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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신성함

2025. 3. 23.

by 한상훈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노예로 부리고 싶은 걸 믿는다고 표현한다. 해달라는 것이 끝도 없다. 왜 신이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왜 신이 그들의 말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한낱 미물에 불과할 인간의 명령에 왜 따라야 하는가. 따라줄 이유가 없다. 만약 신이 누군가를 돕는다면 그건 누군가가 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신이 그 누군가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바로 이 지점이 다르다. 신을 자신의 노예로. 신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빌고, 떼쓰고, 울고 불고. 똑같은 말을 100번 하거나 100번 쓰고. 이게 누굴 위한 짓인가. 신이 그들과 거래했는가.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그의 뜻에 따라 활동할 뿐 인간의 노예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절대적 존재에 대해 기원하고 앙망하며 불확실함에서 답을 찾고 싶은 이들은 있다. 똑같은 주문을 수십 년간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마치 이런 것과 같다. 아주 능력 있고 유능하며 모든 걸 할 수 있을만한 친구에게 계속 간청하기만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존재에게 끝없이 간청하는 상황이 대부분의 기도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신과의 관계가 아닌 이해관계만 원한다. 필요한 것을 요청하면 자판기처럼 떨어뜨려줄 신을 원한다.


나와 신과의 관계는 자판기와 나와의 관계와 다르다. 나는 묻고 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묻고 답을 기대하지 않는 그런 관계에 가깝다.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인간의

언어와 글에 오염되지 않고 온전히 담길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종교인들이 주장하듯 신을 노예 부리듯 복의 근원이나 명령으로 악령을 쫓거나 인생을 화평케 하는 용도로 가용 가능한가. 나는 그런 믿음은 전혀 없다.


그가 만든 세상은 칼의 세상이고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죽일 수 있도록 만든 카오스다. 그는 가장 충성스러운 인간이라고 하는 욥을 사망의 직전까지 가족들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는 권한도 사탄에게 허락하는 신이다. 마치 바닷물의 모레알처럼 언제든 원하면 성을 쌓고, 언제든 원하면 가루로 만든다. 어린아이가 만든 바닷가 모래성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모래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찬란한 왕국으로 보이겠지만 찰나의 바닷물에 위대한 성이 일순간에 사라진다. 그것이 기록된 신의 전능함이다.


신의 전능함을 믿는다면 두려움에 자신의 뜻하는 바를 온전히 전달하기에도 두려워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자 앞에서 공손해지지만 정작 세상 만물의 신을 대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을 경외라 부르며 신을 경외하는 자는 두려움 속에 목숨을 걸고 나아간다. 신의 임재에는 티끌 같은 잘못도 소멸로 이어지곤 했으니.


이 모든 것을 현대의 해석과 자신들만의 모습으로 거대한 쇼처럼 바뀌었기에 누구를 위한 예배이며 누구를 향한 기도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찬양이며 누구를 위한 고백인가. 그저 자신들의 기분을 위한 노래와 분위기와 감동에 지나지 않는다. 경외함이 없는 신앙은 그 자체로 신성함에 대한 모독이고 신을 믿지 않음을 뜻한다. 자신조차도 만만하게 여기는 신이고 권위 없는 신에게 왜 도움을 요청하는가. 만만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부르는 건가.


인본주의적 신 앞에 신성함이 자리할 수는 없다. 인본주의적 허례허식 앞에 신성함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이해관계를 위한 거래를 할 것이라면 장사꾼으로 신에게 제안할 거래가 있어야 할 것이며, 장사꾼이 아닌 피조물로 앞에 서겠다면 피조물의 겸허함으로 창조주를 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와 거래를 할까. 정강이가 부러진 야곱이 그러할까. 그 부분의 내용만 갑자기 달라진 성경의 메시지를 온전히 다 믿을 수 있을까.


구약 신약 전체에 걸쳐 관계의 방향을 알려주었지만 관계의 방향도 방법도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다. 그런 오염된 예배와 신앙과 상종할 여유가 없다. 모두가 틀렸다. 신성의 올바른 방향은 인간이 아닌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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