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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엘리야

2025. 7. 15.

by 한상훈

열왕기상 19장 4절에서 엘리야는 여호와께 죽기를 간청한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그가 이 말을 했을 때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해 승리한 후였다. 바알을 따르는 선지자 450명이 그 자리에서 불로 죽어 엘리야가 따르는 신이 진정한 신임이 증명됐으나 바알을 따르는 이세벨 여왕은 여호와를 따르기보다 엘리야를 죽이라 명령했다.


엘리야는 거듭된 좌절과 아무리 많은 기적을 신이 보여줌에도 바뀌지 않는 왕과 사람들을 보며 좌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여호와께 죽기를 간청한다. 지금 죽여달라고.




나는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도 아니며 예언자도 아니다. 그러나 내 삶은 무척이나 지쳐있었고 황망했다. 그게 언제였을까. 벌써 3달쯤 전인 것 같다. 4월 어느 날, 늦은 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나를 죽여달라고. 전능한 힘이 있는 신이 있다면 제발 나를 그만 살게 해달라고.


괴로움 속에서 죽기를 간구했으나 나는 죽지 못했다. 신은 내게 뭔가 시킬 일이 많이도 남았나 보다. 그 후로 나는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 속에서 살게 됐다. 마치 내 안에 다른 사람이 와서 사는 것처럼 바뀐 날들이 시작됐다. 이전과 달리 더러운 것을 보기 싫어졌다. 집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치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닦고 또 닦고. 신이 머물기 위해선 깨끗하고 거룩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었던가. 내가 머무는 곳을 더럽게 둘 수가 없었다.


쉼 없이 모든 것을 청소하고 나면 그다음 또 다른 곳이 보였다. 집 안의 가구와 냉장고, 안 쓰던 물건들, 창과 창틀, 화장실의 온갖 곳들까지도. 침대를 옮기고, 옷장도 옮기고, 모든 게 깨끗해질 때까지 계속 닦아냈다. 자리만 차지하던 온갖 골동품들과 전자기기를 버렸다. 낡은 옷은 버리고, 조금이라도 오염된 부분이 있다면 깨끗이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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