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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아웃

2025. 2. 25.

by 한상훈

어제 나는 한 선생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과거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행복하던 시절과 불행하던 시절. 지금까지 겪어왔던 일련의 사건들. 그렇게 과거 앨범을 꺼내두고 본 것처럼 선명한 과거를 여정하고 나니 선생님의 가르침이 더욱 마음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고통은 잠에서 깨어나라는 신호였다. 잠에서 깨어나 이 게임을 제대로 즐겨보라는 메시지였다. 즐거움으로는 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없었다. 그저 물 흐르듯 주어진 대로 감사함 없이 살아갈 뿐. 주입된 사고를 바탕으로 동물적 본능만이 남아 살아가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진리를 손으로 쥐려 하니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진리와 무관하게 중심을 잡으니 진리가 찾아왔다. 어떠한 말로도 어떠한 형태로도 온전히 기록될 수 없었다. 기록되는 순간 언어의 한계로 난도질당하기에 진리는 교리라는 그릇에 온전히 담길 수 없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을 주었다. 이 인생은 비극인 줄 알았으나 희극이었구나. 이 모든 순간이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서사였구나. 어쩌면 극한까지 치닫는 인생은 플롯을 뚫고 나오려는 소설 속 주인공과 같았다. 소설의 주인공이 이야기 중간에 멈춰 서서 책을 뚫고 나오려고 한다거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이야기가 종료된다면 그것보다 허무한 소설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은 꿈이었다' 정도로 끝나는 소설보다도 못한 결말일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의 결말을 따라 우리는 유영하고 있다. 물살을 타고 이곳으로도 저곳으로도 갈 수 있다. 물살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파도의 결을 따라가는 선택을 하거나 해안을 향해 나아가거나. 언제나 바꿀 수 있는 건 우리 손에 잡혀있는 방향타일 뿐 출처를 알 수 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었다.


마음에 행복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려 하니 내가 그전까지 잡아온 많은 것들이 모두 부질 없어졌다. 몇몇의 것들은 나에게 그 어떤 행복도 그 어떤 보상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쓰러진 상처에 소금을 붙는 것처럼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이곳저곳 닿기만 하면 아픈 연약한 인간이 됐었나 보다. 세상의 고통과 불합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일까. 이곳은 원래 이런 곳이었는데. 세상엔 선과 악도 없는 곳인데.


진리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신은 바닷가에서 모래로 곧 허물어질 성을 쌓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았을까. 그 어떤 것도 정한 것 없이 만든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생명체가 탄생한다. 지능이 발달한 생명체들은 존재의 의문과 모든 세상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절대적 존재에 대해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한정한다. 신은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신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참 재밌을 것이다. 수백 가지의 세상은 그 안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무심코 포클레인으로 개미집을 파괴해 개미들의 터전이 박살 다든 말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바다를 자유롭게 다니는 물고기가 어느 날 포식자에게 먹히고, 우리들의 그물에 잡혀 일가족이 몰살을 당해도 그것을 선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이라고 다른가.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간을 특별하다 여기며 신과 소통하고 뜻을 받는다 주장한다. 신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모습을 보이지도 않음에도.


어쩌면 우리의 역사에 신의 순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잠깐씩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신이 보기에도 재밌는 일이 이곳에 펼쳐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아주 주의 깊게 이 세상을 잠깐이라도 본건 아니었을까.


우리의 한계로 우리의 한계를 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 답을 정할 수는 있다. 나도 내 안에 답을 정한 것 같다. 흔들리던 추는 정렬하고 원치 않는 바람이 불어오면 돛을 내린다. 내가 향하고자 하는 곳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 그 바람을 타고 선명하게 나아간다. 그 길에 도움이 가득하기를.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신이 재밌어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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