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지하 저널리즘 운동이 관객에게 말하는 것
매튜 헤인먼은 전작 <카르텔랜드>에서 멕시코의 가공할 만한 범죄 조직과 그 조직을 낳은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하며 무척이나 강렬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선은 시리아로 향합니다. 한때는 튀니지, 이집트와 더불어 '아랍의 봄'이 피던 국가, 그러나 혼란기에 발흥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IS의 등장으로 한치 앞을 알 수 없게된 곳. 그저 모두가 IS의 잔혹함에 대해 먼 발치에서 성토하기만 할 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저 '가십'으로 취급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리아 내외에서 IS 점령지의 실상을 취재하는 지하 저널리즘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라카(IS의 수도)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ently, RBSS)입니다. 영화는 RBSS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춥니다. 평범했던 중산층 시민들은 우연한 계기로 SNS를 통해 아사드 정권의 독재를 규탄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사드 정권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수준으로 저널리즘을 탄압하는 IS 앞에서도 그들은 생사의 고비를 매일 넘기며 미디어 액티비즘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저 단순히 '언론의 자유'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전하는 다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더 심도 있게 저널리즘의 의미, 더 나아가서는 아랍의 봄을, 그리고 이민자 혐오가 등장한 1세계 국가들의 위기를 바라봅니다.
서방 언론들은 '아랍의 봄'이 점차 무르익을 때 취재원을 보내 흥미롭게 사건을 전달했지만, 자신들이 원하던 방향으로 사건들이 흐르지 않고 생명의 위협이 닥치자 모두들 아랍을 떠납니다. 원래 그곳에 살던 거주민들만 덩그러니 남겨진 마당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저널리스트이자, 액티비스트가 되어 SNS를 통한 실태 전달에 나서게 된 대목에서는 미디어가 가지는 진정한 힘을 깨닫게 만듭니다.
또한 RBSS 활동가의 입을 빌어 'IS를 격퇴하는 것'이, 그리고 그저 독재정권을 내쫓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민중들이 만든 주체적인 권력이 세워질 때 비로소 '아랍의 봄'이라 칭해졌던 일련의 흐름들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 말하죠. 그러나 이러한 바람과 달리 상황은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채 함께 움직인 동료, 소중한 가족들이 IS에게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며 유럽으로 피신한 자신들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IS는 유럽에도 테러의 손길을 뻗고, 자신들과 같은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의 물결이 다시 넘실댑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안 제시 대신 점차 극한 대결로 판이 형성되는 마당에서, RBSS의 활동은 어떤 변화를 낳을 수 있을까요.
영화는 이에 대해서 뚜렷한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여전히 상황은 현재 진행중이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과 달리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널리즘 운동에 나서도 상황은 쉽게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모든 것이 교착된 마당이도, 그러기에 작품은 결코 밝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지하 저널리즘 활동을 멈추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간접적으로나마 민중들이 펼치는 미디어 액티비즘이 이후 어떤 식으로든 희망이 될 것임을 내비추죠.
어떤 의미로는 지금의 한국과도 맥락이 닿아있는 다큐기도 합니다. 환경영화제가 개막한 5월 18일은 광주에서 민중봉기가 있던 날이고, 국내외의 언론들은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참상을 다루기 위해 노력했었죠. 그리고 2017년 지금,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지만 정작 어떤 저널리즘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 편 언론'으로 편가르기만 횡횡할 뿐이죠.
서울환경영화제가 너무나도 강렬한 <유령의 도시>를 개막작으로 감히 택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들이 아니었을까요. (심지어는, 개막식 현장에서 '블랙리스트 어워드'란 이름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을 했으니.)
한국의 저널리즘 상황을 시리아의 지하 저널리즘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갑을오토텍'은 물론 지역에서 수도없이 벌어지는 온갖 불합리와 노동 탄압이 잘 보도되지 않는 건 어떤 의미에선 언론에 점차 노출이 뜸해지는 시리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작품은 한국으로 하여금 어떤 저널리즘이 필요한지를 반문하게 만듭니다. 민중이 주체가 되어, 거대 미디어가 바라보지 않는 장소와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