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뷰

『일본전산 이야기』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by 한상훈


책을 읽으면서 굽이친 소나무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 큰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소나무는 굽이치듯 자라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오르지 않으며 바람의 형세에 따라. 땅의 형세에 따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더 깊은 뿌리를 내리며. 영양분이 풍요로울 때는 줄기와 가치를 키우며. 그렇게 성장한다.




나 역시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채용하는 일부터 사업을 대하는 태도. 협상의 자세. 결정적 순간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사업가의 철학이 녹아져 있음을 알고 있다. 좋은 회사를 만들려는 내 도전은 지난 10년간 그다지 유효하지 못했으나 일본전산 이야기를 읽고 내가 옳았던 것과 아쉬운 것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었다.


일본전산의 가장 독특한 점은 채용 과정일 것이다.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가장 빨리 밥을 먹는 사람"을 뽑았던 시도와 같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채용 전략은 무엇을 의미할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일처리를 하고 소화도 잘하고 건강한 사람을 뽑겠다는 일본전산의 기대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그것으로 검증한 인재로도 회사 내에서 회사 안의 교육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이들을 능력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A+급의 인재를 가지고 A+의 성과를 내는 것을 보편적 성과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 B, C, D급의 인재를 가지고 A+의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그 회사는 직원들의 능력과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회사가 진행하는 사업의 효율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즉 경영자의 실력은 함께 하는 핵심 인력의 수준으로도 나타날 수 있지만 범재라고 불리는 직원을 뽑아 더 높은 수준의 인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도 주요하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어떤 개인도 시스템보다 위로 둘 수 없어야 한다. 특히 회사는 더욱 그러하다. 특정한 개인 한 명의 실력이나 명성, 성과에 의존하는 회사는 위험하다. 오히려 평범할 수 있는 인재들만으로도 훌륭하게 작동되며,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도 빠르게 인력을 대체해서 교육해 업무에 투입할 수 있다면 해당 회사는 위기 대처 능력도 뛰어남을 뜻한다.


모든 연약한 사업체는 개인에 의존한다. 사장의 인맥. 연줄. 몇몇 투자자들의 자본과 입김. 핵심 영업 인력의 영업력 등. 개인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언제나 취약점이 노출된 상태다. 일본전산이 말하는 채용 프로세스부터 업무에 대한 방식을 보며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하나하나의 회사적 결정에 대한 공감이 아니었다. 이 모든 행위가 결과적으로 회사라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며 더 효율적으로 작동될 수 있게 하는가, 없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 대표적으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최상급의 인재만을 원했다. 그 철학은 유효했지만 세상의 모든 기업이 그런 전략을 택할 수 있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바닥부터 시작되어 올라갈 때는 뛰어나지만 거친 사람도 포함될 수 있고, 섬세하지만 무능한 사람도 포함될 수 있다. 학력이 떨어지거나 언어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수학적 해석 능력이 떨어지거나 상식이 떨어질 수도 있다. 회시가 자본이 무한대라면 최고의 인재를 가장 비싼 광고까지 동원해 구하고, 어마어마한 월급과 인센티브를 보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업이 아니다.


나는 사업가로 살아감에 있어서 사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의 말이 크게 공감됐던 부분은 사업가는 직원을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에는 이들의 생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했다는 점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이직이 쉬운 IT 업계에 속해있다 보니 나는 내 회사가 직원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이 업종의 직원들도 동일한 생각으로 근무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이 작을 때나 할 수 있는 작은 생각이었다.


이 회사가 창대하게 성장해 대기업이 되고, 그 과정에서 10년 20년 함께하는 직원들이 있다면 어떨까. 그들은 직원이지만 동시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 싸워온 이들이다. 세상이라는 척박한 곳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밤을 지새우며, 수없이 많은 낮과 밤을 책상과 사무실에서 보냈던 사이다. 이들이 능력이 뛰어나 회사를 나가 이직할 수도 있겠지만 정년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직장인은 이직은 어려워지고 몸은 연약해진다. 반드시 회사가 직원의 모든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정년까지 함께 일할 수 있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면 그 기업은 그 자체로도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 되어있을 것이다.


평범한 기업. 평범한 일자리. 그저 잠깐 머물다 떠날만한 곳. 그런 일자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더라도 회사라는 한 지붕 아래서 각자의 어깨에 짐을 나누어지고 각자의 일을 성실히 해내며 살아가고 싶다. 대표는 대표의 일을 열심히 하고. 직원들은 직원의 일을 열심히 하고. 그렇게 모두가 노력하고 시장의 풍파에서도 살아남아 더 큰 무대에 오를 수 있기 위해선 처음부터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다 큰 성인이 DNA를 바꿔 성격을 개조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의 발전이 없는 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