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어린 자료조사, 시대의 맥락을 찌르다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서산개척단>이 짚는 부분은 1960년대부터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농지 개척 사업입니다. 과거 갯벌이나 황무지의 모습은 전부 사라지고 이제는 광활히 곧게 뻗은 대규모 농지가 된 서산의 땅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이 땅을 만든 걸까요? 브레톨트 브레히트가 자신의 시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대규모 유적지의 웅장함에 가려진 ‘노동자’를 묻듯, 이조훈 역시 서산 개척지 뒤의 숨겨진 ‘노동자’의 존재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드러나는 것은 끊임없는 혹사와 인권 유린입니다.
‘서산개척단’에 대해서는 정말 이렇다 할 사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관영 보도 영화인 <대한뉴스>에 남은 자료 몇 편, 그리고 신문에 실린 기사가 몇 편 입니다. 하지만 서산개척단이 해체할 때를 빼면, 자료의 태반은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고 실제 개척단원의 생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영화는 피해자는 있지만, 문서로 남은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꼼꼼한 자료조사를 통해 ‘서산개척단’의 실체에 접근합니다.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서산개척단’의 구성 자체가 1960년대 한국 사회와 박정희 정부 초기의 허울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성원은 일거리와 땅을 준다는 문구에 홀려 지원한 사람도 있었지만 고아원과 경찰서를 전전하다 차출된 사람, 그리고 할당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끌려온 사람까지 존재했어요. 그렇게 구성된 개척단은 강도높은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인권 따위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웃기게도, 서산개척단 단장 민정식은 1964년 세계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습니다.)
정부와 자본이 협력한 고통의 흔적은 길고, 고통이 떠난 이후에도 후유증은 지속됩니다. 더 문제인 건,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글로만 봐도 참혹한 서산개척단의 문제를 감독은 최대한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발언을 이끌어 냅니다. 서로 다른 처지로 서산에 온 사람들은 물론, 당시 간부급으로 개척단원을 통제하던 이에게서도 상당히 귀중한 발언을 듣습니다. 2013년부터 촬영이 이뤄진 걸 생각하면 감독과 제작진의 강한 집념이 느껴집니다.
또한 정식으로 남아있는 사료는 물론 각자가 지니고 있던 귀중한 자료, 국가기록원에 잠들어 있던 사료까지 최대한 찾아내며 내용의 기틀을 튼튼하게 다집니다. <블랙딜>이 너무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삐끗해 아쉬웠다면, <서산개척단>은 하나의 사건에서 깊은 주제를 이끌어냅니다.
물론 <서산개척단>도 조금 아쉬운 점은 있어요. <군함도>에서도 음악감독을 맡았던 이재진의 스코어는 꽤 능숙하지만, 너무 과용되는 부분도 느껴지고요. 어떤 부분은 살짝 속도가 급해 좀 차분하게 갔으면 싶은 지점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당히 두텁고 날카롭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개발 드라이브가 낳은 ‘상징’ 뒤에 서린 개인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다시 거기에서 시대와 정권 자체에 서린 이데올로기를 분석합니다. 개인과 사회, 정부와 자본, 그리고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성을 모두 훑어보는 문제적 작품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