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인랑> 단평.

도미노처럼 기반부터 무너지다

by 성상민

1.
일본 영화-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라면 <인랑>이 본래 오시이 마모루가 만든 가상의 작품 세계관 ‘케르베로스 사가’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일본이 추축국이 아니라 연합국에 속해 2차 세계대전을 치르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독일에게 점령되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이죠. 안보 투쟁으로 뜨거웠던 일본의 1960년을 기반으로, 더욱 강경하게 투쟁하며 무장까지 갖춘 좌파와 그에 맞불로 대응하는 공권력의 대립을 그렸죠. 동시에 무장 공권력 내부의 ‘이용하고’ 다시 ‘이용당하는’ 개인의 이야기까지 그린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인랑>(2000)은 이 ‘케르베로스 사가’의 네 번째 작품이자,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을 매체로 나온 이야기입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애니메이션 <인랑>을 직접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제작과 각본으로 참여를 했었죠. 하지만 작품 자체는 ‘케르베로스 사가’에 속한 만큼, 앞서 말했던 세계관의 공통적인 특성은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간의 작품들이 취했던 방향처럼, 밀리터리적 요소를 매니아틱하게 구체적으로 그리면서도 정직 내용은 ‘총기 액션’에만 치중하지 않고 등장인물-구조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도 같았죠.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습니다. 이전의 케르베로스 사가 시리즈에 속한 <붉은 안경>(1987)이나 <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견>(1991)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기획되어, 이래저래 기괴해진 바가 없지 않지만 그러기에 상당히 협소한 시나리오도 키치적인 분위기 안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반면 <인랑>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기에 (바로 이전에 나온 만화 <견랑전설> 보다도)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는 유려한 연출이 가능했고, 프로덕션I.G이 담당한 작화도 무척이니 섬세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의 라인은 여전히 거대한 세계관의 부분만을 확대하려 다루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언밸런스가 생깁니다. (사실 그런 미시적 접근이 오시이 마모루의 특징이자,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발표된 작품들의 평이 더욱 심하게 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그렇다면 김지운의 <인랑>은 어떨까요? 몇몇 세부적인 전개를 빼면, 의외로 <인랑>(2018)은 2000년의 작품 얼개를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특기대원과 자폭한 소녀의 언니를 자처하며 나타난 여자, ’인랑’이라는 인간병기의 존재, 심지어는 특기대와 공안부의 암투도 똑같이 같다 놓았습니다. 게다가 ‘늑대와 빨간 두건’ 이야기도 있고. (게다가 이 애니메이션 파트는 프로덕션I.G 제작입니다.) 세트 디자인이나 OST에서도 원작의 영향이 무척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인랑>의 실사영화판과 원작 애니메이션을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영화판은 이미 근본적인 세계관 설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걷습니다. 원작을 감싸는 ‘케르베로스 사가’는 작품마다 조금씩 설정이 달라도, 한때는 뜨겁게 달아 올랐으나 결국은 운동 안팍의 문제로 지리멸렬해진 전공투의 행로를 기반에 삼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품들이 무척이나 거칠게 튀는 지점이 많아도, 일본인 대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지점이나 공권력-대항폭력 모두를 극단화시킴으로써 일본 사회의 흐름을 장르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지운의 <인랑>은 겉모습은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맥락에 기반합니다. 배경이 근미래라서 생기는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폭력에 대응하며 과격해진 원작의 ‘섹트’와 달리, 이번 영화의 ‘섹트’는 통일 흐름에 반대하며 과격해진다는 설정 위에 놓여 있어요. 이런 마당에 이에 맞서는 공권력의 속성도 ‘공안부’에게만 악역을 씌워 놓을 뿐, 전반적인 정부의 흐름에는 은근슬쩍 현재 흐르는 ‘통일의 꿈’ 같은 이미지를 갖다 놓습니다. 드높은 이상에서 출발했으나, 공권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끝내 실패한 전공투 투쟁의 역사와 표상에서 기원한 ‘케르베로스 사가’와 달리, 애초에 이미 한 쪽이 악역 이미지를 모두 덮어쓰는 판국에 폭력 속의 갈등이 어떻게 성립할까요. 각색 중에 생길 여러 고민을 이해하려 해도, 이미 작품의 근본적인 시작 단계에서 곤란해집니다.

기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결국 세부적인 흐름 또한 휘청일 수 밖엔 없습니다. 원작이나 이번 리메이크 모두 전투씬보다는 ‘권력 내 암투’, 그리고 그 안에서 정처를 잃은 개인이라는 점에 속성을 맞추는 것은 같지만 선악 자체를 불분명하게 둔 원작과 달리 뚜렷한 선-악이 있는 마당에, 김지운의 <인랑>에서 암투는 느와르가 아니라 어설픈 놀음에 불과해집니다. 이번 작품에서 무척이나 말이 많은 임중경(강동원)-이윤희(한효주) 사이의 로맨스 관계나 엔딩의 논란이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런 나이브함이 애초에 놓인 덕분이겠죠.

이런 상황에서 이모개가 담당한 촬영 (특히 남산타워의 거울 시퀀스) 이나 세트 디자인은 또 좋다보니 결국 남는 건 ‘애매함’입니다. 아무리 원작이 직접적으로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고 미시적으로 관계를 소구될지라도 그것이 일본 관객에서 와닿았던 지점은, 회색 지대의 역사에 기반한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무턱대고 가치의 경중을 구분하다 보니 결국 세부적인 디테일이 좋아도 도미노가 무너지듯 연쇄적으로 붕괴할 수 밖엔 없습니다.

3.
<인랑>이 낳은 최종적인 애매함은 무척이나 뼈가 아픕니다. 애초에 김지운의 영화에서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 정도를 빼면 그다지 스토리를 좋게 느낀 적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꽤나 그럴듯한 장르를 구현했던게 김지운이었음을 생각하면 기반 단계에서 스스로 무너진 <인랑>은 2018년 한국 영화가 놓인 한계 상황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어요.

그간은 쉽게 한국 영화의 문제적 상황을 이명박-박근혜에 놓고, CJ를 비롯한 대기업에 미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에서 참신한 척하며 안전한 길만 계속 걸어가고, 그러기에 역으로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 자꾸만 늘어나는 모습은 단순히 특정 외부 요소가 아니라 한국 영화 산업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밖에는 없어요.

일본 이상으로 더욱 격동의 역사가 한국임을 생각하면, 더 뼈를 찌르는 리메이크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영화가 제작 발표될 때 생각을 잠시 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가 격동적인 동시에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도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은 간과했었네요. 어찌보면 외형적인 크기만 커진채, 심화한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 그 자체에 대한 상징 같은 영화가 바로 <인랑>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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