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버닝> 단평 : 좋든 싫든 이창동의 연장선

하루키의 원작에 한국적인 고딕의 색채를 더하다

by 성상민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입니다. 이창동이 2010년 <시> 이후로 8년 만에 발표하는 후속작이기도 하고요. 전반적인 설정이나 플롯은 원작과 비슷합니다. 여주인공이 팬토마임을 한다는 등 사소한 부분도 고스란히 언급되어 있어요.

그런데 세부적인 분위기로 접근하면 하루키의 원작하고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릅니다. 원작에서도 언급되고, 아예 이번 작품에서 대놓고 대사로 나오는 ‘윌리엄 포크너’ 특유의 고딕적인 색채도 연상되고, 역시 대사로 언급되는 <위대한 개츠비>도 떠오르고. 사실 그냥 이창동의 연장선상 같기도 합니다.

영화는 원작에서도 등장하는 요소인 ‘팬터마임’으로 상징되는 ‘실재’의 문제에 접근을 시도하지만 이창동은 여기에 고딕의 분위기와 계급과 공간의 요소를 삽입합니다. 어떤 계급에 위치하고, 어떤 공간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층위도 엇나가고 실재에 대한 기억이나 입장도 엇갈립니다.

<버닝>은 이를 더욱 두드러지도록 표현하기 위해 색조와 조명의 대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중동 건설 현장에서 번 돈을 축산업으로 다 날려먹고, 대남 방송이 들리는 파주 외곽에 사는 ‘종수’(유아인)의 집은 몇 시퀀스를 제외하면 아무런 빛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기본적인 의식주만 겨우 갖춰져 있어요. 반면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한때는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지금은 카드빚에 시달리며 행사 모델로 겨우 먹고 사는 ‘해미’(전종서)는 어려운 사정에도 서울 후암동에 살죠. 북향이라 빛이 정말 안 들어오지만, 그래도 종수의 집보다는 밝고 멀리 남산타워가 반사하는 빛이 들어옵니다.

종수와 혜미의 공간이 인위적으로 인공조명을 드러내지 않아 더욱 어두워 보인다면,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만났다고 하는 ‘벤’(스티브 연/연상엽)은 반포동 고급 빌라에서, 원하는 대로 채광도 이뤄지며 다양한 색채를 만끽하며 살아갑니다. 영화는 이렇게 세 명이 정주하는 공간에서부터 차이를 둡니다. 그 공간의 이미지를 통해 계급에 따라 공간이 결정됨을 보이고, 다시 그로 인해 생각의 범위까지도 결정됨을 드러냅니다. 종수와 해미가 ‘없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면, 벤은 ‘있는 것’을 없앨 수도 있어요. 그건 단순히 물체나 사물의 뜻이 아니라, 각자 기억하는 행동하는 심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점이 <버닝>의 핵심입니다.

원작 <헛간을 태우다>가 의문의 사내가 주인공에게 주기적으로 헛간을 태운다 주장하지만 정작 그 헛간이 보이지 않으며 생기는 모순으로 클라이맥스에 치닫는다면, <버닝>은 원작의 구도에 각자 서있는 위치-공간에 따른 인식의 차이라는 요소를 심는 것입니다. 이창동은 이 ‘생각의 차이’를 스릴러적인 요소로 활용하고, 직접적으로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주인공 종수는 물론 관객으로 하여금 심리적인 압박감을 강하게 낳습니다. 정작 압박을 주는 상대방은 무척이나 여유롭고 평온한데 말이죠. 심리의 대비를 사용하는 효과가 좋아요.

문제는 이 생각의 대비가 작동하는 ‘방아쇠’(트리거)입니다. <버닝>이 심는 좋은 점도 이창동의 전작들이 효과적으로 드러낸 심리 드라마의 연장이라면, 그 드라마가 발생하는 요소의 구태의연함도 이창동 전작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여자’가 영화의 핵심이서 문제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애초에 원작 <헛간을 태우다>부터 <버닝>에서 전종서가 맡은 ‘해미’에 해당하는 여주인공에게 갑작스럽게 사건이 발생하며 흐름이 전환하고 있으니, ‘해미’에게 발생한 문제에 집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칠 수 있어요.

그러나 문제의 핵심이 ‘여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모양새는 과거에도 논란이 일었던 <오아시스>를 비롯하여 이창동이 이전에 여성을 그렸던 방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아 있습니다. 여성은 수동적 객체 이상을 넘지 못하고, 깊이 역시 얕게 그려집니다. 게다가 작중 내내 폭발할 듯 건조한 분위기가 결말에 도달하는 순간 이창동의 전작들이 항상 갔던 방향으로 가버리니 언밸런스한 감각은 더욱 강해지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버닝>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로든 ‘이창동의 영화’입니다. 각자 놓여 있는 계급과 공간의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생각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와 장르성은 여전하지만, 핵심적인 요소나 클라이맥스- 여성에 대한 표현도 과거의 표현법을 그대로 반복하고 마는 것이죠. 등장인물들의 연기는 (각자에게 생긴 논란을 감안하더라도) 훌륭하고, <초록 물고기>나 <박하사탕>, <밀양>에서 두드러진 이창동 특유의 공간과 인물을 촬영하는 미쟝센도 여전히 좋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감각들도 여전하니, 좋음과 미묘함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그러기에 칸 영화제에서 <버닝>이 꽤 좋은 평을 받은 것이 이해가 가긴 합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공간’의 이미지와 기호성을 적절히 활용하고, 다시 이를 통해 인물과 서사에 연결짓는 솜씨는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호평 뒤에 서린 몰인식이 걱정되는 것입니다.

추신1. 영화 첫머리는 물론 스탭롤 상에서도 ‘스티브 연’의 이름이 한국식 이름인 ‘연상엽’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추신2. NHK가 제작에 참여했어요. 김영남의 <내 청춘에게 고함>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한국 영화에서 보는 이름인듯. 즉, <버닝>은 엄밀히 말하면 한일 합작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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