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5.
우리 주변에 몇 명의 배달기사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배달기사는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번화한 서울을 바삐 누비는 배달기사는 극단적으로 많다. 빠른 속도로 얼굴을 가리고 골목과 빌딩 어디든 의심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직업. 배달 기사만이 유일하기에 배달 기사로 변장하고 움직인다.
번호판을 여러 개 챙겨 바꾼다. 꾼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중간에 거점에 들어가며 번호판을 바꾼다.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배달원의 헬멧 모양이 바뀐던 번호판이 바뀌던 경비원이 관심이나 가질까? 아무도 절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배달기사를 이용해 수억 원이 되는 돈들이 무사고로 배송된다. 엔드 투 엔드로 말이다. 추적을 따돌리고.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추적당하는 배달원이 있다. 경찰이 특정 배달기사를 계속 추적한다면 어떨까. 이를 해결하기는 쉽다. 바로 팀으로 움직이면 된다. 팀을 짜서 배달기사가 단체로 몰려다닌다고 해도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때처럼 배달을 많이 시켜 먹는구나 생각도 안 하고 지나가는 오토바이로 스쳐갈 뿐이다. 절대로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너무 흔한 것은 너무 흔해서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빌딩에 들어간 배달원들은 서로의 의상과 헬멧과 배송물까지 모조리 ’믹스‘해버리고 빌딩 밖으로 나선다. 추적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건물의 CCTV라도 확보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거점이 되는 빌딩을 축으로 삼아 반경 500-1000m 정도를 빼곡한 빌딩 숲을 오간다. 마치 야바위꾼의 손에 숨은 정답을 찾는 것과 같다. 돈은 왔으나 도착지가 어딜까. 배달기사는 그 돈을 어디로 보낼까. 자주색 배달 버킷 안에는 5만 원권이 몇 장이나 담길까. 여분의 번호판과 겉과 안이 다른 옷. 여분의 헬멧이 있는 빌딩. 이미 조작된 CCTV 기록. 수사망이 아무리 촘촘하더라도 개인 소유의 빌딩까지 마음대로 수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고리가 끊긴다. 더 넓은 수사가 필요했다. 수사 방법을 바꿔야 했다.
‘이제부터 저 빌딩에 오가는 모든 건 다 뒤쫓는다.‘
노이드가 섞인 차량들과 오토바이들. 쉴 틈 없이 오고 가는 온갖 사람들. 누가 범인이지. 누가 일반이지. 누가 진짜 배달기사지. 수사망을 바보로 만들고 나면 세이프 하우스에 돈이 도달하고 그 돈은 김장을 담그듯 일정 시간을 보낸다. 겉절이로 먹을 순 없다. 푹 익혀서 적당한 타이밍에 먹는다. 그들의 방식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주인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만 주워 먹어도 충분하다. 부스러기만 먹어도 월급을 가뿐히 넘어버리니 모두가 죽기 살기로 달린다. 어차피 인생에서 뒤로 갈 방법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신이 내려준 동아줄처럼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