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1.
사건은 언제나 인과성을 띄고 있기에 그 어떤 일도 우연히 발생할 수는 없다. 모든 물리법칙이 하나하나 적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 곧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건들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부터 법원으로 향한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서초동 법원을 향하는 길에는 수천억 원의 사기를 친 W사의 B대표를 규탄하는 내용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법무법인과 채권추심 회사들까지 다양하게도 있었다. 법원은 익숙했다. 허름한 구내식당도. 언제 페인트칠을 한 건지 가늠도 안 되는 80년대쯤 되는 디자인까지도. 법이 얼마나 세상의 시류를 따라오지 못하는지. 이곳의 시스템은 얼마나 과거에 머물며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재밌게도 W사의 B대표는 나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잊을 수는 없다. 직간접적 피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그는 내가 그와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어떤 곳에서 사고가 터지면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개구리처럼 연약하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는 돌멩이에 목숨을 잃는 것이고. 그것을 애도하겠지만 원인은 언제나 존재한다. 누군가가 물웅덩이를 발로 첨벙거렸으니 그 과정에서 돌멩이도 튀었고. 그 돌멩이에 어이없이 죽는 개구리도 생기는 법이다.
결과를 알고 있다면 결과를 통해 원인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참 오묘한 세상의 진리였다. 추적 불가능한 진실이 있을까? 영원히 감출 수 있는 비밀이 있을까?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끝까지도 파헤쳐서 찾아낼 수 있고 불가능할 것 같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도 과학자들과 수사팀들은 해내곤 한다.
어떠한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한다면 아주 선명한 결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눈에 선명히 보이고, 손으로 잡히고, 증인이 넘쳐나며, 증거가 가득하다면 거기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찾아보면 가장 첫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엔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범인이 있다. 그 범인에서부터 모든 사건은 뿌리를 내리듯 펼쳐져 나갔다. 그 범인을 잡아넣는 게 왜 어렵냐고? 뿌리가 깊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온갖 혐의와 수사 속에서도 절대 감옥에 가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공권력보다 위에 있는 아주 깊고 단단한 뿌리들이 그가 뽑히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대마불사'라는 바둑 용어가 있다. 가장 많은 돌이 이어진 '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의미다. 큰 돌을 잡아내기 위해선 포위를 할 때도 신중해야 하고, 또한 상대방도 대마를 지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말 그대로 게임의 승패가 결정 날 수 있기에 대마를 죽이느니 게임에서 패배를 선언하는 게 나은 셈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절대로 '범인'을 내어줄 수 없다. 그들이 '범인'의 죄를 모를까? 그가 잎사귀로부터 받아온 물을 뿌리까지 공급해 주었으니 뿌리가 그를 배신할 수 있겠는가? 배신을 할 수가 없다. 그가 죽으면 그들도 죽고, 그들이 죽으면 게임에서 패배한다. 게임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그들 앞에 굽실거릴 이유도 없다. 그 어떤 공권력이 그들을 잡아넣을 때에도 지켜줄 방패가 없다. 특권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범인'을 지키는 것은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며 그렇기에 때로는 '범인'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참담한 일이지만 너무도 선명하며 온갖 증거가 넘쳐나는 '결과'이다.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다고 했다. 우리는 결과에서 원인을 찾아 '범인'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