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슈렉>의 스핀오프. 모든 것을 절치부심하다.
2000년대의 북미 애니메이션은 여러모로 희대의 시기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정상을 놓치지 않던 디즈니가 심하게 주춤했던 시기니까요. 동시에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이 디즈니의 위치를 차지할 것처럼 보였던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슈렉> 시리즈의 흥행은 직전 <매트릭스>의 흥행과 더불어 가히 ‘새천년의 상식 뒤집기‘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느낌을 줬죠. 디즈니의 클래시컬한 동화풍 애니메이션의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뒤집은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흥행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동안 ’동화를 뒤집는‘ 작품이 새로운 헤게모니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후 <마다가스카> <쿵푸팬더>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가 정착하며 계속 굳건하게 북미 애니메이션을 대표할 주자가 될 줄 알았지만 2023년 현재의 드림웍스의 모습은 그때에 비하면 좀 초라합니다. 2000년대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한 디즈니가 결국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그리고 <겨울왕국>으로 다시 옛 명성을 찾는 사이 드림웍스의 ‘뒤트는 재미’는 어디가고 ‘뒤튼 채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계속 작품의 완성도나 평가, 흥행 모두 부진하는 사이 드림웍스는 유니버설로 회사가 넘어갔고 다시 절치부심을 꾀하고 있습니다. 기존 시리즈들이 죄다 정체기에 빠진 매너리즘을 <보스 베이비>나 <트롤> 시리즈의 흥행으로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맥을 찾고 있고, <배드 가이즈> 같이 참신한 시도를 한 작품이 서서히 나오고 있죠. 그리고 이제서야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띄운 <슈렉> 시리즈가 2011년 첫 스핀오프 <장화 신은 고양이> 이후 2015-2018 넷플릭스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거쳐 미국은 작년 연말, 한국은 지난 1월에 간만의 장편 신작을 공개했습니다.
연출은 2020년 <크루즈 패밀리 : 뉴 에이지>의 조엘 크로포드가 맡았어요. 성우진은 (한국은 많이 바뀌었지만) 최소한 미국판은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과제 역시도 이어졌죠. <슈렉> 시리즈는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이지만, 장기 시리즈가 겪는 문제 다수가 그렇듯 가면 갈수록 진부해졌죠. 발칙한 뒤집기는 그냥 뻔한 코미디로 소비되고, 전작들에서 굳어진 인기 요소의 답습을 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하필 장편 시리즈의 바로 전작 <장화신은 고양이>가 매너리즘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캐릭터들은 귀엽고 성우 연기는 좋아도, 스토리고 연출이고 정말 2000년대 그대로 였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이 시리즈의 후속 장편을 11년 만에 보게 해준 원흉과도 같은 작품이었죠.
간만에 나온 후속작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요. 결론은 간단합니다. <슈렉> 시리즈의 원점인 ‘뒤집기’에 충실한 길을 택합니다. 2001년에 처음 나온 <슈렉>은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나 외모지상주의적 전개를 조목조목 직접적으로 까대며 동화를 다시 쓰는 작품이었죠. ‘장화신은 고양이’가 처음 등장한 2편은 이제 ‘영웅이 등장하는 동화’를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신작에서는 동화에서는 잘 안 다루는 ’영웅담의 이후’을 다루는 것이죠.
물론 서부극 같은 장르에선 1980년대 이후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키워드로 꽤 자주 보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한자> 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번 작품은 이런 하드보일드한 키워드도 함께 패러디합니다. 이래저래 이번 작품은 ‘서부극’에서 많이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보입니다. 한때는 무법자로 잘 나갔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두려워하고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늙은 주인공, 우연한 계기로 간만에 뭉친 파트너, 그리고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 <좋은 놈, 추한 놈, 나쁜 놈> 처럼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캐릭터, 그리고 원하는 것을 뺐기 위해 이들을 쫓는 악당들… 보안관 캐릭터가 없는 걸 빼면 딱 서부극이죠.
여기에 중간에 등장하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모습은 <돈키호테> 같은 느낌도 듭니다. ‘골디락스’ 같은 동화 패러디의 맥락을 유지하면서, 줄거리와 맞닿는 (어찌보면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 쇠락하던 드림웍스의 2010년대 모습 같은) 새로운 패러디를 삽입해내 이젠 20년을 넘긴 오래된 시리즈에 걸맞는 전개를 드러냅니다.
여기에 ‘기술‘과 ’연출‘이 힘을 보탭니다. 원래도 드림웍스는 일찌감치 3D 연출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이번 작품은 여기에 더해 새로운 연출 기법을 더해내며 더욱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마치 왕가위의 주특기인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중간에 생략한 ’스텝 프린팅‘ 기법을 액션 시퀀스를 중심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마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액션의 중요한 동작에 의도적으로 긴 프레임을 할애하며 모든 장면이 유려하게 이어지는 풀 프레임 애니메이션 사이에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액션을 돋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새로운 차원의 ‘셸 셰이딩’을 구현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셸 셰이딩은 3D 폴리곤을 2D 셀 셰이딩 처럼 카메라가 비추는 곳의 폴리곤 경계면과 텍스처를 의도적으로 평면적으로 비추며 2D 애니메이션 질감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방법보다는 명암의 강렬한 강조, 배경과 캐릭터의 경계면이 장면마다 흐려졌다 또렷해지는 순간의 반복을 통해 3D의 질감이 강조되는 부분 사이에 매우 자연스럽게 2D적 연출이 삽입되며 강조점으로 기능하고 있어요. 마치 <씬 시티>의 원작 만화의 강렬한 흑백 명암을 살리는 연출, <스캐너 다클리>나 <바시르와 왈츠를>의 명암이 강렬해 2D의 느낌을 구현한 3D의 진화판 같죠.
이러한 연출은 작중의 ‘황혼을 바라보는’ 서사와도 합이 맞아 떨어지며 더욱 큰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영광은 컸지만, 많이 퇴색된 영광에 목을 매는 모습을 그리며 이러한 연출을 강조하죠. 그러기에 드림웍스의 작품 중에서는 꽤나 어두운 축에 속하지만, 마냥 어둠 속에 흘러가는 것은 또 아닙니다. 드림웍스가 절치부심해 이 작품을 비롯한 최근 작품들을 만들었듯, 등장인물이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니까요. 어떤 점에서는 노년을 맞이하는 중장년도, 이 작품을 어렸을 적 봤지만 이젠 중년이 된 어른도, 새롭게 이 작품을 접할 아이들도 모두 공감 가능한 ‘가족 애니메이션‘이 나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