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대중영화가 놓인 과도기의 한 모습
2010년 인도 델리에서 열린 커먼웰스(영연방) 게임에서 인도 선수가 처음으로 여자 레슬링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사건이 바탕입니다. 자매 선수가 출연하고, 아버지도 유명한 레슬링 선수여서 인도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죠.
한국에서도 국제대회 메달이 화제가 되는데, 인도에서 영연방 게임 여자 레슬링 부문 첫 메달이란 기록은 당연히 주목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선 <세 얼간이> <지상의 별처럼>으로 알려진 아미르 칸이 제작하고, 2011년 데뷔한 니테쉬 티와리 감독이 이 실화를 극으로 각색했습니다.
영화는 먼저 대중영화로써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16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할 틈을 미처 느낄 새가 없이 호쾌한 레슬링 장면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빼았고, 확실한 기승전결과 인물 간의 갈등/관계를 형성하며 극의 리듬이 무척이나 활기찹니다. 특히 레슬링 장면의 움직임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스턴트 배우가 움직임을 중간중간 메꾸긴 해도, 상당히 거칠고 빠르게 돌아가는 레슬링의 현장 상당수를 배우들이 직접 소화합니다. 리얼리티가 강화되는 것은 물론, 왜 이들이 레슬링에 목숨을 거는지도 직접적으로 전달됩니다.
<당갈>의 연출이 대중영화의 문법에 상당히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영화의 내용은 무척이나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은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입니다.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서로 섞이는 와중에서도 마하비르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마하비르는 게다가 다양한 생각과 욕망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부분은 한때는 유망한 레슬링 선수였으나 가족의 반대와 경제적 이유로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한 자신의 한을 자식들을 통해 대신 이루고 싶어하는 개인적인 욕망입니다.
마하비르에게 국제대회 메달에 대한 욕망은 한동안은 ‘아들’이 있어야만 충족되는 것이고, 무척이나 가부장적인 질서에 순응하는 욕망이죠. 허나 이 욕망은 다시 여러 갈래로 분화합니다. 딸들에게도 격투기에 두각이 있다는 것을 안 마하비르는 딸들이 레슬링 선수의 길을 걸을 것을 강요합니다. 딸에게 선수의 길을 강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한 수단이지만, 영화는 개인에게 집중된 욕망이 마하비르 자신과 딸에게 각자 분화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단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딸의 선수 생활은 딸들의 성장과 자신의 노화를 앞두며 ‘가족애’로 변화하고, 놀지도 못하고 끊임없이 고된 레슬링 훈련에 시달리는 딸들은 ‘아내’로써의 길만 남게 된 동갑내기 친구들의 모습을 대비하며 자신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물론 이를 바로 ‘페미니즘’이라 부르긴 어렵죠. 결말부 마하비르의 대사 정도를 제외하면 마하비르가 딸들을 대하는 자세는 ‘가부장’으로써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 하고, 영화는 딸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심리를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기 어렵게 합니다. 게다가 영화의 마무리에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인 ‘애국주의’까지 묻어있으니까요.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한편으로, 시작은 수동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주체성을 조금씩 형성하는 기타-바비타 포갓 자매의 모습을 통해 인도 사회 속 여성들이 지닌 가능성을 비춥니다. 영화의 중심점이 여전히 가부장 ‘마하비르’에게 머물러 있고,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말하지는 않더라도 역설적으로 마하비르의 괴팍한 모습과 인도 사회 내부의 성차별이 충돌하며 인도 사회가 여성에 강요하는 성역할을 성찰하는 시선을 비추게 되는 겁니다.
물론 좀 더 본격적인 페미니즘을 원했다면 <당갈>은 당연히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도를 비롯해 일본,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의 영화들이 여성의 움직임을 도통 중심으로 삼지 않는 상황에서 <당갈>이 보이는 변화의 모습은 논쟁적이지만, 흥미로운 상을 비추는 겁니다. 영화 속에서 포갓 자매가 현실의 장벽 앞에서 싸우는 모습은 비록 그 시작이 전형적인 마초-가부장 남자에 의한 강압인 것은 무시할 수 없지만, 동시에 여성 스스로가 몸으로 맞부딛치며 인습을 넘으려는 시도는 일반 (특히 일상에서 차별을 마주하는 여성) 관객들에게는 쾌감을 주니까요.
그런 점에서 <당갈>은 과도기의 한 가운데 놓여있는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과거에만 갇혀있지는 않습니다. 인도 대중영화나 스포츠물의 클리셰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동시에 그간의 대중영화가 가지 않았던 길을 건드려 시도합니다. 마치 故 스리데비가 주연으로 등장한 2014년 개봉작 <굿모닝 맨하탄>(잉글리쉬 빙글리쉬)이 여러 연출-서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전형적인 중산층 여성이 놓인 한계를 스스로 벗어나려는 시도를 그렸듯 <당갈> 역시 비슷한 궤적 위에 놓인 것이죠.
특히 개인-사회 간의 관계가 가족 사이의 위계로 전이되고, 다시 그 안의 개인이 사회와 충돌하는 모습으로 흐르는 관계와 맥락의 흐름은 좀 더 깊게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여성-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고민할 필요는 존재합니다. 특히 한국 영화나 콘텐츠계 내부의 상황이 여전히 여성 캐릭터나 서사를 고민하지 못하고, 대다수의 작품의 과거의 흐름을 답습하고만 있는 상황에서 <당갈>은 분명 하나의 척도가 될 수 밖엔 없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은 <오버 더 톱>의 답습인 <챔피언>이 직배 투자로 제작되는 마당이니.
추신. 실화가 된 경기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제 경기는 포갓 자매가 그야말로 상대방을 압도했다고 하는 군요. 인도 관객은 물론 한국 관객 역시 이야기의 결말을 전부 아는 상황에서, 극적인 각색은 어쩔 수 없이 필요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