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사회적 참사를 바라보는 단적인 초상
지난 몇 년 간 김어준이 제작한 일련의 다큐들이 개봉했죠. 최진성이 연출한 선거 조작 음모론의 <더 플랜>, 주진우를 내세운 <저수지 게임>이 소위 ‘프로젝트 부’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다큐입니다. <그날, 바다>는 그 마지막 작품이에요.
그러기에 <그날, 바다>의 구성은 앞서 말했던 ‘프로젝트 부’의 두 작품과 닮아있습니다. 고발 위주고, 챕터별로 쪼개서 드러내며,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등의 상황 재현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같은 패턴으로 <그날, 바다>는 ‘세월호가 닻을 내려 침몰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왜 김지영과 김어준은 ‘닻’을 유력한 침몰 원인으로 보는 것일까요. <그날, 바다>가 제시하는 이유는 크게 1) 세월호의 GPS 기록과 레이더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다. 2) 좌회전 도중에 좌측으로 돈 것은 물리법칙이 어긋난다. 3) 게다가 닻에 사진으로 보기에는 마찰이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작품은 교묘하게 국정원인듯 아닌듯 넘어가는) ‘의문의 검은 정장’과 ‘애니메이션 재현’을 통한 침몰 당시의 순간이나 (배가 기울며 사람이 바다에 떨어지는 모습 등이 그대로 나옵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신들의 모습과 유가족의 눈물을 부수적으로 담는 겁니다.
얼핏 보기엔 정말 그럴싸해요. 게다가 작품은 무슨 서브리미널 메시지마냥, 앞서 드러낸 시퀀스나 주장을 빠른 간격으로 반복 제시하며 <그날, 바다>의 이야기가 마치 확정적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기 쉽게 만듭니다. 하지만 조금만 잘 뜯어보면 뭔가 골치아픈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작품은 정부가 발표한 GPS 행적과 레이더 행적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항적을 재수정해 세월호가 ‘수심이 얕은 해저를 지나다 닻을 내려 침몰했다’고 빠른 결론을 내리지만, GPS 자체가 오차 범위가 상당히 날 수 있다는 건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이미 답을 정해진 다큐는 그 전후로 모든 흔적과 증거를 답에 끼워맞추기에 바쁩니다. ‘시뮬레이션’과 ‘실제 사건’ 사이에는 차이가 분명히 발생하지만 (게다가 시뮬레이션이 구현된 시점은 아직 세월호가 인양되기도 전이었어요.) <그날, 바다>는 그 ‘오차’를 곧 ‘조작’으로 규정합니다.
감독과 김어준은 자신들이 세월호 침몰의 진짜 원인을 찾았다며 ‘박수’를 치지만, 이미 애초에 정해진 답에 데이터를 끼워 맞추는 것이 얼마나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물론 자족적인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걸로 전부인걸까요?
<그날, 바다>는 세월호가 주제고,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치 이상호의 <다이빙벨> <김광석>, 김어준이 관여한 프로젝트 부의 두 전작이 그랬듯 감독(과 김어준)의 모습이 가장 강조되는 것입니다. 물론 다큐멘터리에도 연출자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들리고, 어느 정도의 개입 역시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날, 바다>는 그냥 감독과 김어준이 주인공이에요. ‘세월호 문제를 추적하는 자신들’이 계속 강조되며, 그 사이에 세월호는 물론 참사에 얽힌 사회적-역사적 지점들 역시 사라집니다.
http://todayboda.net/article/7218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이었던 박상은 씨가 쓴 <오늘보다> 칼럼에도 드러나지만, 세월호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그저 ‘누가 침몰시켰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불안전한 배가 버젓이 다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도 국가폭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습니다. 세월호 문제에 연대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나쁜 나라>를 비롯한 옴니버스 연작 다큐를 통해서 유가족들이 놓인 현 상황과 한국이 ‘사회적 참사’를 독해하지 못 하는 문제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최근 온라인으로 공개된 김응수 감독의 <오, 사랑>과 <초현실>은 에세이 영화의 문법으로 타인 또는 유가족의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가 낳은 파장을 깊게 드러내죠.
하지만 이전에 큰 논란이 된 이상호의 <다이빙벨>이나 이번 <그날, 바다>는 그저 ‘감독 자신’이 중심이 되어 ‘음모론’을 설파할 따름입니다. ‘의도적으로 구조를 방해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말은 무척이나 강력하고 마음을 흔들기에는 좋지만, 사유를 하지는 못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접근 역시 ‘사건 환기’에 도움이 된다며 의의를 부여할지 모르겠어요. 물론 어느 정도는 환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안전’을 ‘불감’하게 만드는 구조를 보지 않은채, ‘배후’만을 골몰하는 행위가 2008년 촛불시위의 MB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러기에 <그날, 바다>는 조금은 다른 의의를 지닙니다. 마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음모론 다큐 <힐러리의 아메리카>를 만든 미국의 극우 논객 ‘디네쉬 드 수자’처럼 지엽적인 문제와 사실을 자극적으로 비추는 다큐가 한국에서도 이미 큰 호응을 받고 있고, 다시 이 ‘지엽’만 언론과 여론이 반복재생산하는 사이에 문제를 만든 구조적 원인이나 흐름은 거꾸로 등한시되는 루틴이 정착된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상황이 아닌가 말입니다. 이걸 다시 또 극우 세력은 어설프게 따라하려 하고요. ‘말만’ 많은 사이에, 깊이 있는 고민은 사라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날, 바다>는 사회적으로 파장을 끼친 사건을 논하는 한국의 어떤 한 흐름을 단적으로 비추는 작품인 것입니다. 여러모로 문제적이고, 정말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추신. <그날, 바다>에 등장하는 ‘닻에 녹이 슬었으니 닻 때문에 침몰한게 맞다’는 주장에 대한 정용택 감독의 반론과 비판. https://m.facebook.com/51plusfilm/posts/1941995162509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