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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힐러의 나라

2025. 2. 27.

by 한상훈

우리나라는 최상위 학생들이 의사가 된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힐러라 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엔 의사가 고생도 많이 하고 되기도 어렵다고 느꼈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고생도 많고 되기도 어렵지만, 수익도 엄청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결국 돈이구나.


사실 어느 곳이나 동일할 것이다.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직업을 얻기 위한 투쟁 아닌가.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돈을 잘 벌고, 최상위 학생들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모두 의사라면 그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자원 부국이 아닌 자원 빈국이다. 수출 중심의 무역만이 답인 국가이다. 무역이 안되고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순간 부가 어떻게 흘러올까. 내수로 운영이 될까? 정밀 제품을 만들고,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국가적 상황에 정작 최고의 인재들이 향하는 곳은 의료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나라에 국부를 가장 많이 가져다주는 이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최상급 엔지니어가 되려는 천재들은 줄어든다면 이 나라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힐러만 잔뜩 모인 이상한 파티라 할 수 있다.


정상적인 국가는 국가에 돈을 벌어다 주는 이들을 우대해서 국부를 키우고 국력을 키운다. 그것이 상식적인 국가다. 비상식적인 국가들은 어떨까. 국익에 도움이라곤 주지 못하는 군부 세력이 국부를 쓸어간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선 누가 돈을 벌까. 신뢰 자본이 부재하여 생기는 온갖 분쟁을 통해 돈을 버는 이들이 득세한다. 결국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은 사회가 어떤 구조로 이뤄졌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와 같다.


한국이 과거부터 의대를 모두가 원했던 것은 아니다. 보통 수능 1등이 선택한 학과를 통해 그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한참 산업이 발전하전 시절에는 전기, 화학, 기계공학이라는 공대 3 대장이 힘이 컸다. 그뿐인가 이후에도 수능 1등이 서울대 물리학과를 택하는 일도 있을 정도로 기술에 집중한 국가였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한국은 기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기술자에 대한 대접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세계적 기업이라는 곳에서는 기술 용어를 이해도 못하는 임원진들이 꼭대기를 차지해 초등학생용 문서를 제작해 올리라는 촌극이 펼쳐진다. 이게 상식적으로 세계적 기업이 할 짓인가. 나라면 쪽팔려서라도 기술 공부를 해서 임원 자리에 앉아있으려 하겠지만 내 상식과 그 임원들의 상식은 다른가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도 그렇고 이 국가도 마찬가지로 아주 어두운 미래를 예상한다.


사람들의 선택은 시스템이 밀어주는 방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기꾼들에게 우호적 법령이 많으면 사기꾼이 판치는 것이고, 마약쟁이들이 마약 하기 좋게 법이 지켜주면 마약쟁이들이 늘어나는 법이다. 사회가 국부를 만들어온 기술자들을 하대하고, 천대하고 다른 이들의 부를 챙겨주기 급급하다면 가장 능력 있는 최고급 인재들부터 한국을 떠날 것이다. 당연하다. 어떤 조직이든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떠날 이유가 있다.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그 어떤 곳에서도 원하지 않는 이들만 남게 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오라는 곳이 많기에 거처를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 나라의 지난 시간들을 보면 얼마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갈대처럼 움직이는지를 볼 수 있다. 뭐가 흥한다 하면 모조리 그곳을 향하고, 뭐가 안 좋다 하면 모조리 떠난다. 스스로 생각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일들인데 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을 양도하고 대세를 따르는가. 대세를 따라 원하는 것들을 쟁취한 이들이 과연 이 나라에 몇이나 될까. 최선두에서 쟁취한 이들에게는 축복이고, 대세의 끝자락만 따라잡으며 허둥지둥 인생을 허비하는 이들에게는 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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