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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붉은 말과 황금 검

2025. 7. 14.

by 한상훈

강남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은 몇 개 없다. GFC나 메리츠 타워, GT타워, 포스코타워 그리고 교보타워가 있다.


이틀 전 꿈에서 나는 3명의 남자와 함께 교보타워 꼭대기 층에서 있었다. 나를 포함해 4명의 남자가 모인 그곳에서 강남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민국 1000대 기업에 들어가게 됐다며 축하를 나눴다. 나를 제외한 3명의 임원은 내 회사에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았다. 아마도 그렇겠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해도 모두가 생각하는 바는 다른 법이니.


꿈에서 깨어나 대한민국의 1000대 기업에 들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찾아보았다. 예전 자료를 기준으로 해도 연 매출액 5천억은 넘겨야 했다. 매출액 5천억. 한 달에 400억 이상 매출을 발생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1000대 기업에 들어간다는 게 그런 거였군.' 하며 꿈에서 나온 3명의 남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보나 마나 그 테이블에 있는 사람쯤이라면 컨설팅 그룹 출신의 보드 멤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매킨지나 보스턴 컨설팅 그룹 같은 곳의 사람들이 필요하겠지. 나는 그쪽 일보다는 기술에 미친 사람이니 말이다.


주말 강의를 마치고 곰곰이 지난 몇 주간 정리한 내용을 생각해 보았다. 계획에 빈틈이 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떠한 계획이든 시간차를 두고 검토하게 되면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기 쉽다. 마치 뜨거울 때 간을 보면 소금을 과하게 넣게 되는 것처럼. 머리가 뜨겁게, 가슴이 쿵쾅거리며 계획을 세우면 모든 게 완전해 보이지만, 실제 계획은 차가운 냉수 속을 지나가야 하는 긴 여정에 가깝다. 이성을 찾고 계획을 검토하기 위해선 충분히 생각을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열정을 식혀두는 것이다.


변화에 집중해야 했다. 처음부터 완전하게 대중을 향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주 작은 세그먼트에서 시작해 사용성을 넓힌다. 저커버그가 말한 '베타성'과 일치한다. 고객에 '베타성'을 두고 특별한 이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제품이 커지고 커지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잡아보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부유하는 생각을 내던지고 새로운 생각을 잡기 위해 애쓴다. 보잘것없는 것을 아무리 개선하려고 해 봐야 여전히 보잘것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만든 것을 다 버릴 각오를 하면서 살아왔기에 버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2년 가까이 시간을 쏟은 소스코드를 아무 의미 없이 버린다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꽤 마음 아픈 일이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몇 번이고 거치며 무던해질 수 있었다.


시대를 예측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국 기회와 능력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중 능력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무기지만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미정의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미정의 이벤트에 준비되지 않은 옷을 입고 등장해선 안 되겠지. 기회를 잡기 위해 나를 만드는 작업에 시간을 써야겠지.


나를 만드는 과정은 특별히 어렵지 않은 것 같다. 힘든 선택을 의식적으로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하고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을 즐기게 된다. 재밌는 일이다. 운동에 중독된 사람들이 처음부터 운동에 중독된 건 아니었다. 그들도 운동을 그만할까 고민하던 날들이 있었지만, 그걸 넘고 나니 그 단계에 간 것이다.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은 오랜 기간 한 길을 판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반복활동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발전을 큰 고통 없이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건 임계점을 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내가 가진 새로운 특성들이 해금되는 것처럼 열리게 된다. 운동을 전혀 해본 적 없는 이가 운동을 하게 되면 성격도 마인드도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공부로 승리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공부로 승리해 보기 시작하면 공부에 대한 생각도 공부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사람은 승리를 통해 변화하고, 승리를 거머쥐기 전까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 승리가 원동력이 되어 원래는 힘들었던 과정도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 눈앞에 더 큰 보상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다른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보상이 눈앞에 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눈을 뜨던 감던 목표가 보이게 된다. 나에게도 그렇다. 내 눈앞에는 선명한 성공이 아른거렸다.


'계획을 세우는 이는 인간이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주'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계획에 연연하지는 않으나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이루기 위해 계속 애쓴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비전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환상처럼 나를 괴롭게 하고, 연인을 대하듯 사랑하게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에게 맡겨진 일에 헌신하는 것. 처음과 끝까지 목표를 놓치지 않는 일.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 그것이 뜻을 따르는 이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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