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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토끼굴

2025. 2. 24.

by 한상훈

지난주 금요일이었나.


나는 중국 투자자와의 거래를 거절했다. 토끼굴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참 재밌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토끼굴 안에 들어와서 현실세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 속에 놓이곤 한다는 점이다. 엘리스도 처음엔 그랬다. 주변 세계에 대해 혼란을 느꼈겠지만 이윽고 이상한 세계의 여왕의 규칙을 따르고,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한다. 사실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필요가 없는 여정이었겠지.


토끼굴 속에서 나는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세상은 거대한 토끼굴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악마와 손을 잡고 싶어서 처음부터 잡는 사람은 아주 소수라 생각한다. 굴 속에 떨어져서 벗어나려 하다 보면 어느덧 악마와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악마와 손을 잡고 계속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악마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검다 느꼈는데, 세상의 흑색보다 검은 것이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업을 하다 보니 중국에 얼마나 거대한 자본이 있는지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부와는 결이 다른 부였다. 어딜 가나 화교 출신의 부유층은 존재했다. 아이러니하다. 공산주의를 말하며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곳들은 하나같이 극소수의 부와 대다수의 가난으로 성립된다. 가난한 이들이 생산하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돈으로 환산된 자산은 그들의 무노동 수익을 창출한다.


토끼굴에서 마주한 이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모습이었다. 겁 많은 사자나 양철 로봇처럼 말이다. 용맹해 보이는 이들이 사실은 겁쟁이였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겁쟁이들은 사자인척 하지만 그 안에 사자의 영혼은 없다. 숨겨둔 이빨도 없다. 날카로운 이와 발톱은 빠졌으니 적들이 속아주지 않는다면 소리 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토끼굴에서 빛을 찾아 구덩이를 걷는 이들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곳의 삶에 만족한 것일지도 모르고, 동시에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갈등으로 매일 갈등을 지우기 위해 술을 집어넣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허하다. 계속 남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입속에 집어넣고 있지만 그들은 공허하다. 그렇기에 아무런 존경도 그 그릇 안에 담길 수 없다. 돈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그렇게 많아도 존경할 위인을 찾기는 모래에서 바늘 찾기처럼. 이 나라도 저 나라도 부와 존경이 같은 그릇에 담길 수 있는 인물은 손에 꼽는다.


어쩌면 내 선택이 멍청한 바보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거나, 어쩌면 토끼굴의 끝까지 도착해 여왕이고 뭐고 그 자리를 빼앗아 쟁취해 새로운 토끼굴의 왕이 되어보는 망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토끼굴의 왕이 된다고 한들 여전히 토끼굴을 빠져나오진 못한 삶이다. 그저 그곳에 갇혀 왕노릇하는 짓이다. 나의 자리를 밀어내기 위해 위험천만한 곳으로 들어오는 칼잡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토끼굴의 왕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 누가 그곳의 왕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절하고 택한 일을 찬란히 꽃 피우는 일일 것이다. 모든 꽃이 한 번에 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씨앗이 움트고, 움튼 싹이 자라나기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움튼 싹을 보고 누군가는 거대한 숲을 볼 수 있고, 누군가는 하찮은 풀도 볼 것이다. 두 가지 미래 모두 가능하다. 메말라 버린 싹. 가뭄을 이겨내고도 남을 큰 고목으로 자라난 싹. 두 가지 미래가 모두 내 손에 쥐어져 있다면 그중 하나 밖에 선택할 길이 없다. 물을 주고 초라해 보이는 한 줌의 싹을 틔운다. 선택엔 책임이 따르고 나는 내 미래를 이 초라해 보이는 싹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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