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영화 배급 수직 계열화를 말하는 보고서

프랑스의 다양한 영화 직능단체가 의뢰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번역하다.

by 성상민

http://www.kofic.or.kr/kofic/business/rsch/findPolicyDetail.do?boardNumber=39&policyNo=2446


영화진흥위원회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각종 행보로 많은 질타에 시달리고 있고 있지만,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흥미로운 연구페이퍼나 해외 동향을 소개하는 보고서를 작성-번역하는 곳도 결국 영화진흥위원회입니다. 여전히 시끄러운 가운데에서, 지난 3월 6일 영진위는 프랑스에서는 2016년 6월에 발표된 <집중화에 대항하는 영화계 : 프랑스 영화산업 내이 독립 경제 활동에 가해지는 위협들>이라는 보고서를 번역하여 공개하였습니다.


보고서는 파리1대학 교수이자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피에르 코프가 작성했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배포를 위한 독립영화연합(ACID)', '유럽독립배급사(DIRE)', '국립실험영화집단(GNCR)', '프랑스시나리오작가공동조합, '작가/감독/독립제작자의 권리 회복과 인식을 위한 민간 공동체(LARP)', '독립배급자조합(SDI)', '독립제작자조합(SPI)', '영화연출자공동체(SRF)', '영화제작자동맹(UPC)'이 공동으로 의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잘 감이 안 잡히지만 한국으로 따지면 독립영화협회, 시나리오작가조합, 감독조합, 프로듀서조합, 영화제작가협회, 그리고 영화인회의나 한국에선 최근 결성된 영화수입배급사협회 같은 단체들이 공동으로 보고서를 의뢰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목에서 나오듯이 보고서는 프랑스 영화산업이 날이 가면 갈수록 할리우드 직배사나 대형 배급사로 점유율이 집중되고, 다시 대형 배급사가 직접 경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점유율이 증가하는 수직 계열화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흔히 '영화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말하면 CJ E&M-CGV, 롯데엔터테인먼트-롯데시네마로 대표되는 재벌 기업의 수직 계열화를 생각나게 하지만 (여기에 곧 NEW가 '씨네스테이션Q' - 또는 '씨네Q'로 멀티플렉스를 내려고 하죠.) 사실 해외의 상황도 마냥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계속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가 극장을 겸영하는 것에 제동을 건 '파라마운트 판결'이 언급되지만 미국 이외 지역의 경우 한국보다는 덜해도 소수의 제작/투자/배급사가 상당수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다시 이들 영화사가 멀티플렉스를 경영하는 수직 계열화 현상이 계속 발생 중이기 때문이죠.


솔직히 말해서 일본 말고는 한국 외 지역의 극장 수직 계열화 문제를 잘 몰랐어요. 이미 일본에서 자국 영화는 물론 해외 영화 수입에 있어서도 독과점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토호'는 자사 직영 멀티플렉스를 꾸리고 있는 마당이고 그 밖에도 도에이, T-JOY 같은 기업은 물론 워너브라더스 재팬도 멀티플렉스를 만들며 수직 계열화를 시킨지 오래니까요. 영화진흥위원회 차원에서 번역한 피에르 코프의 보고서는 그간 잘 알기 어려웠던 프랑스의 영화 산업이 처한 현 상황을 흥미롭게 전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프랑스 영화 산업이 처한 상황을 말합니다.

1. 소위 프랑스 3대 배급사로 분류되는 파테-고몽, CGR, UGC(그리고 UGC와 제휴 관계에 있는 독립-예술 영화 배급사 mk2)가 멀티플렉스에서도 가공할 만한 위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3개 멀티플렉스(그리고 이와 제휴를 맺고 있는 mk2)의 극장을 모두 합쳐도 프랑스 전체 스크린 대비 30%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은 52.1%로 과반수를 이미 넘긴 상황이라는 군요.

특히 파리의 경우 상황이 가장 심각한데, 파리 내 3대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은 파리 전체의 71.5%에 불과하지만 파리 내 시장 점유율은 88.6%에 달하고 있음을 보고서는 지적합니다.

2. 프랑스는 국립영화센터(CNC)를 통해 계속 자국 영화의 배급을 공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자국 영화임을 증명하는 주어지는 자동 지원에, 영화별 상황에 따라 선별적 지원이 더해지는 형태) 극장에 개봉한 이후 손해를 보는 영화들이 대다수. 이러한 상황에서 배급사들은 서로 합종연횡하며 통합하고 있으며, 대형 배급사가 아닌 독립 배급사는 점차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상위 5개 배급사(20세기 폭스, 워너브라더스, UGC, 디즈니, 메트로폴리탄-이곳은 프랑스 배급사지만 미국 영화를 주로 배급한다고. 드림웍스-CJ, 파라마운트-롯데의 관계하고 살짝 비슷한가 봅니다.) 총 수입이 2014년 기준 전체 영화 수입의 43%, 상위 10개 배급사로 확장하면 (고몽, SND, 파테, 와일드번치, 스튜디오 카날이 추가됩니다.) 68%까지 차지한다고. 할리우드 직배사의 영향력이 거센 가운데 자국의 대형 배급사, 스튜디오 카날 같은 방송사 계열 배급사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보인다고 하네요.

3. 프랑스 역시 날이 가면 갈수록 극장 매표 수입보다는 매점, 광고 수입이 극장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고서는 2000년대 이후부터 프랑스 멀티플렉스가 도입한 '무제한 영화 카드'(간단히 말하자면, 월 정기권입니다.)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아무리 영화를 많이 봐도 연간 극장을 2-3번 밖에 방문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입으로 처음 도입된 '무제한 영화 카드'는 상당히 히트를 치며 극장 체인에겐 이득이 되었지만, 관객 수가 점차 주는 독립 극장들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멀티플렉스와 협약을 통해 '무제한 영화 카드'를 도입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군요.

월 정기권 형식의 영화 티켓이 도입된 건 좋았지만 영화 1인 관람권 가격은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급격히 올랐고, 가뜩이나 관객이 계속 줄고 있는 독립 극장의 입장에서는 다른 멀티플렉스와 발맞춰 티켓 가격을 인상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다시 그 때문에 관객이 주는 악순환에 놓였다고 합니다. 또한 '무제한 영화 카드'를 협약으로 도입한 극장들은 어느 정도 관객들을 끌 수는 있어도 부율 문제에 있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는 군요. 일반 영화의 경우 배급사와 극장이 나눠 가지는 비율이 5:5 ~ 6:4 였다면, 무제한 영화 카드를 통해 본 수익은 8:2라고 합니다.

또한 무제한 영화 카드를 통해 멀티플렉스들이 수입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기존에는 '예술과 실험 극장'-한국으로 따지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 편성되었을 예술/독립/실험영화들이 멀티플렉스가 스크린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점차 끌어들이면서, 정작 '예술과 실험 극장'이 예술/실험영화에서도 점차 배제되는 문제까지 보고서는 언급합니다.그렇게 보고서는 무제한 영화 카드 시스템이 관객들을 갈수록 멀티플렉스에 쏠리게 만들고, 소규모 독립 극장들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으로 지적하고 있네요.

4. 이런 상황에서 CNC나 1982년 도입된 '영화조정관' 제도가 대형 배급사/극장과 소규모-독립 배급사/극장 간의 갈등을 어느 정도 중재하고는 있지만 (멀티플렉스보다는 '예술과 실험 극장'에게 영화 상영의 우선권을 주는 식으로) 갈수록 P&A비용(홍보비)를 비롯해 배급사가 떠맡아야 할 비용이 날로 늘어나는 가운데, 대형 배급사를 낀 극장 체인의 힘이 날로 강해지고 있지만 진흥-중재 이상으로 규제 정책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음을 언급합니다.

5. 결론부에서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들이 총체적으로 프랑스 영화 시장이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왜곡된 경쟁' 상황에 놓이게 만들고 있음을 말합니다.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무제한 영화 카드'에 대해서도 딱히 큰 문제가 없다고 경쟁위원회(한국으로 따지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결정을 내린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네요. 보고서는 멀티플렉스, 대형 배급사의 상영과 배급에 지금보다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함을 외치고 있습니다.


물론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제외하면, 독립/예술영화관 밖에 사실상 남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프랑스 내부의 현실 역시 한국보다는 조금 나아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도 한국과 비슷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무제한 영화 카드' 같은 월 정액권이 도입되어 영화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처음 알았네요. 한국 영화 산업의 문제를 말하기 위해, 좀 더 깊고 넓게 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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