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게 제작되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나쁜건 또 아닌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이하 전슬라, 전생슬)는 <무직전생>,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과 더불어 일본에 웹소설 붐, 그리고 이세계물의 인기에 큰 영향을 주었던 소설입니다. 허점도 많고, 한계도 적지 않지만 어찌되었든 ‘약해 빠진 슬라임으로 전생했는데 최강자가 된다는’ 일종의 역발상, 먼치킨 주인공을 택했음에도 완급을 조절하며 가볍고 흥미롭게 볼 수 있기에 사랑을 받았죠.
덕분에 소설, 만화판을 모두 합쳐 2022년 1월 기준으로 무려 3000만부나 팔았어요. 그 덕분에 당연히도 TV 애니메이션판도 나왔고, 일본에서는 작년 11월에 이 극장판도 개봉했죠. 이 작품도 일본에서는 엄청나게 흥행해 15억엔을 벌으며 무려 작년 11월 말에 개봉한 작품이 작년 일본 영화 전체 흥행 순위 25위를 찍었습니다… https://twitter.com/skyjets_/status/1621050592981557249 이래저래 ‘전슬라‘는 현재 인기작 중 하나임은 분명하죠.
하지만 이런 ‘인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그렇듯이, 흥행과 별개로 작품의 면면은 별개인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은 원작의 팬을 챙기는 것이 먼저니까요. 그래서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처럼 캐릭터나 배경 설명 없이 바로 냅다 꽃는 작품도 수두룩합니다.
그런 작품들에 비하면 이번 ‘전생슬’의 극장판은 제법 친절한 편입니다. 이 캐릭터가 누구고, 어떤 상황인지도 넌지시 드러내고, 애시당초 이 작품을 위해 새로 쓴 오리지널 스토리니까요. 물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새 이야기를 넣은 건 아닙니다. 마침 주요 등장인물들 중에 ‘과거에 마을이 멸망했다’는 말만 나오지 그 자세한 이야기는 안 나오는 캐릭터들이 있으니까요. 딱 그 공백을 바탕으로 새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추후 등장할 원작(특히 코믹)과 충돌하지 않도록 일부러 그런 부분을 콕 짚은 건 물론, 이번 극장판의 시점은 아직 TV판 기준으로는 한참 남은 이야기입니다. 근래 일본 미디어 프랜차이즈 작품들이 그렇듯, 인기를 가장 빠르게 모을 수 있지만 동시에 제작에 시간이 걸리는 만화/애니메이션판의 ’원작과 전개 차‘를 이렇게 미리 이후 시간대를 극장판으로 만들어 팬들이 지치지 않게 하는 전략을 이번 작품도 똑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새 캐릭터나 새 배경, 새 스토리, 새 적은 선형적인 동시에 전형적이긴 합니다. 정말 클리셰를 한치도 안 벗어납니다. 하지만 이게 이 작품의 특별한 문제는 되지 않아요. 원작 역시 그렇게 전개되었는데도, 그 거침없는 자세를 그냥 밀어붙이니 이렇게 성공했으니. 애시당초 이 작품을 만든 사람도, 볼 사람도 서로 명작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신 아직 애니메이션으로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 그러기에 나오지 않은 캐릭터들의 액션, 그리고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나 맥락을 보는 즐거움을 만들기는 하는 겁니다.
그러니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팬서비스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분명 허들이 높지만, 그래도 이런 류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생각 외로 친절한 편입니다. 원작을 미리 보고가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냥 이 작품부터 봐도 혹시라도 궁금증이 생긴다면 그렇게 거꾸로 원작 소설이나 코믹스 등을 봐도 큰 문제는 없을 작품입니다. 동시에 극장판이니 TV판보다 좀 더 액션에 힘을 준 부분도 있죠. 원작도 좀 뻔하고, 이 작품도 좀 뻔하지만, 그 모두를 이해하며 눈으로 보이는 관계성과 이미지에 빠지고 싶다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