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고전 B급 SF물을 기반으로 만든, 2010년대를 위한 작품

by 성상민

* 영화의 스포일러를 최대한 제거했지만 그래도 있습니다.

* 추후 상세한 비평을 다시 작성할 예정입니다.


델 토로는 어느 순간부터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모티브가 된 작업들을 줄곧 했었습니다. 괴수물에 대한 사랑으로 만든 <퍼시픽 림>, 고딕 호러가 바탕인 <크림슨 피크>. 그리고 이번 신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할리우드에서 한동안은 줄창 나왔던 괴생물체 소재의 영화들을 비롯해 그 괴생물체가 인간 여성과 교미를 맺는 식의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들이 꽤나 있었죠. 정말 전형적인 B급 SF 호러나 스릴러들이 참으로 많았었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러한 크리쳐물을 바탕으로 냉전 배경의 스파이물 등의 요소를 섞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어요. 그냥 단순히 그 당시의 클리셰를 답습하거나 그저 배격하는 대신, 2010년대의 가치관이나 시대상을 담아 재해석하며 극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군가 보기엔 영화에 별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괴생물체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갑자기 비밀스러운 연구소가 등장하는 것도, 그리고 참으로 냉전시대에 어울릴 법한 괴생물체를 둘러싼 암투 같은 것도 말이죠. 영화는 그 사건들에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건들에 새로운 디테일들을 추가시키며 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 결과 영화는 스토리의 전개는 물론, 영화의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대비를 가지게 됩니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연구소와 극장이라는 공간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를 기준으로 백인-남성-미국 중심주의적 사고가 우선시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서 든 ‘주류적 기득권’을 지니지 못한 인물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죠. 영화는 장르적 흥미나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이 가상의(또는 은유적으로 드러나는) 경계선을 비춰냅니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여전한 위계, 세트 디자인으로도 드러나는 권력의 고압적인 자세, 자신과 외형이나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배제가 이뤄지는 상황들 등등 말이죠.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가 꽤나 세세하게 짚고 있기에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저 단순한 장애인-여성인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비인간-남성인 괴생물체(더그 존스) 사이의 로맨스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둘이 얼마나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으며, 이 둘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며, 다시 그 관계의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특성들을 보이며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죠. (전형적인 백인 남성이거나, 흑인으로써 받은 차별에 여성-청소부라는 계급적 위치가 더해지거나, 동성애자이거나, 소련의 스파이지만 과학적 열정을 굽히기 어려운.)

그러한 디테일들이 기반을 하고 있기에 골간만 놓고보면 단순한 구조인 작품은 도리어 큰 몰입감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빛과 그림자, ‘물’이 지니는 이미지, 깨끗함과 더러움 등을 활용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능수능란한 연출이 더해지며 영화는 더욱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죠.

특히 샐리 호킨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특정 시퀀스를 제외하면 언어적 표현이 철저히 표현이 제한되고, 표정과 몸짓으로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정말 절절하게 잘 보여줍니다. 마이크 리의 작품에 계속 나왔던 힘은 이번 작품에서도 강렬해요. 연구소의 상사인 스트릭랜드 역을 맡은 마이클 섀넌 또한 백인/남성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만 쉽게 무너질 정도로 연약한 이중적인 지점을 인상적으로 드러내고요.

그렇게 연출, 스토리, 배우의 연기, 장르가 모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판의 미로> 이후 한동안은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줄곧 해오던 델 토로가 무척이나 절치부심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로는 델 토로가 <크로노스>, <악마의 등뼈>와는 다른 톤을 지니는 ‘2기’의 분기점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니.

로맨스를 기대했던 분들은 물론, 196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알고 싶은 분, B급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분들, 기예르모 델 토로의 그간 작품이 좀 아쉬웠던 분들, 그리고 소수자 문제의 영화적 표현을 고민하는 분들이 모두 흥미로워 할 작품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델 토로 뿐만이 아니라 영화의 ‘새로운 표현’을 고민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분기점이나 이정표가 되지 않을지. 제가 봐도 조금은 과찬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다양한 면모를 모두 적절하게 담아내며 소화하고 있기에 감히 이런 말을 붙여봅니다.

추신. 한국판 영화 제목의 부제인 ‘사랑의 모양’은 아무리 극장 모객을 위해서라고 이해하고 싶어도 그냥 ‘물의 모양’이 더 적절하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사랑의 모양’도 넓게 보면 맞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물’이 지니는 이미지가 참으로 다양하고 커서.

추신2. 1950-60년대 미국 시대상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많이 흥미로워 할 작품입니다. 왜 스트릭랜드가 ‘캐딜락’를 타고 싶어하는지, 어째서 흑인 부부는 파이 가게에서 앉아서 식사할 수 없는지 등등 말이죠. 그만큼 그 당시의 허상과 위선을 신랄하게 짚고 있다는 뜻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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