선생님>은 표면적으로는 전작들에 비해 좀 더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는 듯 하다. 작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초보 엄마’이자 ‘초보 아빠’인 두 사람이 아이를 기르면서 벌어지는 일화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아 또한 결코 쉽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심우도는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감정과 심리의 교차를 이전의 작업들처럼 지긋하게 응시하는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랑또, <니나의 마법서랍> (네이버웹툰 연재, 비아북 출간)


랑또의 전작인 <가담항설>은 랑또 본인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전 <악당의 사연>이나 <SM 플레이어> 등에서 보여준 코미디적 상상력이 코미디 이상으로 다양한 장르들과 접합될 때 어떠한 효과를 낳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니나의 마법서랍>은 이러한 상상력이 ‘잔혹함’과 교차하며 자아낸 작품이다. ‘잔혹 동화’ 같은 작품은 이미 수도 없이 나왔지만, 랑또 특유의 코믹함을 기초하며 서서히 광기와 잔혹으로 스며드는 연출은 어느 공포 만화 이상으로 깊은 어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마진오, 카인비, 연두, 영재영, 주정민, <다섯명의 혜석> (모꼬지 코믹스)


나혜석은 여러모로 근래 들어 계속 재해석이 시도되는 문인이다. 한동안은 ‘아내의 의무를 제대로 다하지 않은’, 여러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이라는 가십적인 차원에서 소비된 나혜석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고하며 ‘근현대 시기 여성이라는 주체를 가지며 살아간’ 차원을 점차 주목하고 있다. 다섯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독립 옴니버스 작업인 <다섯명의 혜석>인 작가 개개인의 생각에 입각하여 나혜석을 해석해나간다. 그것도 단순히 작품 자체의 만화화가 아닌, 나혜석과 작가 자신의 관게성을 통한 재해석으로서 말이다. 때로는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때로는 인상적인 심리의 표현으로 채워진 단편집.



파랑윤, <레생보>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딜리헙 연재, 움직씨 출간)


꾸준히 국내외 퀴어에 대한 작품을 펴냈던 움직씨가 새롭게 고른 만화 작품은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레생보>였다. 제목대로 레즈비언인 작가 자신과 자신의 파트너가 함께 사는 삶을 그리는 작품은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당사자로서 그려나가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 크게 없어보일지 몰라도, 이따끔씩 마주치는 문제적 시선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도 파트너와의 관계- 그리고 서로의 존중을 말하는 모습들의 발견은 이 생활이 결코 고난만이 있지는 않음을 지긋하게 보여준다.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서현아 옮김, <루브르의 고양이> (문학동네)


<핑퐁>이나 <푸른 청춘> 같은 작품에서 청소년과 청년의 삶을 환상적인 전개와 함께 담아낸 마츠모토 타이요는 <철콘 근크리트>나 <넘버 파이브>에서는 좀 더 환상의 수위를 넓히며 완연한 SF 작품으로서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의 이야기를 더욱 완연하게 표현해내었다. 그의 근작인 <루브르의 고양이>는 후자의 노선에 서있는 작품이다. 인간들 몰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이뤄가며 살아가는 고양이들, 그 고양이들은 인간은 감히 알 수 없는 각자만의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은 다시 루브르라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펼칠 수 있는 환상을 좀 더 원숙하게 펼쳐낸 시도.



수신지,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귤프레스)


<며느라기>와 <곤>에서 상당히 분명한 페미니즘적인 주장을 명징하게 드러내었던 수신지는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서는 조금 톤을 낮춘 것처럼 보인다. 작품 자체는 이미 여러 차례 독립출판물을 통해서 발표하긴 했었으니, 완전히 후속 작품이라 말하기엔 조금 어렵지만- 그럼애도 불구하고 이번 신작에서도 작가 고유의 ‘현실을 포착하는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무대는 가정에서 학교로, 주인공도 성인에서 학생으로 바뀌어도 어딘가 불합리하고 때로는 이상한 현실의 일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이 과연 어떻게 마무리를 맺을지, 완결의 모습이 참으로 궁금해진다.



OOO(정세원), <어떤 만화> (유어마인드)


전작 <무슨 만화>에서 참으로 독특한, 픽셀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작화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OOO(정세원) 작가가 후속 4컷 만화집 <어떤 만화>로 돌아왔다. 그간 ‘슬픔의 케이팝파티’나 <만화경>을 통해서 선보인 <AB2C> 등의 작업으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간 작가는, 이번 <어떤 만화>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고 계속 다져나가고 있다. 어딘가 투박해보이는 선들,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코미디의 코드, 그러나 허투루 설계된 것이 아닌 냉소와 풍자가 조합된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합된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느새인가 빠져들 모습들. 흔치 않은 코미디 작업을 꾸준히 전개하는 작가의 작업이 계속 이어지길 응원한다.



삭둑, <오크의 포로가 된 엘프 여사령관> (레진코믹스 연재 중)


제목만 보면 흔하디 흔한 삼류 성인 만화같지만, 결코 그런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판타지 만화에서 흔히 쓰이는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비틀고 코미디로 버무리면서, 그러면서도 ‘엘프’와 ‘오크’, 그리고 이들이 놓인 ‘군대’라는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천천히 서사를 다져나가는 흥미로운 면모가 있다. 장르를 비튼 코미디 만화가 지금까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 선을 지키면서 코미디와 서사의 경계를 천천히 넓혀나가는 작품을 보다보면 어느새인가 빠져들게 된다.



섬멍, <우리의 제철은 지금> (창비)


<청아와 휘민> 등에서 레즈비언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었던 섬멍 작가는 <우리의 제철은 지금>을 통해 레즈비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도, 조금은 차분한 이야기를 한다. 두 명의 주인공이 매번 만들어내고, 먹는 음식을 비춰내며 일상을 전개해나간다. 이러한 구성은 이미 <어제 뭐 먹었어?> 같은 작품에서도 시도한 것이기도 하지만, 섬멍 작가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에서 레즈비언이 놓인 상황들을 함께 다뤄내면서 좀 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퀴어-음식 만화’의 틀을 일구어내었다. 단권 작업이지만, 언젠간 나올지도 모르는 후속 작업이 기다려지는.



이종철, <제철동 사람들> (보리)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내 일약 화제가 되었던 <까대기>의 이종철 작가가 <제철동 사람들>로 돌아왔다. 전작처럼 작가 자신의 경험이 토대가 된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좀 더 이전-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구 포항제철, 현 포스코가 위치한 경상북도 포항시 제철동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점차 성장하며 인식했던 제철 노동자의 삶, 같은 ‘제철촌’ 사람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또래의 모습들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까대기>에 이어 <제철동 사람들>에서도 명징한 기록으로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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