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만화계 이슈에 대한 정리는, 안타깝게도 2018년이 되어서야 공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작품의 순서는 제목의 가나다순입니다.
마일로, <극한견주> (케이툰 연재중, 북폴리오 단행본 발매)
여탕에 대한 다양한 경험담과 특징들을 재치 있고 기발하게 전달한 <여탕보고서>(네이버 웹툰 연재, 예담 단행본 발매) 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일로 작가의 신작은 <극한견주>였다. 소재는 ‘여탕’에서 ‘반려견’으로 바뀌었지만, 표현하는 센스는 여전하다. <여탕보고서>가 ‘여탕’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연출을 활용했다면, 이번 작품 역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흥미롭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마일로 작가가 그리는 작품은 일종의 ‘공감툰’이나 ‘일상툰’으로 분류될 수 있어도, 다른 작품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여타의 공감/일상 소재의 웹 기반의 만화들이 권현주 작가의 <스노우캣>과 정철연 작가의 <마린블루스>로 대표되는 일상의 다양한 편린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었다면, 이후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 가스파드 작가의 <선천적 얼간이들> 등의 작품을 통해 일상을 개그스럽게 전달하는 작품이 주를 이뤘다.
<여탕보고서>나 <극한견주> 모두 개그적인 포인트를 잡으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 근래의 공감/일상 소재의 만화와 맥락을 같이 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하기는 어려운 경험담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넓혀나간다는 점에서 잡다구레한 (그러나 누군가에겐 정말로 유용할) 정보를 소개함과 동시에 폭넓은 스토리텔링 모두를 추구한다. 기존의 흐름 위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모습들과는 다른 면모를 비추는 셈이다. <극한견주>는 <여탕보고서> 때 처음 드러낸 감각이 단순한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 초심자의 행운)이 아님을 입증했다. 앞으로 그가 그릴 만화의 향방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송아람, <두 여자 이야기> (이숲)
비록 웹툰이 아니었기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까지 출판만화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작가로 김성희와 채민을 말할 수 있다면 2015년 이후로는 단연 송아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독립 만화 무크 <Sal>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던 송아람 작가는 2015년에 발표한 첫 만화 단행본 <자꾸 생각나>(미메시스)는 다양한 인물들이 얽혀 발생하는 일상과 감정의 순간을 인상적으로 다뤄내는 것에 성공했다.
2년 만에 발표한 신작 <두 여자 이야기>는 <자꾸 생각나>의 연속선상에 놓여있지만, <자꾸 생각나>에서 윤곽이 잡혀 드러나던 여성 자신의 이야기가 구체화되어 드러나는 작품이다. 서울과 대구라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슷한 특성도 있는) 두 개의 공간, 결혼을 이미 한 여성과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두 개의 주체. <두 여자 이야기>는 이렇게 서로 다른 공간과 상황에 놓인 두 여성의 이야기를 대비하며 전개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달라보였던 두 개의 이야기는 결국 본질적으로는 같은 상황 위에 놓여 있다. 송아람은 특정한 조건을 지니고 여성에 대해서 쉽게 규정짓는 어떠한 시선을 들춰내어 여성을 바라보는 화법을 통해 <두 여자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2015년 ~ 2016년 이후로 페미니즘이 화두가 된 사회상 안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거나 명확한 화자가 되는 작품들이 늘어났던 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중요하게 접근할 작품이 2017년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수신지, <며느라기> (작품 전용 페이스북 페이지 / 인스타그램 계정 연재)
2000년대 후반,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주목을 받을 때부터 2017년 현재까지 이렇게 SNS의 속성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작품이 있었을까.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는 기본적으로 결혼을 하면서 생겨나게 된 가족 관계의 한가운데 놓인 여성의 이야기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작품이 연재된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매체의 속성을 깊숙이 간파하고 연재한다는 점에서도 중대한 발견과도 같은 만화였다.
일찌감치 자신의 경험담을 소재로 삼은 2012년 <3그램>(미메시스), 2016년 <스트리트 페인터>(올레마켓 웹툰 연재, 미메시스 단행본 발매)에서 작품 속 이야기의 화자와 전개되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이를 독자들을 향해 표현하는 방법론을 고민했던 수신지 작가는 신작을 웹툰 전문 플랫폼이 아닌 SNS에 연재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웹툰 플랫폼도, 웹툰 아마추어 커뮤니티도 아닌 SNS를 작품 발표장으로 택한 작품들은 이전부터 많았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SNS라는 공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이 작품의 근간 구조인 동시에 시점이라는 점에서 다른 SNS 연재 만화와는 무척이나 다른 길을 걸어간다.
평범한 직장인 여성 ‘민사린’은 자신의 대학동기이자 역시 평범한 직장인 남성 ‘무구영’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다지 심각하지도 않지만, 마냥 좋다고도 부를 수 없는 ‘평범한’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며느라기>는 민사린의 삶을 크게 두 개의 시선으로 분리하여 드러낸다. 하나느 일반적인 만화와 비슷하게 2인칭-3인칭의 시점이 주를 이루는 민사린과 주변 인물의 일상이며, 다른 하나는 마치 정말로 ‘민사린’이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렇다 할 말풍선도 없이 카메라의 1인칭 시점으로 드러나는 민사린의 일상이다. 전자와 후자의 시점은 서로를 연계하는 동시에 한 쪽의 시점에서는 쉽게 알 수 없었던 지점들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마치 독자는 결혼의 환상에서 벗어나 신혼의 현실을 직감하지만, 이를 (작중) 자신의 SNS에 통해서는 간접적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민사린의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독자는 전지적인 시점으로 민사린이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시가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들을 알아차리며, <며느라기>가 지닌 두 가지 시점 사이의 행간에 좀 더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며느라기>는 스토리 이상으로 매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너지 효과를 준 효과적인 작품이 된다.
브라이언 K. 본 글, 피오나 스테이플스 그림 (이수현 옮김) <사가> (시공사, 4권까지 발매)
이미 <Y : 와이 더 라스트맨>(시공사)을 통하여 젠더 감수성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은 것은 물론,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기발하게 표현해낼 수 있음을 드러낸 스토리 작가 브라이언 K. 본은 그림 작가 피오나 스테이플스와 협업하여 만들어낸 <사가>(Saga) 시리즈를 통하여 더욱 표현의 자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만화 시상식인 ‘아이즈너상’에서 최우수 연재 만화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는 거대한 수식어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가>의 훌륭함을 입증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작품인 것이다.
<사가>의 스토리는 여타의 SF 장르의 작품들과 비슷하게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거대한 세력들이 충돌을 하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물 군상들의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젠더나 외견, 연령 등에 따라 캐릭터의 특성과 역할, 위치 등을 부여했던 작품들과 달리 작품은 그 당연하게 보일 지점에서부터 끊임없이 싸우고 질문하는 것에서 서사 상의 중대한 포인트를 만들어 낸다. 싸우는 지점이 달라지는 작품은 소재가 비슷할 지라도 그간의 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갈 수밖에는 없다.
여기에 피오나 스테이플스는 브라이언 K. 본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과 사물, 그리고 배경을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처럼 실감나게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사가>는 기존의 미국 만화에서는 1960-70년대의 각종 인권 운동의 자장 속에서 제한된 형식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다양한 성격과 특징을 지닌 캐릭터들이 뭉쳐 탄생하는 군상극이자, (이제서야 <스타워즈>가 <라스트 제다이>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차원의 스페이스 판타지를 고민하는 실천적인 차원의 작품이 된다.
이진경 <사춘기> (서울문화사 → 세주문화 → 유어마인드 재발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한국 만화들이 ‘연재 중단’이라는 수렁 속에 빠져들었고, 그 중에는 이진경의 <사춘기>도 있었다. 본디 서울문화사의 성인 대상 여성만화잡지 <나인>에 연재되었던 <사춘기>는 잡지에서의 연재가 중단되며 웹진 <코믹스투데이>로 연재를, 세주문화로 단행본의 판권과 발매를 이전하였지만, 그조차도 2001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한창 한국이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찾아온 (제한적일지라도) 자유로웠던 사회의 분위기, 1990년대부터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페미니즘의 이슈가 혼재된 사회상을 그려내었던 <사춘기>는 그렇게 일부 독자들만이 겨우 간직하고 있는 빛바랜 기억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2017년 소규모 독립출판사 ‘유어마인드’의 손길을 거쳐 <사춘기>는 약 17년 만에 멈춰있던 작품의 심장을 다시 뛰게 되었다. 작가의 <피플> 연작(또는 <c-town people>)에 이어 작가 스스로 만든 합성어 ‘fenerzation’(feminism + engery + generation)를 위한 만화를 표방했던 <사춘기>는 작품이 연재될 1990년대 후반과 근접한 시점인 1990년대 초반 대학생이 된 네 명의 여성이 놓인 일상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거대하거나 극적인 서사는 없지만, 대학교에 입학 후 경험하는 대학 생활이나 MT 등의 경험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쉽게 자각하지 못한 사회의 균열점에 놓이며 작품은 속속 전개된다.
작품이 다시 발매된 2017년 지금, 작품이 연재될 당시만 해도 그리 오래된 과거는 아니었던 <사춘기>의 주된 시점인 1990년대 초반은 이젠 약 20년이나 훌쩍 지나버린 오래된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과 2010년대 후반은 얼마나 무엇이 달라졌을까. 1990년대 초반에 대한 기억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나 <응답하라 1988> 같은 작품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인가? 정윤석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1990년대가 지니고 있던 모순의 순간을 효과적으로 짚어내었던 순간을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짚어내었다면, 이제야 비로소 돌아온 <사춘기>는 그간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1990년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hagi <죽지 그냥 죽어버리지> (개인 출판)
hagi 작가의 <죽지 그냥 죽어버리지>는 좀처럼 쉽게 나올 수 없을 작품이었다. 아무리 필명을 쓴 작품이라 할지라도 남들에게 자신이 앓고 있던 정신 질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낸다는 것은 중대한 각오를 동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온갖 망설임 속에서 나왔을 <죽지 그냥 죽어버리지>는 갑작스러운 우울증과 슬럼프에 놓인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죽지 그냥 죽어버리지>는 ‘우울증 극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작가가 우울증을 본격적으로 앓은 뒤로 작품을 발간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겪어야 했던 ‘실패’들과 그 사이에 작가가 느꼈던 감정의 조각들이 한데 뭉쳐져 있다. 눈치를 차릴 틈도 없이 작가 자신을 휘감은 우울증을 마주하며 작가는 자신의 주변과 과거를 돌아본다. 그 과정을 통해 ‘우울증’은 단순한 의학적 병명을 넘어 자신이 그간 거쳐 온 상황과 시선들이 만든 ‘사회적인 병’과도 연계되어 있음을 조금씩 깨닫는다.
<죽지 그냥 죽어버리지>는 결말부를 통해 아직 완벽하게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한다. 강렬한 제목 그대로 어느 순간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애초에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정신 질환이 쉽게 나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에게 있어 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자체는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자 사회 밖을 마주하는 여정이었다는 말로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작품은 자전적인 에세이인 동시에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될 ‘자기-사회 마주하기’의 과정으로써 자리매김한다. 자신처럼 만화가를 꿈꿨던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처럼 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모두에게 보내는 ‘마주하기’의 계기로써 말이다.
앨리슨 벡델 <펀 홈 : 가족 희비극> (이현 옮김) (글논그림밭 <재미난 집> → 움직씨 재발매)
한국에서 앨리슨 벡델은 영화 등 매체의 성평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벡델 테스트’(Bechdel Test)의 주창자로써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게만 앨리슨 벡델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섭섭한 일이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페미니즘 성향의 작품을 그려온 ‘만화가’이기 때문이다. (‘벡델 테스트’의 개념 역시 그의 신문 연재 만화 <Dyke to watch out for> - <펀 홈>의 작가 설명을 통해서는 <주목할 만한 레즈비언들>로 번역 - 를 통해서 처음 고안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 사회 참여적 성격의 만화를 주로 펴내는 ‘글논그림밭’을 통해서야 뒤늦게 작품이 소개되었다. 이후 절판된 작품은 퀴어 서적 전문 출판사 ‘움직씨’를 통해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다시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작가 자신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그려낸 <펀 홈>은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Fun Home’은 아버지의 직장 중 하나였던 장례식장의 철자인 ‘funeral home’의 준말이지만, 동시에 fun은 글논그림밭 판본의 번역처럼 ‘재미난’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fun’은 이외에도 ‘기이한’, ‘괴상한’, ‘수상쩍은’, ‘괴짜의’라는 뜻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중적이며 복합적인 면모를 지녔던 가족사를 깊게 탐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 없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중산층 집안은 그 집안의 내부 구성원인 작가 자신이 보기에는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특히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진 집과 더불어 고상한 취향을 지니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가 그랬다.
조금씩 성장할 무렵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식하던 작가는 어렸을 적에는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한다. 작가는 아버지와의 편지를 통해서 각자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 문제에 대한 대화를 하고자 하지만 이조차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끝이 나고 만다. 아버지의 사후 작가 자신이 지니고 있던 기억과 기록을 통해 자신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관찰하고 추적한 결과는 <펀 홈>이라는 만화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
<펀 홈>의 ‘관찰’과 ‘추적’은 그저 ‘아버지의 이중생활’을 들춰내는 가십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작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들, 작가와 아버지가 좋아하던 다양한 소설들과 각종 하위문화들, 아버지가 오랜 세월을 살았던 곳이자 작가 자신의 고향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시골 마을의 정경과 사람들을 촘촘하게 이어낸 풍부한 미시사가 된다. 여기에 움직씨가 펴낸 2017년 재발매판은 기존의 번역 판본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각종 용어나 문구에 대한 충실한 주석은 물론, 원판본의 디자인/장정을 최대한 살리면서 이전에 <재미난 집>으로 작품을 접했을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김금숙 <풀> (도서출판 보리)
김금숙 작가는 꾸준하게 한국의 과거사와 자신의 경험을 이어내는 자전적인 작업을 해왔던 만화가다. <꼬깽이>가 조금은 명랑만화와 비슷한 톤과 전개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아버지의 노래>가 좀 더 르포에 가까운 시점으로 어린 시절을 다시 들여다봤다면 <풀>은 좀 더 온연하게 르포 만화에 가까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이옥선의 삶을 토대로 한 <풀>은 여전히 한국에서 위안부를 바라보는 지배적인 시선 중 하나인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으로써만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김금숙은 이옥선의 삶의 여정을 최대한 촘촘하게 들여다보며 그가 왜 풍파로 가득찬 삶을 다루게 되었는지를 살펴나간다.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장소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바뀌지 않는 여성에 대한 어떤 시선들이다.
<풀>은 기본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어야 했던 한 여성의 일대기자 자서전격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일제 강점기의 한국-중국과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중국이라는 격동의 시공간에서 여성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를 주목한다. 마치 <귀향>이 그랬던 것처럼 위안부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을 세밀하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감에 폭력 그 자체를 전시하는 문제를 저지르지도 않으며, 위안부의 문제에는 ‘여성 혐오’와 같은 요인이 복합되어 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풀>은 변영주의 3부작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와 더불어 위안부의 문제를 세밀하게 파고들어간 몇 안 되는 양질의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