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7.
서른한 살에 꿈꿔왔던 것들 대부분을 이뤘었다. 그리고 딱히 마음속에 더 큰 욕심이 생기진 않았었다. 그 시점이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공허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운영해야 할 모기업의 자산은 1200억 원에 은행 설립이 이뤄지면 그보다 더 큰 자산이 들어와야 했고 그 사업에서 내 역할은 분명했다. 따뜻한 나라의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평온하면서도 한국의 쌀쌀함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저 여유가 생기면 유럽 곳곳에 별장을 사려고 했다. 정확히는 호텔 소유권이라 할 수 있다. 맨해튼보다 비싼 서울 땅에 투자를 하느니 사업적 목적이나 관광의 목적이나 자산의 헷징 측면이나 모든 면에서 알아봐 둔 유럽의 부동산들이 좋았다. 대서양이 보이는 곳과 지중해를 낀 국가 각각에 두면 참 좋았었겠다 싶었다.
그러나 사람일이란 게 의도대로 되는 건 없었다. 내가 뜻해서 그곳까지 가서 천억 원이 넘는 기업을 다루는 기회를 얻은 것도 아니고 내가 뜻해서 모든 일들이 다 무산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무척이나 공허했다. 세상 모든 일들이.
딜로이트나 PwC나. KPMG나 EY나. 회계사와 컨설턴트 중에서 한 달에 8천만 원씩 받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과 일하다 보면 여러 딜을 진행하게 된다. 광산과 산업단지 사업은 채굴량만 조 단위였고 공장을 통해 만들어질 일자리와 인프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의 서명으로 수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룹사의 총괄 이사로 일한다는 것은 이러한 거대 계약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지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만 해낼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일들은 국제법과 회계 모두 아주 유능한 인물들이 참여해야 하고 함께하는 수많은 사업체의 입장이 통일되어야 한다.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제대로 한다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공허했다. 그 모든 것보다 그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고.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마무리될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건 상당히 불안한 일이다. 스스로 모든 걸 다 해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랬기에 이미 서른한 살의 나는 목적을 잃고 부유하는 배와 같았다. 그때쯤 만난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있었지만 빠졌던 만큼이나 감정도 쉽게 사라졌다.
버킷리스트는 많이 채웠지만 정작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버킷리스트는 전혀 없었다. 가령 내 집 마련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집을 사느니 그 돈으로 수익성 부동산에 투자를 하거나 사업체에 자산을 두어 굴리는 선택을 원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집을 사라던 사람들은 모조리 고점에 물려 지금까지도 단 한 번의 고점 탈출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게 있어서 목표는 언제나 사업과 몇 가지 경험뿐이었다. 사무실을 얻는 것. 직원들과 야유회를 가는 것. 회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 등. 나의 버킷 리스트는 내가 믿는 좋은 회사의 모습 속 찰나와 같은 사진들의 연속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나니 허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꽉 채워 지난 지금. 3년을 채워가는 지금이 되어 내가 가진 버킷 리스트는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대부분의 목표는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달성 난이도다. 달성 난이도가 너무도 높아 수많은 미래 중 아주 소수의 가능성만 도달 가능할 것 같다.
그중 첫 번째는 단 하나의 제품이라도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세계는 고사하고 지역 1위도 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1등을 해봤지만 세계 1위는 다른 수준이니 말이다. 이 목표는 많은 걸 도전적으로 만든다. 그 어떤 제품을 만들더라도 경쟁사를 제치거나 또는 독점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인간으로 살면서 한 번을 달성하기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하고 싶다. 제품 한 줄로 나를 설명하고 싶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OOO을 만든 사람으로.
두 번째는 1/10000에 도달하고 싶다. 만 명 중 한 명. 대한민국에서는 상위 5000등 이내로 살고 싶다. 순자산 상위 9000위가 되려면 현금성 자산 300억 이상이어야 한다고 한다. 5000위는 그보다 거의 몇 배는 높아야 될 듯하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1000억쯤 된다면 5000위는 가뿐히 들어가지 않을까.
그 정도 자본은 한국에서는 만들어내기 어렵다. 한국에 10조 이상되는 부자가 거의 없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려면 세계 최대 시장에서 플레이해야 한다. 더 크고 더 넓은 시장에서 자본으로 플레이한다면 가능하다.
앞서 두 개를 꼭 10년 안에 이루고 싶다. 이유는 10년이 넘어가면 부모님께 이 모습을 못 보여드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44세가 많으시고 어머니는 36세가 많으시다. 내가 40대 중반이면 아버지는 90세쯤 되시고 어머니는 80세가 넘으신다. 어쩌면 10년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빨리 이별할지도 모르기에 나는 10년 전부터 언제든 부모님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살았다.
세 번째는 나를 믿어준 모든 이들에게 곱으로 돌려주고 싶다. 가족은 10배. 내 인생의 형제과 같은 이들은 3배. 다행히도 가족에겐 받은 게 10배씩 돌려줘도 크지는 않다. 나를 믿고 힘들 때 도와준 형제와 같은 이들. 친구들과 동료들. 사업 파트너들. 그들에게는 모두 3배씩 갚고 싶다. 밥도 세 배. 돈도 세 배. 그 어떤 것도 말이다.
만약 그렇게 다 갚고도 풍족하다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위해 쓰고 싶다. 그게 내가 가진 세 가지 버킷 리스트다. 나에겐 달성하기 힘들지만 꼭 달성하고 싶은 세 가지 버킷 리스트가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서 다시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든 큰 상관은 안 하고 싶다. 도착지가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도착할 수 있다.
이 세 개의 버킷 리스트도 달성하게 된다면 그때는 공허함이 아닌 충만함으로 살고 싶다. 원대로 펼치고. 뜻하는 바를 세계에 전할 힘이 생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