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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구원

2025. 3. 30.

by 한상훈

지난 며칠 전부터 나는 컴퓨터 한 켠에 Best Documentary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켜두고 하루를 보냈다.


주로 극빈국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영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남수단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인 "남수단: 백나일의 난파선 | 가장 치명적인 여정"의 영상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다 보았다.


남수단: 백나일의 난파선 | 가장 치명적인 여정


영상의 주인공은 트럭을 운전해 살아가는 운송업자였다. 한 때는 상점을 운영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동업자가 상점의 모든 물건을 팔아넘기면서 모은 모든 자산을 잃었다고 한다. 그나마 남은 돈으로 낡은 트럭을 사서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엉망인 도로에서 급하게 트럭을 수리하는 주인공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내전으로 황폐화됐었던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은 사실상 인프라가 존재하기 힘들 정도로 남아있는 게 없었다. 길은 모두 진창으로 차량이 제대로 이동도 하기 힘들다. 또한 많은 집들은 홍수로 물에 잠겨 임시로 제방을 만들어 살아남거나 또는 섬을 만들어 사는 이들도 있다. 목축을 하는 이들은 소를 지키기 위해 소총을 들고 다니며 소를 지킨다. 풀이 다 사라지면 목초지를 찾아 옮겨야 하기에 온 가족이 임시 텐트에서 거주하며 이곳저곳 누빈다.


사실상 아이들은 학교 교육은 받지 못하며 어린 아이라 볼 수 있는 8~15세도 노동으로 내몰린다. 아이들과 임산부는 말라리아로 고통받는다. 의료 시설은 없고 자격증은 없지만 검진 키트를 사용할 수 있는 인원들이 말라리아 검진을 해서 약을 나눠주는 정도로 생존을 이어간다. 가장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지만 가장 많은 아이들이 죽는다.


남수단 내전 지도

어린 시절엔 막연하게 이들을 도와 삶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단순히 NGO가 이들을 돕다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속에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NGO로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가도 근본적으로 이들의 산업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이들의 생계 방식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운송을 위한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으니 150km를 가는데 4일씩 걸린다. 비가 와서 토사가 무너져 길이 엉망이 되어 막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로가 엉망이니 타이어가 펑크 나고 온갖 나무와 풀, 진흙이 얽혀 앞으로 나아가는 게 끔찍한 수준이다.


그뿐인가. 비단 운송을 위한 인프라만 부재하지 않고, 교육, 의료, 산업, 치안 등 모든 사회 시스템 하나하나가 다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다. 심지어 내륙 국가라 해상을 통해 무역으로 성장하기도 쉽지 않다. 내륙 국가는 무역로 확보를 위해 아무리 많은 천연자원이 있어도 항구를 열어줄 수 있는 국가에게 손해 보는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여러 영상에서 경의를 느꼈다. 영상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신에게 감사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고, 깨끗한 물도 없고, 깨끗한 집도 없고, 제대로 씻을 수도 없고, 제대로 먹을 것도 없고, 설령 이 일을 5년, 10년 계속 건강하게 한다고 해도 쌓을 수 있는 재산이 거의 없음에도 희망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은 위대한 인물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걸 느끼게 했다.


분명 이들이 마주한 문제는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도전이 되어야 한다. 거대한 자본을 끌어들여 국가적 인프라를 재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거대한 자본을 투자할 명분을 그들에게 주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50년이나 100년의 광산 채굴권이나 또는 그에 준하는 천연자원의 독점 이용권 등을 양도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패한 정권은 그렇게 얻은 자본을 자신들의 부를 위해 사용할 뿐 국부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부패한 정권은 무너지고 무너진 정권에 투자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돈을 주고 산 권리를 위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의 내전과 그 과정에서 천연자원 독점. 이에 자본을 투자한 이들의 싸움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그들만의 싸움이 되며 국가가 발전하지 못한 정글 속 국가의 국민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삶을 살며 자본주의의 바닥에서 바닥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구원이 어찌 찾아올 수 있을까. 이들을 그저 단순한 후원으로 어찌 도울 수 있을까. 아주 어려운 과제다. 만약 이 문제의 답을 찾아 단 하나의 무너진 국가라도 부흥하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국가는 대한민국이 겪었던 현대사의 상처만큼의 진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성장통 후에 먹고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세계는 원래 이렇게 끝없이 서로 죽고 죽이며. 완전히 황폐화된 곳과 바빌론 같은 곳들이 공존하는 세계일 수밖에 없는 걸까.


어쩌면 모두가 모두 다 잘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세상에 바빌론은 하나일 뿐. 2개, 3개, 4개. 모두가 다 가장 큰 힘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때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겠지. 마치 미국이 언제나 자신을 위협하는 2위 국가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린 것처럼.


그러나 희망을 가지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던 이 나라도 부흥했고, 남수단처럼 무너져 버린 국가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희망의 불씨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피어난 사람들이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게 피어나는 불씨 속에 구국의 영웅이 탄생했고, 그리고 역사는 그 인물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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