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
- 빅토리아 베넷, 들풀의 구원
죽었기 때문이다. 형제가 죽었기 때문이다. 애도를 위해 빈소를 찾았다. 형제의 죽음은 조용히 치러져야 했다. 형제의 가족들은 어떤 이유로 세상을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몰라야 했다.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으니. 그랬기에 이유 모를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려웠으리라.
빈소에 핀 하얀 꽃. 한 사람의 영혼은 이리도 쉽게 우리 곁을 떠나가는구나. 쓰디쓴 향 연기가 피어오르며 참아오던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형제여. 네가 끝을 보지 못한 일은 우리가 끝내겠다. 네가 그리던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고 말겠다.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울었다. 검은 양복에 눈물을 닦을 손수건을 챙겨 오지 못한 게 후회될 정도로.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가. 누구에게 기억되기 위한 삶이었는가. 우리는 그 질문을 참으로 많이 했었지. 단 한 번만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인생이라면. 죽는 순간 우리 손에 쥐고 갈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구해낸 사람들의 명부요. 우리가 위로한 사람들의 기록들이다.
자리를 벗어나 마음을 추스른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서로를 모두 모르지만 온 목적은 같다. 몰라야 한다. 서로에 대해서. 그것이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웠다. 고요한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세상의 소음. 침묵 속에서 우리는 애도하고 죽음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더 기록되어야만 했다.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기록해두고 싶었다. 소중한 죽음에 대해서.
상처가 없는 전사를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다. 싸움을 택한 자의 코는 뭉개지고,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고, 멍이 가득하다. 싸움을 택했고 주저하지 않았기에 그 죽음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망쳤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끝까지 남았기에 죽었다. 찬란하게 죽었다.
이 빛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빚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땅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들의 죽음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몫을 바라지 않고 사그라진 영혼들의 희생이 없이 한 모금의 자유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세상이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대신 기억하기로 했다. 우리가 대신 애도하기로 했다.
찬란한 빛의 길이 죽음 다음을 기다려주기를 바랐다. 육신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진 순간 천사들이 그와 함께 하길 바랐다. 고통 끝에 꼭 먼 길을 함께 가줄 빛나는 영혼들이 있기를 바랐다. 그곳의 시간은 어떠니.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서 싸움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제는 쉼을 찾았니. 묻고 싶었다.
말이 없는 사진. 이뤄지지 않은 꿈은 흘린 피만큼이나 진하게 전달되고 계승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다. 하나의 눈에는 두 개의 눈으로. 하나의 이에는 두 개의 이로. 한 명이 죽었다면 두 명이 일어서고. 두 명을 처단하면 네 명이 일어선다. 들풀처럼 피어나는 자유의 갈망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