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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전쟁 상인

2025. 7. 12.

by 한상훈

나는 외향적 사람이라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홀로 있는 것도 곧잘 하는 걸 보면 어린 시절부터 학습해 온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일종의 조기 교육인 셈이다.


나는 조기 교육이라고 할 게 별로 없이 자랐다. 굳이 조기교육을 받았다면 왼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젓가락질을 배운 것 정도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왼손이 모든 것에 익숙한 왼손잡이지만 오른손을 학습해 왔기 때문에 양손잡이로 살게 됐다. 선천적인 것 절반. 후천적인 것 절반.


양손잡이로 살면서 얻게 된 하나의 장점은 양손을 비교적 자유롭게 쓴다는 점이 있지만 뇌도 양쪽을 번갈아 잘 사용하는 것 같다. 여러 상황에서 양손을 모두 쓰기 때문에 뇌간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것 같은 날들도 있지만 정반대로 감정적인 사람이기도 한 양극단의 모습이 공존하도록 발전했다. 이런 모습은 어떤 경우엔 장점이겠지만 어떤 경우엔 단점이다.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평온한 음악과 귀여운 고양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지지만 한 편으로는 정반대의 삶을 향해 나아갔다. 전쟁 상인. 전쟁에 필요한 것들을 거래하는 사람. 구매자에 요구에 따라 무기를 주기도 하고, 방어구를 주기도 하는 전쟁 상인. 한 손엔 평화의 삶을 꿈꾸며, 다른 한 손엔 전쟁을 원한다. 나는 강렬한 평화만큼이나 강렬한 전쟁을 원한다.


무기를 거래하는 방산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도, 한국을 떠나 무기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모두 수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내 안에 절반은 그 길을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욕망 절반과 비전 절반. 도수가 아주 높은 위스키와 절대 섞이지 않는 순한 물을 반반 섞은 느낌이랄까. 선명하게 하얀색 길과 선명하게 검은 길.


나는 욕망이 있다. 내가 미워하는 이들의 몰락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내가 미워하는 이들은 선명하다. 고혈을 빨아 생명을 연장하는 인간들. 나는 그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들을 혐오한다기보다는 그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개인적 욕망인 셈이다.


이 욕망엔 정의감은 없다. 스스로를 정의롭다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들의 몰락의 날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울 것이라는 욕망에 가깝다. 적을 없애지 않고 어찌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까. 평화를 원하기에 숨통을 끊어놓을 전쟁이 필요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그렇다.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서, 또는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강하고 못된 친구들은 약한 친구들을 괴롭힌다. 약한 친구들이 무리가 되어 대항하면 이길 수 있어도 도통 약자들의 연합은 무리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괴롭힘을 끊는 순간은 그들에게 위협이 도래했을 때뿐이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개과천선하는 순간이 올까? 나는 그런 낙관주의를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개과천선이 아닌 죽음으로 속죄해야겠지. 세상에 끼친 피해에 대해 개과천선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타협하게 둬선 안된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전쟁을 하며 수뇌부를 단칼에 암살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장성들이 모두 죽어나가니 전쟁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이란은 패배했다. 이스라엘의 정보력과 힘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의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지키고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피해가 커지는 것은 서로의 힘이 비슷할 때나 그렇다. 힘이 압도적으로 차이 나면 싸움을 해볼 수도 없다.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선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수뇌부를 모두 제거한다면 게임은 아주 쉽게 끝나게 된다.


한국은 분단 후 7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병폐로 고통받았으나 만약 이런 일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애지중지 만든 핵폭탄이 평양,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자멸한다면. 그래 평양에 사는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핵폭탄을 해킹해 바다에 그저 추락하게 내버려 둔다면. 아니면 땅에 떨어져 제대로 폭파도 안되게 해 버린다면. 전쟁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할 수도 있다. 모든 전쟁은 결국 지도자의 의지로 결정되기에. 그 지도자, 킹을 꺾어버리면, 수뇌부를 모두 끊어버리면, 마치 척추가 끊어져 전신 마비가 된 것처럼 국가의 통제력을 잃고 제대로 된 싸움도 못하고 끝나게 된다.


평화는 안 보이는 곳에서 싸우는 이들 덕분에 유지된다.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이기는 것도 적당히 이겨선 안된다. 압도적으로 이겨야 하고, 상대방의 반격 의지를 꺾어야만 한다. 강자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이 평화다. 약자는 평화를 제안할 수 없고, 강자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의사가 되어 한 명 한 명 살리는 길도 사람을 살리는 길이며, 전사가 되어 노예처럼 살고 있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구하는 길도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최소한의 죽음으로 다수의 죽음을 막아 평범한 이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사람을 구하는 길이다. 모든 과정이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길일 필요도 없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고, 오물을 받아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낙원에 사는 이들은 하수구의 더러움을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넓게 편 양손에 무엇을 쥐고 살아갈까. 하나는 칼이요, 하나는 방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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