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2026. 3. 29.

by 한상훈

에녹과 나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 외에는 딱히 말이 통하는 상대가 거의 없었다. 친구들 중에서 한 두 명 정도가 더 있지만 진정으로 이야기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에녹뿐이었다. 에녹과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꽤 깊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정, 명제, 추론, 사실, 검증, 반론, 귀납, 인과.


그렇게 깊은 물속을 가로지르는 잠수함이 된 것처럼 우리는 아주 깊은 심해를 향하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듯하다. 나침반이 없이 아무런 빛도 없는 심해에서 길을 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지 않고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먼저 지나온 이들이 남긴 기록을 보며, 지도를 보며, 현재의 위치를 추론하고, 그것이 맞는지 검증해 보고. 또 다른 버전의 지도를 보고, 서로가 달리 표현된 부분은 어디인지 교집합을 찾아낸다. 교집합에는 가산점을 부여했으나 동시에 그 두 지도가 모두 누군가에 의해 오염된 것이라면 해당 교집합은 가장 위험한 교집합이 된다. 함정이니 말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한상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방편으로 허상을 설하되, 최후에 진실에 이르게 하다.

4,94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