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건 <나의 노래 : 메아리> 단평.

정일건, ‘메아리’의 노래로 한국 현대사를 직조하다.

by 성상민

* 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상영본을 바탕으로 쓴 단평입니다.


<대추리에 살다> <대추리 전쟁>의 정일건이 만든 약 5년 만의 신작이자, 푸른영상의 작품입니다. 동시에 서울대의 오래된 노래패 ‘메아리’의 40주년 기념사업회가 제작에 참여한 회고적인 성격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는 70년대 말 결성된 서울대 동아리이자 노래패 ‘메아리’의 역사와 구성원들을 추적하며 ‘메아리’의 노래와 활동이 지녔던 의미를 탐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메아리’가 상당히 학생-운동사회에 영향을 미치던 노래패라는 의미 부여에 그치지 않습니다. 상당히 본격적으로 ‘음악사’이자 ‘정치-사회사’적으로 ‘메아리’의 활동이 어떤 파장을 낳았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김창남-김민기를 비롯한 초기의 활동멤버에서 시작해, 연합노래패 ‘새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이어졌던 문승현, 윤선애를 비롯한 80년대의 멤버들, 그리고 이자람, 브로콜리너마저, 눈뜨고코베인 등 2000년대 이후 메아리의 멤버들의 활동과 노래에 이르기까지 장장 40년간 이어져왔던 메아리의 역사가 어떻게 시대와 조응하고, 한편으로는 부딛치며 이어졌는지를 노래로 구성하는 것입니다.

정일건은 확실한 ‘노래의 역사’를 구축하기 위해 꽤나 실험적인 태도를 택합니다. 최소한의 자막을 제외한 모든 나레이션과 설명을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모두 메아리-새벽-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비롯해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로 채워낸 것이죠. 원래의 푸티지에 담긴 음성도 최대한 비웁니다. 음성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이 들어간 당대의 노래들은 푸티지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각 시기마다 활동했던 멤버들이 남긴 인터뷰와 조응하며 그들의 노래들이 어떤 기반과 사회적 상황 위에 탄생했는지를 비춰냅니다. 그야말로 ‘노래’로 한국 근현대사를 비추는 실험을 한 겁니다.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 것일까요. 후반에 접어들며 아쉬운 편집이나 구성이 계속 눈에 보입니다. 그간의 민중가요 담론이나 사회운동사에서 곧잘 사라졌던 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의 메아리의 이야기는 남아있지만, 어느새 2000년대의 이야기는 사라진채 곧바로 박근혜 정권/박정희 신화의 몰락을 조소하고, 이화여대의 시위 현장에서 울린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2011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투쟁으로 열린 문화제 ‘본부스탁’에 참석한 브로콜리너마저 <졸업>, 그리고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에 참석한 메아리 OB 멤버들의 공연으로 이어집니다.

2010년대의 메아리 멤버와 인터뷰를 통해 ‘어느샌가 현재의 메아리가 이전의 선배들과 단절’되었음을 토로하지만, 정작 그 ‘단절의 시기’에 대한 접근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김민기 <공장의 불빛>에 참여했던 1970년대 학번의 재일교포 선배와 2016년 멤버를 마주보게 하지만, 왜 갑작스럽게 4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선배와 후배가 만나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그전까지 영화가 단순한 노스탤지어에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메아리의 역사를 다뤄냈던 것을 생각하면 갑작스레 발생하는 공백과 가속은 영화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 사이에서도 분명 이자람, 윤덕원, 깜악귀 등을 노래로 불러냈던 것은 감독이 2000년대 중후반의 메아리가 이전과는 또 다른 양태로 자신만의 노래를 시도했음을 인지함을 보이지만, 차분히 노래로 메아리와 운동의 역사를 재구성하던 작품이 어느 순간 스킵을 거듭하며 박근혜 정권과 세월호, 본부스탁, 이화여대 시위, 박근혜 퇴진 촛불을 모두 엮어내며 ‘거대한 역사’로 만드려는 접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래 : 메아리>는 상당히 중요한 고민의 지점을 남겼습니다. 그간 사회운동 내부에서 제작된 노래들(‘민중가요’)이 한편에서는 그저 촌스러운 것으로, 다른 한축에서는 너무 힘을 주며 거대한 표상을 부여하려 시도했던 것과 달리 정일건은 분명 영화 내에서 부침은 있어도 꾸준하게 각각의 노래가 시대의 정세에서, 하나의 개인에게 있어 어떤 역사와 의미로 남아있는지를 다양한 원근법으로써, 손쉽게 거창한 의의를 부여하는 대신 천천히 다져오르는 시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윤선애와 새벽, 노찾사, 이자람-브로콜리너마저-눈뜨고코베인을 저마다 파편되이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문선 활동’을 지속하며 노래가 지느는 정치-사회적 힘을 믿는 이들에게도, 그리고 분명 한국 가요사에 존재했지만 명확히 (특히 ‘영상’으로는) 기록이 되기 어려웠던 ‘민중가요’(사회운동가요)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모두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푸른영상이 직전에 만들었고, 비슷하게 어떤 역사를 회고하는 김동원의 <내 친구 정일우>가 서로 다른 네 개의 축으로 故 정일우 신부의 행적을 살피며 한국 현대사를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썼듯, <나의 노래 : 메아리>도 이를 시도했었던 것이죠. 조금만 더 다듬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니쉬 차간티, <서치> 단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