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에드워드 양의 작품을 다시 극장에서 보는 의미.
부끄럽지만, 정말 어렸을 적에 컴퓨터에서 봤던 작품이었다. (아마 그 때 영화광이었던 큰 누나가 다운받았던 것 같다.) 뭔가 사건이 터지긴 하는데 느릿한 흐름에, 이해 안 되는 내용이 겹치니 그때는 채 반도 안 보고 다시는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잊었던 ‘에드워드 양’이라는 이름을 고교 시절이 되어서야 조금씩 접하고,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함께 <하나 그리고 둘>은 다시 극장에 걸리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에드워드 양이라는 이름을 접한 이들에게 이번 영화 개봉은 잊지 못할 사건이 될 것이다.
1999년 작품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인 <하나 그리고 둘>은 에드워드 양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표석과도 같다. 활기차 보이지만 동시에 막혀있는 대만 사회를 배경으로 삼으며,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한편 충돌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 에드워드 양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통해 무대와 시선, 그리고 시점까지 모두 넓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냈다. <하나 그리고 둘>은 그렇게 넓힌 시공간을 하나로 모으는 동시에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로 분절하며 흐름을 구성한다.
영화는 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중첩하며 서사를 직조한다. 아디(진희성)는 ‘길일’에 맞춰 애인 샤오얀(소숙신)과 혼인을 하지만, 정작 결혼식 당일부터 쭈욱 혼란한 일들만 연속해서 벌어진다. 아디의 누나 민민(금연령)도, 그의 남편 NJ(오념진)도, 민민과 NJ의 장녀 팅팅(켈리 리)과 양양(조나단 창)까지 모두에게 있어서 말이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각자의 서사와 비밀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쉽게 개인을 벗어나지 못 한다.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들은 생각하기 어려웠던 형태로, 또는 상당히 극적인 형태로 분출되어 다시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다. 어딘가 답답히 꼬여 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일탈’을 시도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어떤 형태의 삶일지라도 마냥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지독히 현실적인 깨달음이다.
<하나 그리고 둘>이 제작-촬영된 시기가 1998-1999년임을 생각하면, 영화 속에 분출되는 답답함과 불안함의 감정은 <공포분자>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드러났던 대만 사회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불안감이다. 90년대 후반은 형식적으로 장제스 가문-국민당의 독재는 끝이 났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 본토의 문이 열리고,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경제 위기는 또 다른 고민들을 만들었다.
일견 느끼기엔 에드워드 양의 이전 작품들보다 등장인물들은 자유로이 움직이지만 언행과 표정에 서려있는 미묘함은 시대가 낳은 모습이리라.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모순의 순간들을 영화는 ‘풀 샷’과 ‘거울상’을 통해 이미지로 드러낸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순간을 최대한 카메라의 줌을 뒤로 당기며 인물을 감싸는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촬영한다. 또한 공간 내부로 들어서는 인물 역시 한 번 이상 반사되고 굴절되는 상으로 움직임을 그려낸다. 서로 자신만 생각할 뿐 주변을 돌아다보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영화는 몸소 카메라의 원근을 조절하고, 진실하기 어려운 감정 또한 빛을 투영함으로서 상징한다.
작중에서 이 모순을 감지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찰을 시도하는 인물은 오직 ‘양양’이다. ‘내가 보지 못하지만 남은 보고, 나는 봤지만 남이 못 보는 걸’ 짚어내기 위해 양양은 아버지 NJ의 카메라를 빌려 스스로의 시선을 담아 스냅샷을 찍기 시작한다. 비록 그 결과물은 초점이 맞지 않고, 피사체는 이리저리 흔들려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양양의 사진은 그동안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으려 했던 ‘인물들의 뒷모습’이 연속해서 담겨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활용은 <하나 그리고 둘>이 단순한 통속극과 현실 인정 욕구에 머무르지 않고, 어떠한 자세와 시선으로 각자- 또는 개인이 놓인 공간을 볼 것인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결말까지 영화는 주인공들을 감싼 사건들의 마무리를 내지 않지만, 양양의 시선이 발견되는 순간 떠들석했지만 비어있는 오프닝과는 다른 의식을 발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양이 <하나 그리고 둘>을 끝으로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고, 2007년 세상을 떠난 이후로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 한동안 그와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같은 이름으로 대표되던 대만 영화는 어느새 <나의 소녀시대>를 위시한 하이틴 로맨스로 한국에 인식되어 있다. 근래의 대만 영화들에게도 청춘의 한 페이지가 있으며, 다양한 감정들이 투사되어 있지만 전해지는 감각이 다른 것은 어떤 의미로는 ‘가벼움’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차이가 아닐까. 일상의 균열에서 깊이 있는 접근을 감행했던 그의 시도는 대만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근래 아시아에서 재상영되고 있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들이 과거를 반추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물론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 양이 이미지로 드러냈던 것처럼,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야만 돌파구 모색도 가능할 것이다.
추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이어 <하나 그리고 둘>도 영화제작가협회가 만든 영화사인 ‘리틀빅픽쳐스’가 수입/배급합니다. 그리고 전작에 이어서 이번 작품도 사실상 CGV에서만 볼 수 있고, 이외 상영관에서는 상영 허가를 거의 내주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물론 상영하고 싶은 극장을 고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배급사의 권한인 만큼, 이 자체를 가지고 법적인 문제를 걸기엔 현재로서는 어렵죠. 하지만 ‘리틀빅픽쳐스’가 처음 탄생하며 내건 이유나, 에드워드 양이 작품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정말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밖엔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