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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Oct 09. 2016

BIFF 2016 <너의 이름은.> 단평

훌륭한 연출, 어딘가 미묘한 전개

<너의 이름은.>의 큰 줄기는 신카이 마코토가 그간 즐겨 해왔던 작업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 여성과 한 남성이 만나 감정을 쌓아나가는 거죠. 감독은 다시 그 위에 '두 사람의 몸이 바뀐다'는 설정을 추가합니다. 이러한 설정 역시 이미 여러 번 쓰였던 거죠.

하지만 작품은 중반부에 이르러 하나의 축을 드러냅니다. 표면적으로는 타임 슬립, 궁극적으로는 3.11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상흔입니다. 중반부 이후의 모습 역시 두 사람의 이어지는 감정에 대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사회와 사람들을 기억하고 되짚어보는 시도가 됩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일본 애니의 문법으로 전개하는 거죠.

영화의 작화나 연출은 정말 훌륭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세밀하고 활력 넘치는 작화는 극에 달했고, 카메라의 구도와 빛을 활용한 연출과 편집도 역동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특히 절묘한 순간에 딱 편집의 속도가 변화하고 음악이 치고들어오는 연출의 타이밍이 좋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되돌아가면 분명 의의도 좋고 감각도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고민거리가 늘어납니다. 특히 재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세카이계'의 어법으로 푼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 중 대표적인 지점 하나를 풀자면 작중에서도 '기적'이라고 칭해지고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를 구현하기 위해 작품은 재해를 입기 전의 과거를 노스탤지어로 그려내는 부분입니다. 물론 그와중에도 '현실은 현실이다'를 그려내기 위한 몇몇 장치가 있지만 너무 엷습니다. 그리고 딱 그 지점에서 머무릅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모습은 존재하지만, 그 과거를 상세히 그려내기 보다는 노스탤지아로써의 과거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또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사용하는 문법을 많이 가져오게 되는데, 그 선택이 가끔씩은 전반적인 이야기와 붕뜨는 기운을 갖게 할 때도 많습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의 이런 선택은 처음이 아니죠. <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역시 세카이계의 문법으로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를 두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풀어냈으니까요.

하지만 <너의 이름은.>은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직접적인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과장된 모습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문법에 익숙하다면 더욱 물흐르듯이 시원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이의 각 주인공들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현재의 이야기들과는 어딘가 매끄럽지 않은 지점이 생기고 맙니다.


어찌보면 더 넓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간 신카이 마코토가 해왔던 '두 사람'의 이야기로 축소시키면서 더욱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초창기 작품인 <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무겁더라도 처음부터 두 사람에 맞춘 이야기니 어느 정도 안배가 가능했다면 결코 '두 사람'의 이야기로 그칠 수 없는 말들을 '두 사람' 만이 풀 수 있는 것들과 겹치며 기묘한 불협화음을 만듭니다.

어째서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는지는 분명 알겠습니다. 뛰어난 작화에 연출을 겸비한 애니메이션이고, 이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결코 찾아올 수 없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궁극적으로 밀어붙인다'는 특성이 양날의 칼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은 될 수 있어도, 그이상의 시선이나 방향성을 더욱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추신.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RADWIMPS)가 <너의 이름은.>의 음악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의 이름은.>이 일종의 연작 단편이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정말 딱 절묘하게 음악이 치고 들어 오거든요. 음악을 중심으로 스토리 전개가 나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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