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사진 촬영

2025. 5. 17.

by 한상훈

어제는 바쁜 하루였다. 오래간만에 시현하다에 방문해 촬영을 했다. 나름 강의를 하려는데 대표 사진이 하나는 있어야 될 것 같았다. 막상 찍고 나니 제법 만족스러웠다. 작가님이 친절하시기도 했고 지난번과 다르게 예의상 하는 말들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예의상 하는 의미 없는 말들이나 영업 멘트가 늘 싫었다.


비가 오다 보니 신발은 젖었고, 작은 일식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주문을 하려고 하니 팔이 갑자기 차가웠다. 알고 보니 테이블에는 투명한 물이 고여있어서 그걸 못 보고 옷이 젖은 것이다. 일식집은 젊은 분들이 운영하시는 것 같았는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불만족스러웠다. 입구의 문은 불필요하게 무거웠고, 내부의 인테리어는 온갖 스티커로 난잡했다. 종업원은 손님이 들어와도 아는 척도 안 하고 물로 옷이 젖어 좋게 이야기해도 자신들의 실수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머리도 깎고 사진 촬영도 하고. 이제 오늘 낮에 진행할 행사 준비를 하러 서점에 들렀다. 간단한 필기구와 투표에 사용할 종이를 찾기 위함이었다. 서점에 들어설 때는 비가 많이 와서 우산을 비닐 커버에 넣어서 들어가야 했다. 내 앞에는 여자 2명이 한참을 우산을 넣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서도 비닐에 우산 넣는 것도 못하고 엉망으로 우산을 접어 눈치를 보며 들어갔다. 정작 기다리던 할머니는 금방 하셨다.


서점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비가 온 것도 있고 어제 새벽까지 마신 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자주 가던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님은 자기 매장을 차린다고 하셨다. 축하해 드렸다. 위치는 확정하지 못했는데 용산으로 갈 것 같다고 하셨다. 미용실을 꾸준히 다녀본 게 별로 없는데 이곳은 벌써 몇 년째다보니 서울 어디에 만들던 방문을 할 것 같았다. 이 분한테 머리를 맡긴 게 벌써 5년쯤 됐으려나.


마스터 클래스 강의를 준비하면서 아직까지 일했거나 연관된 회사들 목록을 정리해 보았다. 꽤 많았지만 한 편으로는 적을 가치가 없는 회사도 많았다. 하나하나 적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빼야 할 곳들도 있었고, 이 정도면 넣어도 되겠다 싶어서 넣은 회사도 있었다. 작던 크던 인연은 인연이니 말이다.


나는 링크드인을 보면 거대한 학교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학교에서는 규칙을 지켜서만 행동해야 한다. 가령 수업시간엔 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하고, 복도에서 뛰어다니면 혼이 나는 것 말이다. 학교에서의 위계질서는 성적이 좋거나 인기가 좋거나 힘이 세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정도로 정해진다. 링크드인도 비슷하다. 내용을 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쓸만한 내용이 아닌 것들도 경우에 따라선 수십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는다. 좋아요라는 게 그런 의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좋아서 좋아요가 아니라 수준이 떨어지는 무례한 게시글도 그것을 좋다고 하는 인간들이 있는 법이고, 거기에 껍데기 좋은 회사 간판까지 있으면 대단한 유세라도 얻는 것처럼 말하는 법이다.


지난 수년간 난다 긴다 하는 회사의 고위급들하고 일을 해봤지만 태반이 병신들이었기에 간판만 가진 인간에 대해서는 존경심이 거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해봤자 자신들이 정한 약속도 지키지 못해서 빌빌 거리고 있는 꼴을 보면 그들이 어느 정도 책임까지 질 수 있는 남자인지 뻔히 보이는 법이다. 많은 돈과 사회적 명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현혹하기에 매력적이겠지만 정작 그것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인간인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세상엔 그저 운 좋게 태어나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도 있고 하는 것마다 잘 안돼서 절벽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고생을 한다고 해도 바로 옆 중국의 태반의 젊은이가 겪는 압도적 취업 문제나 극단적으로 망가진 사회의 모습보다는 낫고, 그렇게 형편없는 국가여도 바로 위 북한 보다는 나은 삶을 산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고. 지하실 밑에 지하실이 또 있고.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으나 그저 운이 좋아 그 자리에 간 사람들도 있고. 잘한 거라곤 태어난 것뿐인 인간들도 있고.


평범한 길을 추구하는 것은 생존에 확실히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평범한 길. 아주 보편적인 길. 가장 다수가 택했으니 망하더라도 망하는 한도가 정해져 있는 길. 반면 남들과 다른 길을 간 사람들은 애초부터 다른 길을 걸어왔기에 규격에 맞추면 오히려 힘을 잃는 것만 같다. 나는 토익, 텝스 점수 없이, 학점이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아왔다. 아무 의미도 없는 점수로 기업이 사람을 뽑고 있을 때 나는 내 방식대로 영어도 배우고,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도 해왔고, 일도 따내왔으니. 정해진 방식으로 사는 방법 밖에 모르는 입장에선 규격 외의 인간은 당혹스러운 캐릭터일 것이다. 근데 우스운 일 아닌가. 원래 세상은 규칙대로 안 간 사람들이 다 꼭대기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좋은 증권사 때려치우고 온라인 서점 차린 제프 베조스. 대학 중퇴한 빌 게이츠나 잡스. 다 규격대로 살아가지 않고 인생의 급커브로 살아간 사람들이다. 엘리트 코스의 꽁무니나 쫓으며 단 한 번도 신념을 위해서나 도전이나 희생을 해본 적도 없는 놈들이 하는 말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이지만 함께 무언가를 할 때는 언제나 누군가는 여러 형태로 조금은 희생해야 한다. 더 큰 사람이 더 많이 희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그들이 알기는 알까.


나름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오늘을 살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건 첫 술에 배부르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했던 외주 작업은 꽤 재밌었지만 돈 300만 원도 못 받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업이 쌓이면서 모든 일들이 시작됐던 것을 보면 어떻게든 첫 고객을 만들고, 선순환을 굴릴 수만 있다면, 세상에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일들. 사람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업이 되고, 장기가 되고,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일이 된다.


미인은 집 안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좋은 향이 나는 곳은 발길이 멈추는 법이다. 달콤한 향기와 부드러운 감촉, 아름다운 외형 등 인간이라는 동물을 매혹시킬 전략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합리적이기보단 매우 감성적인 존재니까. 매우 감성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성으로는 거부해야 할 일도 도전하거나 실행해서 성공을 쟁취하기도 하고 더 크게 실패도 하는 법 아닐까.


인간의 본질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태풍이 치는 바다를 향해 분노하는 것과 닮아 있었다. 현명한 선장이라면 태풍이 치는 바다에 들어가지도 않거니와 태풍을 만나도 대화가 불가능한 바다를 두고 화풀이를 하기보단 해결책을 찾는 게 이성적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본성대로 두되 요동치는 바다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타서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통찰이 쌓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도, 기회를 놓쳐 위기로 만드는 것도. 강력한 바람을 앞으로 나아가는데 쓸지, 바람과 싸우다 돛이 부러질지도. 모두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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