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도, 숭고화도 아닌 5.18에 대한 접근법
강상우를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된 것은 2015 인디포럼의 폐막작이었던 <클린 미>였다. 짧은 영상 안에서 감독은 일군의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을 청소하는 과정에 초점을 기울인다. 영상에 대한 제한적인 정보가 제공되는 가운데, 작품은 보통은 보이지 않거나 스쳐지나가는 ‘청소’의 과정에 사운드와 이미지를 날카롭게 집중했다. 매우 더럽고 지난한 일과이지만, 그런 과정이 있기에 우리가 ‘깨끗함’을 영위하는 듯 말이다.
<김군>은 그 ‘탐사’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적용시키는 작업이다. 영화의 시작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5.18 북한군 개입 음모론’이다. 지만원을 비롯한 몇몇 이들은 5.18 당시를 기록한 영상과 사진이 북한 수뇌 인사와 인상을 ‘과학적으로’ 비교해보니 닮았다는 이유로 이들을 북한군이라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이에 반발한 5.18 당시의 시민군들은 지만원을 비롯한 몇몇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고, 재판은 현재 대법원에서 3심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작품은 그저 지만원의 주장은 음모론에 불과하고, 5.18은 광주시민들이 이룩한 순수한 운동이었음을 말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김군>은 지만원이 제기한 음모론의 방법론을 역으로 이용하여, 5.18에서 기록으로만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여 공식적인 역사에서 잊힌 인물의 삶을 재구축한다.
영화는 초반부에서 지만원을 찾아가 ‘어떻게’ 사진만으로 5.18 당시 기록 속의 인물들을 북한군이라 주장했는지를 묻는다. 지만원은 이에 대해 ‘일간베스트’의 ‘전문가’ 등의 도움을 빌려 얼굴의 윤곽과 눈-코의 모습을 일일이 비교대조했고, 그 결과 도출된 결론이 ‘5.18 사진 속의 인물은 북한군’이라 설명한다. 영화는 지만원 등이 만든 웹자보의 빨간 선이 지니는 명징하고도 폭력적인 이미지에 주목한다. ‘과학적’이자 ‘합리적’이라 말하지만, 그 과학과 합리는 결국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사고에 기초한다. 빨간 선과 점들은 마치 지난 세월 동안 정부가 이분법으로 누군가는 죽이고 살렸던 ‘경계’임을 이미지 연출로써 상징한다.
이후 이어지는 작업들은 지만원이 매우 피상적으로 진행한 인물의 탐구를 더 정교하고도 세밀한 시선으로 이어나가는 행보이다. 표면적으로는 ‘1번 광수’ (또는 사진 속 인물이 머리에 둘러맨 띠에 새겨진 문구를 따라 ‘김군’) 가 누구며, 그의 이후 행적을 추적하는 영화지만 도리어 강상우는 그저 기록으로만 새겨졌을 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만 남았던 이들의 이름을 다시 되새기려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5.18은 숭고한 ‘시민 운동’으로, 모두가 단결-일치했던 사건으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마치 김정한이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에서, 김태일의 <오월愛>나 양주연의 <옥상자국>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듯 <김군> 역시 우발적이며 갑작스러운 순간과 사건의 연속에서 평범했던 이들이 어떻게 국가의 폭력에 저항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주목하는 것이다. 지만원이나 어떤 ‘숭고화된 표현물’이 강변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기록’으로 남기위해 투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후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복면을 쓰고, 사진 촬영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역동적인 시공간의 속에서 화학적인 반응으로 형성된 동역학의 단면에서 각각의 개인은 저마다의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이 탐사의 과정에서 5.18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것을 버거워한다. 왜 이 기록들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불편함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린 미>가 모두가 쳐다보지 않는 사회 하부의 과정에 주목하며 사회의 기틀을 사고하듯 <김군>은 한때는 금기로, 지금은 ‘기념의 대상’으로만 박제된 시대적인 사건에서 ‘개인’은 주변부의 부분으로만 남은 현실을 직시한다. 절제된 시선으로, 개인과 구조 사이에서 거대한 서사로만 남아있던 기록에 또 다른 기록의 접근을 관철하는 중요한 시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