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9.
열정이 넘치는 스타트업 CEO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바로 ‘시장 조사’다. 경험이 부족한 대표일수록 시장 조사를 소홀히 하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0년 가까이 개발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들고 찾아온 대표들을 수도 없이 만나봤다. 하지만 그중 절반 이상은 검색만 해도 경쟁 제품이 쉽게 드러나는 모델을 가지고 와서는, 이를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며 세상에 처음 나오는 것처럼 자신감 넘치게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검색은 네이버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구글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고, 영어로 검색해 볼 수도 있다. 비즈니스 모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 시도했고, 심지어 멋지게 완성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서비스들이 세상에는 차고 넘친다.
특히 일부 대표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너무나 참신하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경쟁자가 없는 시장이 존재할까? 설령 있다 해도 그 시장이 없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자주 참고하는 ProductHunt를 예로 들어보자. 이곳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제품들이 등록된다. 최근에는 하루에도 여러 개, 많게는 열 개 이상의 AI 관련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 플랫폼만 훑어봐도 뛰어난 제품조차 성공하지 못하고 사장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아마 열정 넘치는 대표들이 구상하는 아이디어와 유사한 제품들도 그곳 어딘가에서 먼지가 쌓인 채 잊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시장 조사’는 단순히 경력이 많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시장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경쟁자는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왜 현재 시장에 참여자가 적은 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의 직관만을 신뢰하며 나아간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사업에서는 데이터가 아닌 직관에만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면에서 볼 때, VC의 역할은 단순히 대표의 열정을 꺾는 것이 아니다. VC는 대표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열정이 과도하면 자신감이 오만으로 변질되기 쉽고, 타인의 조언은 귀찮은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시장 흐름을 역행해 성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작은 동네 가게조차 입지가 성공의 80%를 차지한다고 할 정도다. 거대한 기업을 꿈꾼다면 무엇보다 시장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 법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아무리 열정적이고 뛰어난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성공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 조사야말로 스타트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필수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