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트 샌더스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단평

아무리 요소가 많아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by 성상민

1991년에 시로 마사무네가 두뇌만 사람, 나머지는 모두 기계인 형사 '쿠사나기 모토코'를 주인공으로 삼은 비정기 연재작들을 책으로 냈죠. 그것이 <공각기동대>의 시작입니다. 이미 <블레이드 러너>는 물론이고 그 전후로도 엄청 답습되었던 '기계/사이보그의 정체성'을 말하지만, 그 전의 SF와는 달리 만화 <공각기동대>는 꽤 시원시원하게 정체성을 자기 규정하고, 그로 인해 독특한 컬트가 되었습니다.

워낙 흥미로운 소재였다보니 많이도 영상화가 되기도 했고요. 당장 우리가 쉽게 알만한건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죠. 원작의 개그 코드를 모두 들어내서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감독 특유의 색채를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작에서 제시되었던 '정체성'의 문제에 좀 더 천착했다고 봐도 될까요. 이후 TV판 애니메이션도 제작되고, <이노센스>도 제작되고, 극장판 애니 ARISE도 나오고, 신극장판도 나오고 이젠 할리우드입니다.

이번 리메이크에는 참으로 미묘한 동화 재해석이었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감독이 붙었어요. 일단 최소한 원작이나 오시이 마모루를 통해 영상화된 룩앤필은 최대한 살리려고는 합니다. 개그기 없이 밑바닥에 착 붙은 분위기나 주인공이 전라가 되어 행동하는 씬을 보면 오시이 마모루에 영향을 더 받았다고 볼 수 있다만. (게다가 몇몇 시퀀스는 <아발론>이나 <인랑>의 그 느낌마저 드니.)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에서 두뇌는 인간이지만, 나머지 몸은 모두 '의체'(기계)인 주인공의 고뇌와 모든 것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상태에서 벌어질 수 있는 해킹, 군사 업체의 음모 등등의 이야기도 나름대로 꺼내긴 합니다. 심지언 OST에도 <공각기동대> 1995년 극장판에 참여한 카와이 켄지가 붙었어요. 딱 오시이 마모루가 건든 극장판의 음악도 비슷하게 가려 애씁니다. 이렇게 겉과 속 모두 재현했으니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성공적인 걸까요?

그러나 뭔가 따로 놉니다. 사이버펑크 스러운 미래 도시의 모습에 기계의 정체성 이야기도 있는데 (거기다 스칼렛 요한슨이 쿠사나기 소령 연기도 제법 하는데) 모든게 '분위기'만 재현하다 끝나요. 문제 의식은 가져오지만, 그냥 가져오는 것에서 끝납니다.

예를 들면 기왕 SAC에서 '쿠제 히데오'라는 캐릭터를 가져왔으면, 좀 더 활용을 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냥 가져왔다는 것에 작품은 의의를 스스로 가진 듯 합니다. 쿠사나키 모토코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미라'도 어째 할리우드로 넘어가며 '정체성'에 대해 원작처럼 쿨하지도, 그렇다고 오시이 마모루판 처럼 깊게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왜 여기에 모성애나 이성애를 붙여서 너무 뻔한 방식으로 답습하다 끝납니다.

분명 원작의 요소에, 오시이 마모루판 애니메이션의 자장 안에서도 (심지어는 굳이 안 가져와도 될 오시이의 다룬 작품들도) 가져올 걸 가져오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요소는 그득해도 그게 딱히 별 감흥을 못 줍니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오시이 마모루의 스타일이 이렇게 재현된다는 걸 잘 알려줘서 겉모습이나 액션은 흥미롭긴 한데.) 그냥 차라리 '공각기동대'라는 딱지 떼고 만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추신. 이 작품이 개봉하기 전에 '화이트 워싱' 문제가 있었죠. 배경은 일본 느낌 물씬 나는 사이버펑크의 세계인데 주인공이 아시아인이 아니라고. 제작진도 이 문제는 모르지 않았던지, 나름대로 장치를 하긴 합니다. 공안 9과의 토구사나 아라마키는 아시아인으로 캐스팅되었고요. (아라마키는 기타노 다케시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주인공에도 어떤 설정을 집어넣어 화이트 워싱 문제를 피하게 만들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사족입니다.

나오는 배경도 일본 등의 아시아필이 나고, 기타노 다케시가 맡은 아라마키는 대놓고 일본어로 대사치는데 다들 귀속에 번역기라도 달아놓았는지 아니면 먼 미래엔 일본어가 공용어라 그런지 그냥 다들 알아먹고 심지어 전개되는 모습만 보면 아시아권에서 흔히 볼법한 모성애 같은 요소도 넣어 버리는데 정작 중심 배우에는 서양 사람들이 나오고… 불균형한 느낌이 강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같은 논란은 이거에 비하면 약과라고 말하고 싶네요. 와패니즘이라 욕을 먹었어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미래상은 차라리 솔직했지, 굳이 아시안을 뺄 이유가 있나요. 빼나 안 빼나 그 자장에선 못 벗어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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