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4.
그날은 방검복이 필요했다.
시간은 오후 3시. 아직은 햇빛이 비추고 있을 때. 험한 일을 겪지 않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살갑게 밥을 먹을 사이는 아니기에 그저 서로가 신뢰할만한 장소에서 너무 늦지 않아야 했다. 밤늦은 시간이라면 어둠에서 오는 불신이 서로에게 향하곤 한다.
한 무리의 남성들이었다. 중간 브로커들 몇몇과 클라이언트. 그리고 프로바이더까지. 양쪽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어디 가서 인생 고생 좀 했다 말하기 쉽지 않을 만했다. 이들 중 몇몇은 저 먼 타국에서 넘어와 보디가드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한국에서부터 오랫동안 일하던 사람도 종종 있다. 드문 일이지만 없지는 않다.
CCTV가 모두 확보된 서울 한복판의 건물에서 만난다. 나가는 길은 두 개의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뿐. 돈을 싣고 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큰 상자와 작은 상자. 그리고 배달 가방까지 준비됐다. 거래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다른 목적이다. 브로커는 거래 수수료를 먹기 위함이다. 송금책은 목숨 걸고 현금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하는 일을 한다. 하루에 그에게 떨어지는 돈은 약 400-500만 원. 목숨 값으론 싸고 하루 일당으론 쌔다. 원래 그렇지 언제나.
J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갈 때까지 간 사람들이 모여있으면서도 가장 간절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곳. 그들이 원하던 걸 다 찾고 나면 일은 간단하다. 고객은 가져온 돈을 놓고 가면 끝난다. 만약 고객이 가져온 돈을 두지 않고 간다면 그때부터는 방검복이 유의미해진다. 총이 없는 나라에서 주머니에 챙겨 올 흉기라곤 칼이 전부다.
그렇기에 J에 오는 이들도, 그런 곳에 아무런 준비 없이 오는 이들 모두에게 서슬 퍼런 이빨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두려울 것이다. 나름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도 별 수 없다. J에 가야 한다.
아마 요 며칠의 사건으로 J는 얼마간의 조용한 시간이 흐를 것이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일 년에 2-3번쯤 미쳐버린 세상이 올 때면 그 범인은 항상 그곳으로 향한다. J에 있으면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다 볼 수 있다. 악마 같은 인간들이 순한 양이 된다. 살기 위해.
방검복을 입어라. 그곳에서 스스로를 구원해라. 피와 돈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 한 건물을 보기 된다면 멀리멀리 도망쳐라. 그곳엔 구원이 아닌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