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가 만든 현대판 고딕 호러
<은판 위의 여인>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그리고 고전 사진 촬영 기법인 '다게로타입'을 소재로 펼쳐지는 기요시의 현대판 고딕 호러. 간만에 그의 초기 모습을 보는 듯한 영화입니다.
환상이라는 존재를 그린다는 점에선 <절규>를 연상케 하지만 흘러가는 전개는 마치 <큐어>를 생각나게 합니다. 과거에 얽매있는 자, 그리고 그런 그를 이상하게 보는 자. 하지만 결국 타인을 '피사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동일하고 결국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와중에 삶은 조금씩 잠식되고 맙니다. 이러한 심리의 드라마를 기요시는 '다게로타입'에 집착하는 남자를 통해 정적인 카메라워크와 조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감각적인 연출로 드러냅니다.
어떤 점에서는 작년 기예르모 델 토로가 발표한 <크림슨 피크>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크림슨 피크>가 철저하게 고딕 호러를 재현하고자 했다면 <은판 위의 여인>은 현대를 배경으로 고딕 호러를 재해석합니다.
한동안 호러와 발걸음 떼었던 기요시가 <크리피>를 통해 다시 호러에 발을 내딛었지만, 어떤 의미에선 <은판 위의 여인>이 기요시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는 호러가 아닌가 하네요. 무대는 프랑스여도, 감각은 여전합니다. 어떤 점에선 이런 작품을 프랑스-벨기에 합작으로만 만들 수 있는 현 일본 영화의 상황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시간이 되거나 추후 개봉하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