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감독의 관록으로 완성된 볼 만한 ‘재탕’
영화의 제목대로 우에다 신이치로의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화제가 되었던 저예산 독립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프랑스 리메이크입니다. 무려 작년 칸 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죠. (정확히는, 일본 중견 영화사 GAGA도 제작에 참여한 프랑스-일본 합작 영화긴 합니다.) 작년 5월 프랑스 개봉에서도 꽤나 높은 흥행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우에다 신이치로의 원작은 (와다 료이치의 연극 원안이 꽤 영향을 많이 끼쳤다해도) 이래저래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작품이었어요.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호러를 찍는 작품이야 많았지만, 한 번 더 비틀어 극중극으로 재미를 이끌어냈죠. 1부는 의도적으로 긴 롱테이크의 호러 장르의 극중극을 보였다며, 2부는 다시 극중에서 이 롱테이크를 찍는 막전 막후에서 벌어진 일들을 묘사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식이었습니다. 극중극의 호러와 다시 극중에서 이 호러를 어떻게든 생방송으로 촬영하며 중단되는 일 없이 고군분투하는 사이의 간극에서 자연스레 웃음이 배어나왔죠. 그러면서 함께 영화 촬영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도 풀어냈고요.
덕분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교육기관에서 주도한 영화 프로젝트 중에서는 사상 전례없이 성공한 프로젝트가 되었고, 스핀오프는 물론 이렇게 프랑스에도 리메이크 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판 감독/배우는 프랑스 영화계의 중심에 선 이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감독은 한국에선 무성영화의 분위기를 위트있게 재현하며 알려진 <아티스트>의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주연에는 코미디와 진중한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연기의 폭을 보여준- <무드 인디고>와 <빅 픽쳐>의 주연이었던 로망 뒤리스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극중 로망 뒤리스의 아내 역으로는, 정말 감독의 아내기도 한- <이터니티> 등에 출연한 베나레스 베조가 맡았습니다.
게다가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지옹’과 프랑스의 대형 영화사 ‘스튜디오 카날’, 그리고 전술했듯 일본의 미니 메이저급 중견 영화사 GAGA 등 국제적으로 큰 자본들이 여럿 참여하는 제법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래 작은 규모의 B급 영화였던 원작을 잘 구현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죠.
이를 의식했던지 이번 프랑스 리메이크는 최대한 원작의 구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길을 갑니다. 1부에서는 원컷의 좀비 장르 극중극을- 2부에서는 카메라의 뒤를 보여주는 연출도, 1부와 2부의 전개되는 상황도, 심지어는 1-2부의 중요한 연출이나 반전 포인트들도 일본 원작과 똑 닮았습니다. 따라서 일본 원작을 이미 보신 분들께 프랑스판의 전개는 너무나도 예측이 갈지도 모르겠어요. 원작의 배우들과 장소들을 프랑스로 옮기면 바로 이 프랑스판이 되는 수준입니다.
대신 감독은 상대적으로 2부의 장면에 좀 더 독자적인 장면을 추가하며 상대적으로 힘을 더 주고 있죠. 사소하게는 프랑스판의 시점을 의도적으로 원작의 후일담으로 설정하며, 원작에서 드러났던 저예산-실시간-원테이크 영화의 고충과 더불어 프랑스와 일본 자본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일들이 추가가 되는 식이죠. (덕분에 원작에서 영화사 사장 역으로 나온 타케하라 요시코 배우가 다시 같은 배역으로 재등장합니다.)
여기에 이미 영화 제작에 대한 이야기인 <아티스트>를 만들었던 감독답게, 일부 유명세 있는 감독을 제외하면 ‘제작사 요구대로 감독이 찍는 것’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영화 감독의 욕망을 좀 더 강조하며 비추는 지점도 주목할 모습들입니다. 영화 이론이 발달한 프랑스 영화계를 풍자하려는 듯, 자꾸 감독과 각본에 불만을 숨기지 않고 사변적인 이야기를 마구 쏟아놓는 배우 캐릭터도 등장하죠. 그런 점에서는 슬며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이렇게 흥미로운 점이 여럿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플롯은 원작과 참 비슷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분명 관록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모였기에 그 결과물은 어설프지 않고 꽤 볼만하지만, 원작을 본 관객이 다시 본다면 어쩔 수 없이 ‘재탕’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는 없을 겁니다. (어찌보면 이번 리메이크에 나오는- 일본 원작 그대로 프랑스에서 만들라고 지시해는 원작 각본가의 요구가 실제 이번 프랑스판의 제작에서도 벌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티스트> 등의 여러 코미디 작품에서 기발한 위트를 보여준 감독이었기에, 딱히 큰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모습이 더욱 눈에 띄고 마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분명 준수한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좀 더 변주나 프랑스에서 할 수 있는 색다른 위트나 요소를 넣었으면 어땠을까요. 분명 원작의 노선도 충분히 성공하며 검증받은 노선이지만, 그 노선을 그대로 가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