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8.20/미디어스] 레진코믹스 연재작 [단지]에 대한 리뷰
* 지난 번에 예기한대로, 이 공간은 새 글도 올라오지만 동시에 그간 아카이빙 되지 못했던 글들을 정리, 기록하는 공간으로 계속 쓰여집니다.
* 해당 글은 2015년 8월 20일 [미디어스]에 [코믹 소사이어티] 코너로 연재, 게재된 글입니다.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942를 통해 [미디어스]에 직접 접속하여 볼 수 있습니다.
* 추신 : 이 때 저는 '일상툰'의 관점에서 [단지]를 접근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일상툰이라는 관점 말고도 작중 작가가 자신이 겪은 폭력을 풀어내는 방법, 그리고 2부로 접어들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보면서 풀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한 생각이 듭니다. 뭐, 지면의 한계를 언제나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아니, 어쩌면 저에게 좀 많이) 좀 더 느릿하고 긴 호흡으로 다양한 지점들을 살피는 글을 쓰도록 계속 신경써야 겠죠.
2015년은 어떤 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아직 한 해가 다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올해를 정리할 수 있는 키워드를 꼽자면 '폭력'을 꼽고 싶다. 정부의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태도, '노동 개혁'을 밀어붙이는 모습도 충분히 폭력적이었지만 올해 가장 크게 주목받은 폭력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상황에 놓여 있는 개인들에 대한 폭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그맨 장동민이 팟캐스트에서 내뱉은 혐오적인 발언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과 프로그램의 여성 차별적인 발언들이 공론화되었다.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퀴어문화축제와 결합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지적하는 흐름이 되었고, 이 흐름은 다시 곳곳에 있는 약자들에 대한 차별을 문제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CJ E&M 스토리온(STORY ON) 채널의 장수 프로그램이 된 <렛미인>의 폐지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전개 중에 있으며,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JTBC의 <화이트 스완>에도 이어지고 있다. SBS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7월 4일 방송된 <잔혹한 모정 - 나는 엄마를 고발합니다>를 통해 가정 폭력의 심각성을 주목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약자에 대한 폭력이 쉽게 '그럴 만할 일'로 넘어갔던 과거에 비하면 그나마 한걸음 나아간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편의 만화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웹툰의 주류 장르 중 하나인 '일상툰'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일상툰의 경향처럼 마냥 웃긴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작가의 아픈 일면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만화는 작가 본인이 계속 겪었던 가정 폭력을 소재로 삼고 있다. 쉽게 밝힐 수 없는 이야기기에 선후배는 물론 동기에게도 작품을 연재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자신이 원래 쓰던 필명마저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연재 중이지만 작품은 마냥 밑바닥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여전히 폭력의 상흔은 남아있지만 작가는 그 상흔을 잊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극복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작가의 필명인 동시에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 작품의 이름은 <단지>이다.
폭력은 단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고
<단지>에서 드러나는 가정 폭력은 얼핏 보기에도 심각한 수준이다. 작가 자신보다 4살 많은 오빠는 일상적으로 작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언어적인 폭력은 물론이요, 가끔씩 수틀리면 작가의 배를 발로 차는 등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이 폭력을 막지 않는다. 방관하거나 오히려 폭력에 동조하기도 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와중에서 남동생이 그나마 작가를 이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는 동생이 태어나자 '누나'라는 이유로 '희생'할 것을 강요하기에 바쁘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당해온 폭력으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기까지 하다. 당장이라도 <그것이 알고싶다>나 <추적 60분>과 같은 고발 프로그램에 나와도 손색이 없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단지>는 단순히 자기가 당해왔던 폭력을 폭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록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은 아니지만, 과거의 기억들을 조금씩 반추하며 이 거대한 폭력의 근원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생각해 나간다. 작가의 기억에서 이 모든 폭력을 만든 시작점은 그녀의 아빠이다. 가부장적인 성격을 가진 아빠는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러한 폭력의 모습은 다시 부부의 장남인 작가의 오빠에게 이어진다. 여동생인 작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빠는 기분이 뒤틀리자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아빠가 다시 오빠에게 폭력을 저지르며 폭력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물론 최종적으로 그 폭력이 도달하는 끝은 이 집안의 유이한 여자이자 어린 존재인 작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무자비한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작가는 처음에는 남몰래 울면서 자신이 겪는 폭력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렇게 조금씩 가족들에 대한 증오와 편견을 갖게 되지만 동시에 그녀는 같은 여자이면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결국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결혼한 이후로부터 아빠의 폭력에 시달린 엄마는 말 그대로 '매 맞는 여자'의 심리처럼 아빠의 폭력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폭력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조금씩 자존감을 잃고 결국 학교에서 '은따'를 당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고 말았다.
작가는 결국 이러한 삶을 버티지 못하고 가정에서 독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당해왔던 폭력이 쉬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고민을 토로하면 단순한 위로 이상이 되지 못하고,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는 주부들이 주로 다니는 커뮤니티에서 주부들이 오랜 시간 동안 자신들이 겪어온 폭력을 담담하게 말하는 글들을 혼자 읽으며 동감을 할 따름이다. 결국 작가의 표현대로 완전히 "개판"이 되었다. 폭력의 가해자는 예전보다는 수위가 줄었어도 여전히 폭력을 행사하고, 폭력을 처음 당했던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되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든다. 그렇게 새 피해자가 된 작가는 가해자가 되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받은 폭력을 풀지도 못한 채 계속 속으로 꾹꾹 담은 끝에 마음의 병을 안고 말았다. 그렇게 폭력은 반복되고 확장된다.
도저히 말하기 쉽지 않은 기억, 일상툰의 형식으로 담담하게 들려주다
이렇게 <단지>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연쇄는 분명 잘 주목되지 않을 뿐 이미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세태이기도 하다.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폭력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여럿 제작되었다.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처럼 통쾌한 판타지로 폭력의 관계를 역전시키거나, 올해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의 부천만화대상에서 해외작품상을 받은 오사 게렌발의 <7층>이나 페드로 리메라 글, 나초 카사노바 그림의 <인티사르의 자동차>처럼 실제 자행되고 있는 (여성) 폭력의 모습을 극화해 그리기도 했다. 특히 <7층>의 경우 <단지>처럼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데이트 폭력을 소재로 삼아 더 주목받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단지>는 기존에 제작된 폭력을 고발하고 이야기하는 작품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바로 자신에게 벌어진 폭력을 극화하여 전달하는 대신 작가 자신을 형상화한 캐릭터가 직접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자신이 그간 겪어왔던 일을 들려주는 형태로 전개되는 점이다. <단지>는 일상툰이라는 장르를 지니고 있고, 일상툰의 고유한 특징인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직접적이고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되었다. 분명 이러한 특징은 웹툰 초기 <스노우캣>이나 <마린블루스>, <포엠툰> 등을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일상툰이 큰 인기를 끈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겪는 경험들은 결국 어느 정도 비슷한 측면이 있고, 이는 작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방환상곡>, <마음의 소리>, <선천적 얼간이들> 같이 후기에 나온 일상툰들은 과장되고 코믹한 묘사를 통해 자신들의 작품을 단순한 일상툰이 아니라 개그 만화로써도 소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상툰이 아니라 극화이긴 하나 만화가 Song의 작품 <미쳐 날뛰는 생활툰>의 경우 작중에 등장하는 작가와 그 작가가 그리는 생활툰(일상툰)을 대비하는 전개를 통해 실제 일상과 ‘일상툰’이라는 장르로 극화되는 모습의 간극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했었다. 하지만 <단지>와 같이 쉽게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말하는 일상툰은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다.
<단지>의 작중에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는 결코 어두운 분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겪어왔던 상처는 작중에서 계속 드러나듯 여전히 남아있고, 분명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상툰의 화자가 되어 자신의 과거에 당해왔던 폭력에 대해 담담히 증언한다. 그리고 동시에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로 간식을 먹는 장면을 삽입하거나, 자신이 전에 겪은 폭력을 위트 있게 정리하는 장면들을 통해 자신이 그 폭력에 계속 갇혀 있는 대신 어떻게든 그 폭력을 넘어설 것이라는 것을 다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단지>는 7월 초 처음 연재된 이래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동시에 비슷한 폭력을 당해왔던 이들이 그간 밝히지 못했던 이야기를 푸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한 편의 작품이 상담소나 커뮤니티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8월 20일 기준으로 <단지>는 15화까지 연재되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꺼내면서 독자들에게 다가갔던 작품은 연재가 시작되고 약 한 달 만에 레진코믹스 전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받는 중이다. 이러한 반응은 작품이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는 것을 뜻하겠지만 동시에 한국 여기저기에 <단지>의 작가처럼 가정과 사회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가정 폭력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 작품으로 인해 때로는 위안을, 때로는 용기를 받고서 제2, 제3의 <단지> 같은 시도가 나와 폭력에 물들어 있는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