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의 연출적 시도에 변주를 가하며, 동시대를 바라보다
안젤리나 졸리가 ‘곡선’으로 총알을 쏘던 <원티드>를 기억하실까요. 이전에도 본국 러시아에서 <나이트 워치>와 <데이 워치>로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던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그 작품으로 화려하게 헐리우드에 입성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티무르는 직접 연출보다 오히려 기획/제작에 관심을 더 쏟고 있습니다. 특히 2015년 <언프렌디드 : 친구 삭제>부터는 말이죠. 이 작품은 무척이나 많은 혹평을 받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컴퓨터 화면을 벗어나지 않는’ 스크린의 재해석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시종일관 1인칭으로 전개되던 <하드코어 헨리>를 거쳐 2018년엔 <서치>로 드디어 이 실험적인 스크린 구현에 제대로 방점을 찍었습니다.
텍스트 정보는 물론 온갖 이미지와 동영상을 처리 가능한 컴퓨터, 그리고 다시 이 컴퓨터를 전화와 합쳐낸 ‘스마트폰의 시대’이자 수많은 이들이 손에 카메라와 녹음기와 직사각형의 스크린을 손에 넣는 ‘뉴미디어의 시대’를 토대로 한 편의 영상을 상업의 영역에서 구현한 대단한 시도였습니다.
이후 현재로는 티무르 본인이 간만에 연출한 <프로필>(한국 미개봉/VOD 미출시), <언프렌디드 : 다크 웹>을 거쳐 드디어 2023년 <서치>의 속편이 나왔습니다. 다만 티무르의 제작사는 여전히 작품에 참여해도 티무르 본인의 위치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내려가고, 대신 전편의 연출인 아니쉬 차간티가 제작자이자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연출은 전편의 촬영 감독인 니콜라스 D. 존슨이 맡았어요.
이렇게 전편의 제작진들이 다시 뭉쳤으니, 이 영화의 큰 라이벌은 대성공한 전편입니다. <서치>는 당대로서는 실험 영화에서나 볼법한 ‘디지털 화면에 노출된 온갖 데이터’들의 연속으로 한 편의 밀도 높은 스릴러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작품이었죠. 등장인물의 모습을 홈비디오나, 영상통화 정도로만 구현하기에 정말 쉽게 보기 어려운 카메라워크가 쓰였습니다. 대체 누가 두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을 한 사람씩 카메라로 비추는 것도, 두 인물 모두 비추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바싹 붙인 두 모습을 양옆이나 위아래로 붙일거라 생각했을까요.
여기에 카메라의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조합시키며 서사의 요소를 완성하고, 디지털 데이터의 ‘낮은 해상도’나 ‘신뢰도’ 문제를 스릴러 연출에 조합시키는 등 디지털에 적합한 연출이 줄을 이었습니다. <언프렌디드 : 친구 삭제>에서 시범적으로 선 보인 연출법이 <서치>에서 어찌보면 완성되었던 것이고, 이는 약간의 변주는 있어도 이후 티무르가 연출하거나 제작한 <프로필>이나 <언프렌디드 : 다크 웹>에서도 크게 변치 않았습니다.
이렇기 전작이 너무 큰 성과를 거둔 가운데, 후속작은 이를 뛰어넘기 위해 아이디어를 미칠 듯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전작의 주인공이 중년 남성이었다면 이번 주인공은 이미 스마트 미디어를 태어날 때부터 제2의 신체처럼 친숙하게 인식하는 10대 여성이죠. 그 설정 답게 맥북을 쓰면서 계속 페이스타임(애플 계열 영상통화 앱)나 포토부스(아이패드/맥북 기본 사진 앱)를 키고 다니고, 이를 활용해 주인공의 단독 샷을 끊임없이 기록합니다. SNS, 그것도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즐겨한다는 컨셉으로 주인공의 행동이나 내면 심리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동시에 이런 화면 만으로 채 보여주기 어려운 장면은 과감히 앱으로 기록된 모습들을 빠른 속도로 편집하며 역동적인 시퀀스를 구현하기도 합니다.
많은 순간마다 페이스타임/포토부스를 키고 다닌다는 설정은 조금은 억지 같긴 해도, 이래저래 이 시리즈의 핵심이자 동시에 자체적으로 만든 제한요소인 ‘고정된 카메라’를 이렇게 ‘고정되면서도 카메라 자체가 이동하는’, 또는 ‘자신도 모르게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를 교차하는 식으로 새로운 리듬감을 주려 하는 것이죠.
여기에 제작진들이 이번 속편에 부여한 스토리는 전편처럼 디지털 시대의 속성과 이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서치>의 핵심 연출인 ‘쉽게 편집과 조합이 가능’하고 ‘데이터를 누구나 간편히 만들 수 있기에 조작도 쉬운’ 속성을 여전히 활용하는 동시에, 이번 작품에는 여기저기 흩뿌려진 ‘개인정보의 파편’을 이용합니다. 아무리 개인정보를 꽁꽁 숨겨도 ’24시간 라이브 거리 화면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어떻게든 개인정보는 기록되고 퍼지죠. 하지만 이제 다들 그런 웹의 속성을 잘 알기에 누군가는 어떻게든 정보를 숨기려 하고, 다시 누군가는 이를 파헤치려 합니다.
영화의 원제인 ‘미싱‘(missing)처럼, 실제 인물이 ‘실종’되는 걸 찾는 건 물론 ‘실종된 정보’ 자체를 숨고 파헤치는 공방의 연속이 장르와 연출, 서사에 깊은 수준으로 결합하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숨막히는 전개와 긴장감을 구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추고자 했던 정보의 실체는 전편보다 더욱 동시대적 맥락과 흐름에 결합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곱씹을 여지를 늘려내죠.
그렇게 <서치 2>는 <서치>의 직계 후속작으로서 비슷한 점도 많지만, 적극적인 연출의 변주와 현실과 가깝게 붙은 서사의 구현을 통해 이러한 ’디지털 스크린’을 활용한 영화의 가능성이 여전히 무궁무진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특히 개인정보 문제나 ‘잊힐 권리’ 같은 지점을 계속 고민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잘 구현된 스릴러를 보고 싶다면 정말 매혹될 작품입니다. 전편을 보지 않더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