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과 체계가 없는 공간에서 벌어진, 문화 권력 획득을 향한 인정 투쟁
오랜만에 최공재라는 이름을 (극우 매체에서) 다시 보고, '정부를 지지하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누군가가 사무실에 엿들어갔다'는 말에 문득 김어준이 <더 플랜>-<그림자 게임>-<그날, 바다>가 포함된 프로젝트 부를 만들며 '누군가가 사무실에 쳐들어가 CPU를 부수려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파일을 지우고 싶으려는 목적인데, 왜 하드나 SSD를 안 부쉈을까를 생각하면... 그건 넘어가자.) 이전에도 들었지만, 여기까지 오게되니 김어준과 최공재가 정치적인 입장 차이만 다를 뿐 어떤 차이가 있나는 생각까지 들었다.
https://twitter.com/skyjets_/status/966210833171828737
실은 몇 년전부터, 개인적인 작업의 일환으로 소위 '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되는 이들의 행적을 기록하여 문화연구지로써 만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같은 입장 안에서, 사람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누군가(들)에게 자신의 행동과 입장이 공의로써 인정받고 싶기를' 원하는 목적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링크에서 설명했듯이 마치 남정욱이 생존을 위한 인정 투쟁으로 '뉴라이트'라는 길을 선택했듯, 최공재 등에게도 비슷한 행로가 엿보인다.
최공재의 형 최홍재는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계속 정부의 수배와 감시에 놓였고, 덕분에 형과 동생은 함께 사회 활동에 큰 지장을 빚었다. 최공재의 형은 2000년대 초반 이후 '뉴라이트' 영역에 접어들고, 최공재 본인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갔다. 최공재 본인은 2008년 게시물에서 이를 '생계'의 문제라 스스로 언급한다. http://irisman123.egloos.com/3849297 " 왜 뉴라이트에다가 영화평을 쓰냐고요? (중략) 용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영화평론가를 모집하는 공고에 수군데 지원을 했으나 받아들인 곳은 뉴라이트뿐이었다." 형의 영향도 없진 않겠지만, 자신의 글을 처음으로 받아준 곳 역시 '뉴라이트' 였던 것이다.
그 이외에도 최공재가 남겨왔던 글과, 그 사이에 발생한 이력을 살펴보면 어떤 식으로든 그는 자신이 애정하는 고어-호러 장르에서 감독이 되고, 연출자가 되고 싶어하는 의지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최공재가 바라보는 한국의 (독립) 영화판은 자신의 욕망과 제시하는 대안을 무시하는 닫힌 판이다. http://irisman123.egloos.com/4099095 자신에게는 이미 영화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전이 있는데, 영화판은 자신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가지고 있던 문화권력에 대한 열망과 욕망을 투사하여 '뉴라이트' 문화 운동의 선두주자가 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영진위 정책이 전격적인 문제를 맞이할 때, 그는 '인디스페이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용관 사업 재수탁을 받지 못하고 (이는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결부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이후 남은 '독립영화전용관'의 빈자리를 차지한 '시네마루'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시네마루는 독립영화 감독/배급사의 보이콧으로 작품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흥행에도 차질을 빚자 1년도 안 되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최공재는 스스로 만든 '차세대문화인연대'의 대표로서 발언을 계속 언론에 뱉어내는 것은 물론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심사위원으로, 새누리당의 공천심사위원 등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며, 다시 민주당 계열의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무렵에는 '박근혜를 몰아낸 것에는 배후 세력과 부역 세력이 있다며' 스스로를 박근혜를 지키는 '아름다운 적폐'로, 그리고 <부역자들> 같은 '우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자로 자신의 위치를 선언한다. 그는 여전히 '인정 투쟁'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어디 그 '인정 투쟁'은 최공재만의 것이었을까. 남정욱, 이용남 등을 비롯한 이들의 행적은 한미한 위치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알리고, '교수'와 같은 직위로 형상화되는 권위의 표상을 획득하기 위한 길로 점철되어 있다. 그들에게 2008년의 정권교체는 자신들을 위한 문화 권력의 기반을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을 것이며, 2016-2017년에 연달아 벌어진 사건은 다시 이에 대한 '역행'으로 간주되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그들의 몰락과 발버둥치는 모습을 비웃으면 끝나는 일일까. '그 이전'과 '그 이후'는 자연스럽게 긍정과 희망이 담길 수 있는가. 그 이전에도 문화 정책은 '괸료'의 손에서 돌아갔고, 체계적인 문화 정책 체계가 잡히기 전에 당장의 이해득실이 판가름짓는 판국에서 문화 권력이 작동했다. '뉴라이트'는 새롭게 바뀐 정권 속 관료와 밀착하며 새로운 장을 만들고자 했고, 지금 뉴라이트 문화인의 움직임은 다시 밀려나며 발생한 몸부림이다.
단순히 '그 이전'이 좋았으며, '그 이후'가 좋을 것이라는 말에는 '어떠한 체계와 지향'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단순히 김어준이나 김제동이 방송에 등장하는 미디어 환경이 좋은 것일까. <인천상륙작전>이 나왔으니 과거는 나쁘고, <1987>이 나오니 현재는 좋을까. 계속 생략되었고, 간괴되었던 '체계'의 문제를 다시 사고할 수 밖에는 없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미시적인 '인정 투쟁'은 단순히 '뉴라이트'라서, 그 개인이 가진 결함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깝게는 '김어준'과 같은 인사에서, 멀게는 '인정 투쟁'으로 정책이 귀결되고 있는 현 상황의 문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가 고위직 관료의 책임으로 유야무야되며, 현장에서 나왔던 각종 대안적인 문화 정책의 안이 대부분 사장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체계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들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