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쿠보와 전설의 악기> 단평.

기술, 연출, 스토리. 모든 부분에서 '모던 클래식'이라 불릴 만한.

by 성상민


독립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국 웹진 <인디와이어>에서 '올해 최고의 애니'라 평했죠. 그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기술, 연출, 스토리 모든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부터 먼저 말해봅시다. <코렐라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든 라이카 스튜디오는 아드만과 더불어 계속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사죠. 결말부 메이킹씬에서도 살짝 나오지만,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서 라이카 스튜디오는 스톱모션 기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넓은 스케일의 이야기를 표현합니다. 두께감 있게 전개되는 장면 대부분은 거대한 기계 장치에 세트나 모형을 얹어 움직인 것 같았고요.

영화의 중요한 소재인 '종이접기'를 활용하는 연출도 좋습니다. 스톱모션의 특성을 통해 종이의 질감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을 넘어 종이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그려내며 자연스럽게, 그리고 생동감있게 표현합니다.

허나 가장 중요한 건 이 작품의 스토리이자, 작품의 전반에 걸쳐 표현되는 일본 문화입니다. 단순히 겉핥기로 일본 문화를 접한 걸 가지고 대충 그려낸 수준이 아니에요. (해외에서는 이미 '오리가미'라는 일본어로 잘 알려진) '종이접기'라는 소재부터 시작해 (살짝 웃는 표정의 하얀 가면으로 유명한 전통 예술인) '노', 사무라이와 같은 문화적 코드들, 우키요에나 일본의 전통 요괴의 특징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연출 기법, 그리고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인 복수와 궁극적인 주제인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들에 있어 철저하게 일본의 문화를 가져오고 있어요. 라이카 스튜디오 내부에 일본 매니아가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한 국가의 문화를 꼼꼼하게 가저온 것도 놀랍지만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건, 이러한 문화들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입니다. 중반부까지는 궁극의 와패니즘 작품이라는 생각마저 작품은 결말로 향하면서 영화에 서려있는 일본 문화의 전형성을 뒤틉니다.


이러한 선택으로 낳는 결말은 누군가 보기엔 이조차도 전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계속 직전까지 보여주던 모습들에 기초해서 생각하면 '이야기'의 클리셰를 넘어 궁극적으로 작품의 또 다른 핵심인 '이야기'의 속성이 '기억'에 있음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여기에 이르는 과정은 무척이나 동화적이자 영웅 서사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마낭 행복하지도 또 마냥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판타지 작품인 이상 특별한 힘이 주인공에게 있지만, 그 힘은 결국 주인공만의 것도 아니고요. 주인공은 소박함을 택하고, 그 소박하고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작품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어찌보면 이미 일본에서 계속 시도했던 '자국의 문화를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현하는' 문화 매체의 이상적인 결과물이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나온 셈이라 봐도 무방하겠죠. 또한 문화 자체를 단순 재현하며 그 안에 있는 한계까지 답습하는 대신 현대에 맞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선택까지 좋습니다.

이미 <코렐라인> <파라노만> <박스트롤>까지 독특한 스톱모션 애니의 세계를 보여주던 라이카 스튜디오지만, 이번 작품에 이르러 어떤 의미로는 '모던 클래식', 다시 말해 '현대의 고전'이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작품을 만드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 문화에 대해 깊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고, 그렇지 않더라도 작품이 표현하는 연출이 관객을 압도할 작품입니다.

추신 1. 목소리 연기에 <스타트렉> 시리즈의 '히카루 술루'로 유명한 일본계 미국인 배우 조지 타케이가 참여했더군요. 그 외에도 배역 상당수가 일본계 미국인 배우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추신 2.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이 작품이 드러내는 일본 문화, 그리고 이를 꼬는 모습이 몇몇 일본인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의 정신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신화에 대한 비유가 될 수도 있으니.

추신 3. 한국 개봉 제목은 <쿠보와 전설의 악기>지만 원제를 그대로 직역하면 <쿠보와 두 개의 현>이죠. 그리고 원제가 더욱 영화에 잘 맞습니다. '전설의 악기'가 애초에 아니기도 하고요. 수입/배급사인 UIP코리아 측도 물론 이해가 가긴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주 관객이 아동인 상황에서 고심한 선택이겠죠. 그럼에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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