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과 ‘메이커’로 제시되는 사립미술관의 공공 디자인에 대한 시각
* 전시는 금호미술관에서 2019년 2월 20일까지 열린다.
금호미술관이 지난 2013년에 진행한 <뉴 웨이브> 전시는 ‘가구의 디자인’이 놓인 동시대성을 살펴보는 전시였다. 그 후속격 전시인 <뉴 웨이브 II>는 이전 전시와 비슷하지만 부제에 담긴 ‘공공’이라는 말처럼, ‘가구’에만 한정하는 대신 좀 더 ‘공공 디자인’의 영역에 묶을 수 있는 개인과 집단을 큐레이팅하여 제시한다:
그렇다면 금호미술관은 대체 무엇을 ‘공공’으로 상정하는가? 전시 소개문에서 큐레이터는 ‘디자인이 연결하는 개별의 삶들과 유동적 공동체의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선택하는 받은 7개의 그룹 혹은 개인은 크게 ‘메이커스’와 ‘공동체 재구성’이라는 측면으로 묶을 수 있다. (교집합에 들어가는 이들도 많다.) 동시에 이 대상들은 ‘조립’ 전 각각의 ‘부품’으로 남았던 상황들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관객에게 제시된다.
이전 전시가 ‘가구’에 주목했던 것에 이어, 이번 전시에도 전시장 입구 전면에 배치된 전시들은 가구를 만드는 공방과 디자인 스튜디오들이다. 실제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목제 가구 워크숍을 병행하는 ‘가라지가게’는 얇지만 단단한 자작나무 막대기를 일종의 ‘모듈’로 만들어 최대한 일반인들도 손쉽게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길을 꿈꾸는 공방이다.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플랏엠’은 이름의 ‘플랏’(flat, 판상형, ‘판상형 아파트’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이라는 말대로 마치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를 연상하게 만든 ‘장’을 합판을 모듈처럼 활용하는 측면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모듈화’와 ‘간편성’은 창신동 봉제골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공공간’과 디자이너 문승지에게서도 이어진다. ‘공공공간’은 이미 서울역사박물관의 ‘창신동’ 전시에서 선보인 것처럼, 자투리 옷감을 새롭게 활용햐 디자인 물품을 만들고 다시 이 과정이 지역 소규모 봉제공방과 어떻게 이어지는 지를 인포그래픽으로 제시한다. ‘공공공간’은 옷감을 사용하는 과정을, 그리고 봉제공장의 새로운 간판을 ‘모듈’로 만들며 나름대로의 공공 디자인을 꾀했다. 문승지는 가구 제작 과정에서 목재 폐기물이 많이 나온다는 것에 포인트를 잡아, 합판의 국제표준규격인 1200x2400mm를 최대한 남김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가구를 제시한다.
3층 전시실로 가면, 앞서의 참여 그룹-개인과는 다른 방향의 모듈 조합이 제시된다. 가구나 디자인 소품처럼 그 자체로 물성을 지니지는 못하지만, 디자인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속성에 근간하여 이를 활용한 예시를 제시하는 것이다. 서체 디자이너 양희재-장수영의 서체 디자이너 스튜디오 ‘양장점’은 현대 한국인의 필기 습관을 반영한 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발한 서체 ‘펜 시리즈’를 관람객으로 하여금 체험하게 한다. 빼곡히 놓인 글자의 조형에서, 실제 출판물에 사용된 결과물로써, 그리고 컴퓨터 상에서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야말로 상시적인 ‘체험 워크숍’이다.)
매거진 <DUIRO>(뒤로)를 비롯해 LGBT+, 소수자를 위한 책을 주로 내는 독립출판사 6699프레스는 그간 자사가 펴낸 출간물에 담긴 기고문/인터뷰를 각각의 맥락에 맞게 문장 단위로 재분류한 책 <낭독집: 1-10>과 추려낸 문장을 실제 저자들이 낭독한 퍼포먼스 영상 <6699>를 함께 제시한다. <낭독집>은 실제 에세이나 인터뷰를 위한 글이 작성되는 과정과,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시퀀스에 의한 모듈화를 시도한다. 이 모듈화 안에서 소수자가 겪는 행로는 개인의 경험인 동시에, 사회 내부 개인이 겪는 공통적인 경험이라는 점이 구체화된다.
이렇게 금호미술관은 ‘모듈’과 ‘조립’이라는 반복적인 시퀀스 안에 ‘용이함’과 ‘접근성’을 모티브로 공공 디자인을 사고한다. 물론 모든 공공 디자인이 모듈로 묶일 수는 없지만, 큐레이터는 ‘메이커 문화’의 특성과 결합되는 순간에 포착해 나름대로의 맥락을 구성한 것이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금호미술관의 이러한 시도는 그간 서울시립미술관의 수많은 분관이 ‘공공미술(디자인)’이나 ‘커뮤니티미술’을 운운하며 펼친 계속된 시행착오보다는 나은 지점이기도 하다. 박원순 시정 아래, 다시 또 하나의 관료적 체계가 될 위기에 놓인 공동체와 마을의 이미지가 아닌 다른 모습을 금호미술관이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시도는 정말 그 자체로 징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