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화계 이슈에 대한 정리는, 안타깝게도 2018년이 되어서야 공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작품의 순서는 제목의 가나다순입니다.
김보람, <개의 역사>
단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 해오던 김보람 감독은 2017년 자신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개의 역사>를 발표했다. 일찌감치 감독은 전작 단편 <결혼전.투>와 <독립의 조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둘러싼 삶에 대해 자신과 타인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과정을 드러내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개인의 삶을 한국 사회가 어찌 바라보고 있는지를 비춰냈다. <개의 역사>는 여전히 자전적이지만, 이전의 단편들 이상으로 시선을 확장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개의 역사>의 시작은 감독 자신이 남산 근처 후암동에서 거주할 때 만났던 늙은 개의 이야기를 다뤄나가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개의 삶이나 여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개를 계속 돌봐주던 슈퍼 주인이 사라짐과 동시에 개 역시도 세상을 떠나며 그 시도는 실패로 마무리된다. 이후로 감독은 후암동을 벗어나 홍은동으로 가고, 다시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지만 이 시도들조차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실패’의 연속이다. 그리고 다시 감독은 홍은동조차도 떠나, 14번째의 이사를 준비해야만 한다.
<결혼전.투>와 <독립의 조건>이 그랬듯 <개의 역사> 역시 간명하게 완결되지 않는다. 처음 예상했던 바와 달리 현실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때로는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작품 촬영 충간에 계속 찾아온다. 하지만 김보람은 그 실패의 순간을 쉽게 가리거나 무화시키려는 대신 그 실패 자체를 하나의 과정이자 결과물로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미시적인 역사를 기록해나간다. 그 역사의 모습은 웅장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지만 도리어 그러기에 더욱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의 순간을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간의 작업들은 결코 ‘실패’라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평범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의 ‘르포’가 되는 것이다.
조던 필, <겟 아웃>
코미디언으로 맹활약하던 조던 필은 갑작스럽게 발표한 첫 영화 연출작 <겟 아웃>을 통하여 북미는 물론 한국까지 강타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호러 영화 감독으로 다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작품 자체는 아벨 페라라의 <바디 에어리언>, 올리버 히르비겔의 <인베이젼> 등의 작품이 변용한 것은 물론 이제는 고전이 된 <신체강탈자의 습격>과 비슷한 근간 위에 기초해있지만, <겟 아웃>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는 철폐되어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은연중에 여전히 퍼져있는 인종차별의 문제를 가져와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전개했다.
작품은 일찌감치 스탠리 크레이머의 1967년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등의 고전 영화를 비롯해 수많은 매체들이 이리저리 써먹고 있는 ‘인종 화합’ 성격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철저히 비꼬면서 활용한다.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된 인종차별의 실태 역시도 작품의 중요한 전개 수단으로 활용하며 풍자한다. 말과 법으로는 모든 인종이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아무리 말한들, 여전히 미국 사회는 백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스파이크 리가 <볼륨을 높여라> 등의 작품을 통해 리얼리즘적인 방식으로 이를 전했다면, 조던 필은 장르적인 어법을 활용하여 이 문제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원, <내 친구 정일우>
1988년 <상계동 올림픽>을 통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 한 획을 긋고, 더 나아가서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효시를 만든 김동원 감독은 2003년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다룬 <송환>을 끝으로 한동안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간 카메라를 놓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 <다섯 개의 시선>에 수록된 단편 <종로, 겨울>이나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하여 발표한 상영시간 60분의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 <끝나지 않은 전쟁>,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함께 협업하여 제작한 <강정 인터뷰 프로젝트> 등 그는 꾸준히 작품을 계속 발표해왔었다. 단지 <송환> 만큼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그리고 2017년, 김동원은 <내 친구 정일우>를 통해 무척이나 오래간 만에 극장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본래 예수회, cpbc 가톨릭평화방송, 제정구기념사업회와 협조하여 TV용 다큐멘터리로 기획되었던 작품은 조금씩 크기를 키워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2014년 세상을 떠난 천주교 예수회 정일우 신부(본명 존 데일리)의 이야기를 신부로써의 삶, 평생의 동반자였던 빈민운동가 제정구와의 인연, 상계동 철거민 투쟁에서 그가 보였던 모습, 말년을 보낸 괴산 솔뫼농장에서의 삶, 그리고 별세까지 그의 삶을 다섯 개의 축으로써 파고든다.
<내 친구 정일우>는 무척이나 고전적이다. 여기서 ‘고전적’이라 함은 구태의연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잘 쓰이지 않으나 여전히 묵직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방법론을 활용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근래의 다큐멘터리들이 조금씩 비중을 줄이고 있는 내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물론, 직접적인 태도로 우직하게 인물과 사건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마치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상계동 올림픽>처럼 말이다. 특히 상계동 철거민 투쟁의 주역 중 하나가 정일우 신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 <내 친구 정일우>는 약 30년 만에 김동원이 남기는 <상계동 올림픽>에 대한 자전적 회고이자 하나의 후속작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덩케르크>
히어로 만화/영화의 팬들은 물론 일반인 관객까지 사로잡았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가 끝나고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어서 만든 후속작은 SF 영화 <인터스텔라>였다. <인터스텔라>는 전세계에 수많은 화제를 낳은 것은 물론, 영화의 기술적인 점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거둔 작품이었지만 정작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에서는 전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튼 거대한 트릴로지를 만든 감독은 다시 뛰어난 흥행과 명성을 지닌 후속작을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매우 당연하게도, 다시 이후에 무엇을 만들 것이냐였다.
다른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역사극’을 후속작으로 발표했다. 물론 2006년 영화 <프레스티지>를 역사극으로 칠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만 따온 SF 영화에 가까웠다. 수많은 기대와 불안, 각종 설왕설래 끝에 놀란의 신작 <덩케르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전까지 있던 불안감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일순간 사라졌다.
<덩케르크>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특징 하나를 꼽자면 관객으로 하여금 당시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놓인 사람들의 처지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방점을 둔 작품이라는 점이다. 가까스로 아군의 진지에 모인 병사들은 잠시 안전하게 된 자신들의 처지에 안주하다가도,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현실에 신경을 곤두선다. 그리고 다시 다른 축에서는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수직으로 멀리 있는 하늘 상공에서 움직이는 전투기 조종사, 수평으로 멀리 있는 민간인 요트의 움직임이 펼쳐진다.
CJ가 개발한 4DX가 좌석 자체를 물리적인 효과를 주면서 영화 속의 경험을 관객들이 실제적인 경험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면, <덩케르크>는 영화라는 포맷 자체가 지닌 경험적인 효과를 최대한 극대화시켜 관객들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현장을 현장 그 가까이는 물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떨어진 모습들도 비추면서 원근법을 만들고, IMAX 레이저 환경에서 극대화된 화면비를 비롯한 화면의 연출에서도 마치 1930-40년대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기술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하며 당시를 최대한 재현하고자 한다. 여기에 ‘전쟁’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다시 거대한 공포에 짓눌린 이들을 구하는 이들이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빚어내는 ‘숭고함’의 서사가 뒷받침한다. 영화가 추구할 수 있는 모든 면모에서 현재 가능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룩한 것이다.
선호빈, <B급 며느리>
자신이 다녔던 대학 고려대학교의 병설보건대학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레즈>를 만든 선호빈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B급 며느리>로 돌아왔다. 두 작품 모두 자신의 이야기지만 작품이 가는 길은 결코 같지 않다. <레즈>가 자신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자신이 놓이면서도 조금은 떨어진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중심이었다면, <B급 며느리>는 결국 자신이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가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기 떄문이다.
<B급 며느리>는 자신의 아내인 ‘김진영’과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내에겐 시어머니인 ‘조경숙’,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놓인 감독 자신 ‘선호빈’의 이야기이다. 진영은 자신에게 당연하다는 듯 부여되는 온갖 사회적인 시선과 압박을 대놓고 거부하고, 경숙은 자신도 겪어야만 했던 길을 거부하는 진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호빈은 이 둘의 모습을 계속 카메라로 촬영하지만, 도리어 이 둘 사이에서 수동적으로만 움직일 뿐 능동적으로는 행동하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어떤 의미로 <B급 며느리>는 실패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시행착오의 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단순히 이 작품이 ‘고부갈등’을 자극적으로 그리는 것에서 그치는 대신 ‘왜’ 싸움이 벌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의 가족상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으로 만들어내었다. 마치 수신지의 만화 <며느라기>가 그런 것처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그러나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현대 한국 가족의 초상을 짚어내는 동시대적 작품인 것이다.
한영희, <안녕 히어로>
태준식의 <당신과 나의 전쟁>을 비롯해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안녕 히어로>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작품은 같은 주제를 다뤘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간다. 작품의 주인공과 시선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가 아니라, 그 노동자의 자식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2009년 파업에 참가한 이후 쌍용자동차에서 해직된 조합원 김정운의 아들 김현우가 조금씩 자라나며 겪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지 모르던 현우는 초등학생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다시 중학생이 되면서 조금씩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깨닫게 된다. 아직 명확하게 깨닫지는 못해도, 아버지를 비롯한 쌍용차 사람들에게 사회가 보내는 어떤 시선에 현우는 조금씩 의문을 가진다. 그러던 중 한동안 감옥에 있던 김정운이 감옥에서 출소해 다시 가족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이전처럼 쉽게 ‘정상가족’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안녕 히어로>는 이렇게 쌍용차의 문제를 당사자의 시선이 아니라 당사자 가족의 시선으로 약간 뒤트는 선택을 통해 그간 쌍용차 문제를 다뤘던 각종 영상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동시에 더 깊은 시점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쌍용자동차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지역 사회의 시선들은 물론, 조주은의 <현대가족 이야기> 등 저서를 통해 조금씩 드러났던 ‘정상 가족’의 무척이나 연약한 외피를 함께 지적하는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것이다. 마치 한영희 감독이 속한 다큐멘터리 공동체이자 <안녕 히어로>의 제작사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처럼, 문제를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미덕이 있는 것이다.
이강현, <얼굴들>
이강현은 <파산의 기술(記述)>과 <보라>를 통해서 결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문제가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맥락을 파고드는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어왔다. <파산의 기술>이 IMF 경제 위기 이후 뉴스나 일상에서 흔히 접하고 듣게 된 ‘파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처지에 놓인 ‘파산자’들의 이야기와 사회가 이를 기록하고 다뤄내는 방식을 교차하며 층위를 만들고, <보라>가 산업재해 문제를 사회는 물론 노동자 자신이 접하고 받아들이는 인식태를 함께 드러내며 접근했던 것처럼 말이다.
<얼굴들>은 기본적으로는 ‘극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감독이 그간 만들었던 두 편의 다큐멘터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무척이나 독특한 영화이다. 감히 ‘극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얼굴들>은 명확한 캐릭터 정보는 물론 확실한 서사도 없다. 파편화되어 뿌려지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의 잔해 속에서 관객은 이들이 대체 무슨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스스로 파고 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 결과 드러나는 상은 한국 사회와 그 구성원이 놓인 어떠한 모습들이다. <파산의 기술>에서 여론과 언론이 ‘파산’이 낳은 충격적인 이미지에 주목하지만 정작 왜 파산이 만연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묻지 않고, <보라>에서 산업재해를 법적인 구문에 의하여 정기적으로 진단하는 현장에서 의사와 노동자 사이에 형식적인 수준의 대화만이 오가는 것처럼 <얼굴들> 또한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와 닿지 않는 말들과 그 말들 사이에 가려져있는 사람들의 노동과 삶을 비춰낸다. 불친절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극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쉽게 마주하는 일상과 그 순간의 ‘불친절함’을 그대로 극으로 구현한 실로 독특한 이강현만의 극인 것이다.
김응수, <옥주기행> <우경>
2008년 <과거는 낯선 나라다> 이후로 2009년 <물의 기원>을 제외하면 주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몰두하는 김응수는 2016년과 2017년 작품을 연속으로 발표하였다. 그 하나는 2016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다큐멘터리 <옥주기행>이며, 다른 하나는 2008년에 촬영이 이뤄졌지만 2017년 11월 ‘인디포럼 월례비행’을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극영화 <우경>이다.
<옥주기행>은 과거에는 ‘옥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전라남도 진도에서 감독이 만난 다양한 ‘소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리’이다. 영화는 초반에 감독이 들려주는 내레이션 정도를 제외하면, 158분의 상영 시간 대부분을 진도의 풍광들과 다양한 음향들로 가득히 채워낸다.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같은 서양의 클래식과 민요들은 자연스럽게 진도에서 오랫동안 전수되고 불러지던 민요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옥주기행>은 이렇다 할 설명을 줄이고 오로지 음향에 집중하고, 다시 음향이 함께하는 풍경에 초점을 기울이며 소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영화가 촬영되었던 진도 지역이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맹골수로가 있는 곳임을 생각하면, 영화가 은연 중에 말하고자 하는 생명의 힘은 그저 관념적인 차원을 넘어 현실의 것으로 와닿는다.
한편 2008년에 우연히 만난 시각장애인 안마사 ‘안우경’을 주인공으로 만든 2017년 신작 <우경>은 주인공 ‘우경’이 보이는 행보를 초점에 놓는다. 이렇다 할 정보 없이 우경의 일상을 비추던 작품은 그가 TTS(음성변환 소프트웨어)를 통해 컴퓨터로 책을 읽는 장면을 통해 그가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작품은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사물을 받아들임에 있어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이후 우경이 여행을 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그가 비록 앞이 보이지는 않아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비춘다. <옥주기행>이 청각에 집중하며 시각적인 감각을 협응했다면, <우경>은 청각적인 감각을 극대화하며 어떻게 시각적 감각과 조응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원우, <옵티그래프>
<옵티그래프>는 그간 실험적 성격의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이원우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그리고 김보람의 <개의 역사>와 더불어 2017년을 대표하는 ‘대안적인 방향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이승만 정권 치안국장(현, 경찰청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故 장석윤(1904 ~ 2004)은 백수(99세) 잔치가 끝난 후 자신의 외손녀 이원우에게 자서전을 요청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인 2004년 장석윤이 사망하면서 그 약속은 영영 지킬 수 없는 것이기 되고 만다. 하지만 이원우는 그 뒤로 자서전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자서전의 주인공이자 제1독자인 장석윤이 사망한 상태에서 장석윤이 원했을 방향과 상관없이 감독 자신이 주체적으로 그간 만든 <두리반 발전기> 등의 작업처럼 장석윤의 삶을 직조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드러난 장석윤의 삶은 충격적이다. 장석윤은 수많은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에 힘쓴 운동가였지만, 동시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 OSS의 특수요원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편으로는 이승만 정권 당시 치안국장으로써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에 연루된 어두운 과거를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원우는 단순히 장석윤에 대해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라거나 ‘이승만 정권의 부역자’라는 식으로 단순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대신 장석윤이 거쳤을 다양한 공간과 삶의 행적을 직접 맞닥뜨리며 그가 겪었을 삶의 순간을 스스로 이해하고자 한다. 동시에 20대에는 공군 홍보단으로 활동했지만,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반기를 내걸었던 자신의 삶과 장석윤의 삶을 맞대어 대비를 해보기도 한다.
영화의 제목 ‘옵티그래프’는 말그대로 ‘optical’(시각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autography’(자서전)이다. 이원우는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시각적으로 할아버지의 삶을 구현하려 한다. 그 삶은 너무나도 다층적이며, 모순적이고 다시 한편으로는 기존 장석윤이 스스로 발언하거나 그를 기록한 역사와도 충돌한다.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완벽한’ 장석윤의 일대기는 완성되지 않지만, 애초에 ‘완성된’ 역사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옵티그래프>는 ‘역사’ 자체가 가지는 불완전성에 초점을 맞추며, 역사가 지니는 다양한 면모들에 초점을 맞추는 유의미한 ‘실패’가 된다.
성신잉, <해피니스 로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성신잉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해피니스 로드>는 개인사와 다시 개인이 놓여 있던 대만의 현대사를 교차하며 전개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1970년대에 태어나 지금은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 살던 대만인 여성 ‘린수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간만에 고향 마을 ‘행복로’로 돌아간다. 한동안 접하지 못했던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린수치는 기억의 저편에 잠겨 있던 과거의 순간들을 조금씩 반추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과거와 함께 현대사를 회고하는 성격의 작품은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해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해피니스 로드>는 개인적인 삶의 회고와 개인이 놓여있는 사회의 시공간 사이의 관계를 적절하게 설정하며 그간 나왔던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길을 걸어간다. 한국처럼 오랜 시간 독재 정권과 계엄령 치하에 놓이다 민주화를 맞이하게 된 격동의 대만의 현대사를 놓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개인의 삶과 변화상에 대해서도 결코 허투루 시선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피니스 로드>는 사회와 개인의 상호적인 관계를 함께 조망하는 것은 물론, 연출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시기별로 달라지는 주인공의 내면적인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는 것에 성공한다. 그저 ‘그리움’에만 머물러 있지도, ‘회고’가 도구적인 수단에 머물러 사실상 배경에 그치는 것도 아닌 시대 자체를 마주하는 애니메이션으로써 당당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작품이 된 것이다.
번외 1. 나브와나 I.G.G, <배드 블랙>
<배드 블랙>은 분명 마냥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전개나 설정이 난무하고, 설상가상으로 2017년에 나온 영화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의 기술적 수준도 좋진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이 우간다에서 나온 본격 액션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를 볼 시선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나이지리아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도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가 이렇다 할 영화 촬영의 기반이 갖취지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렸을 적 보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기억을 지닌 우간다의 나브와나 I.G.G. 감독은 꾸준히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배드 블랙>은 제3세계에서 어떻게 영화를 받아들이고,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지를 실증하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게다가 무척이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액션을 그럴 듯하게 잘 구성한 것은 물론, 빈곤한 촬영 환경을 자신만의 고유한 테크닉으로 극복을 시도하려는 모습에서는 (5분이 넘는 자동차 추격 시퀀스를 거리 하나를 왔다 가면서 만들어 냈다!) 경외감마저도 느껴질 정도이다. 이래저래 한국이 제3세계 영화를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 <배드 블랙>은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번외 2. 정윤석,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이미 2016년 결산에서 번외로 소개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부득의하게 번외로만 소개할 수밖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추천하는 것은 여전히 필자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논픽션 다이어리>에 이어 주변부에 주목하며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분명 눈여겨볼 점이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해체한) 밤섬해적단의 멤버들이 놓인 다층적인 순간들, 다시 그러한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어떤 구태의연한 태도들. 영화는 이러한 모순적이며 폭발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가 앞으로 만들 작품이 기대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