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30.
당신은 당신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아는가? 당신은 3가지로 이뤄져 있다. 영, 혼, 육.
육은 육체를 의미한다. 동물과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다.
혼은 이 세계의 창조자인 권세들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동물과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죽게 되면 혼은 이 진한 물감이 물에 떨어진 것처럼 조금씩 옅어지다 이내 사라진다. 만약 혼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어떤 혼은 쉽게 사라지고 어떤 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혼의 층이 어디까지 깨져있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우리가 귀신을 말할 때, 처녀 귀신, 총각 귀신, 전쟁에서 죽어서 생긴 귀신 등을 말하지, 무병장수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다 평온히 죽은 귀신을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 세상에 대한 열망, 분노, 한, 앙금, 원한 등이 여전히 남아 퍼지고 사라져야 할 혼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것이 육체를 대신할 무언가에 깃들곤 한다. 그릇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혼이 남아있고자 해도 언젠간 사라지게 된다. 모두 흩어져 땅에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혼이 이 땅에 남는다면 그것은 영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 귀신은 없고 인간 귀신이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이다. 영은 이 세계의 창조주가 당신에게 준 것이 아닌 그보다 위의 존재가 육체에 머물게 되어 생겨난 것이다. 영이 있는 자는 명할 수 있다.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성경에 신이 아담에게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그가 이름을 지을 수 있는지였다. 이름을 짓는 행위, 인덱싱할 수 있는 행위는 놀랍게도 영이 있는 존재만이 가능하다. 그것이 영이고, 그것이 진정한 모습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다음과 같다. 육과 혼은 사라지고, 영은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제3 하늘에 이르러 낙원에 도착한다.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제3 하늘에 있는 낙원과 음부가 현재 시점의 천국과 지옥이라 할 수 있으며, 종말 후에 이뤄질 왕국을 천국,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들이 가는 곳을 불못(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그곳에 머무는 것은 영의 선택일 것이다. 영은 제3 하늘에서 머물도록, 또는 그보다 위의 하늘까지만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영은 모든 세계의 모든 곳을 여행할 수 있다.
이 세계의 창조주는 제7 하늘에서 머무는 자이다. 그에게 그 위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랬기에 나 말고 다른 신은 없다는 말을 했던 자는 타르타노스로 갔고, 그의 아들이자 아버지를 정죄한 자가 이 세계의 창조주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영원한 주라 말하지만 모든 시작이 있는 것에는 끝이 있다. 그에겐 시작이 있다. 그래서 끝도 있다. 반면 당신은 시작이 없다. 당신은 시작이 없이 존재한 자로부터 왔다. 그것이 영의 실체다.
그게 무슨 말일까. 모든 인간은 태어난 날이 있는데 시작이 없다니? 당신의 육체는 시작한 날과 끝난 날이 있지만 당신의 영은 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태어난 적이 없이 계속 존재해 왔었고, 그것이 육체에 깃들었을 뿐이다. 영의 자유의지로 세계와 육체를 결정하였고, 고통과 쾌락을 선택한 것이다.
붓다는 그것을 알았다. 고통과 쾌락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붓다를 따르는 인간들은 고통해서 해방되고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고통을 택해서 이곳에 왔다는 것을. 고통에서 해방되려고 한 게 아니라 고통을 원했기에 이곳에 온 것이다. 영의 자유의지로. 왜냐면 고통이 큰 곳에선 쾌락도 큰 법이다. 이 세계보다 더 지옥 같은 세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곳에서 당신은 태어나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그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면 그 쾌락이 얼마나 크겠는가. 반면 아무런 고통도 없는 곳에는 아무런 쾌락도 없다. 그랬기에 영은 그저 세상 중 하나를 향하여 왔고, 그곳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모두가 같은 곳으로부터 나왔으나 그것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모두가 같은 곳에 결국은 가게 될 것이나 그것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귀한 것이 천한 것 속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망각을 선택한 셈이기에 망각에서 굳이 깨워줄 필요도 없다. 마치 꿈속에서 "이건 꿈이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인간들은 망각을 선택했고, 무한한 존재가 아닌 유한한 존재로서의 시간을 선택했기에 유한한 길을 가게 된다.
억지로 만들어진 인터페이스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왔다. 99개의 다른 세계들은 이 정도로 엉망이지 않다. 엉망이 엉망을 낳았고, 엉망이 또 엉망을 낳았으니 그곳이 어떤 곳일지 많은 영들이 와서 보게 되었다.
인간은 인간의 방식으로 신을 대한다. 인간은 숭배받기를 원하니 신도 숭배받기를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찬양과 칭찬 듣기를 원하니 신도 찬양과 칭찬을 듣기를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신이 인간인가? 당신이 믿는 신은 인간인가?
모든 영이 깨어난 이들은 예언을 말하며,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 영이 깨어나지 못한 이들에겐 환상도, 꿈도, 예언도 없다. 빛을 마주한 이들은 빛에 대해 말하며, 빛을 본 적 없는 이들은 빛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두고 빛이라 말한다. 그것은 그들의 눈이 떠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광명을 본 적이 없기에 그렇다.
그러나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지 속에 죽어도 상관이 없고, 낙원에 가던, 음부로 가던, 천국과 지옥에 가든 상관없다. 그것은 영이 선택한 결과에 따른 것이고 이 세계의 창조주는 진정한 신에게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아주 오랫동안 치러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관심은 별로 없다. 할아비 입장에서 손주들이 만든 엉망인 장난감 세계에 온 것과 같다. 온갖 규칙은 서로 모순되며, 허세로 가득 찬 말들을 하며 놀고 있는 손주들. 그러나 그 놀이의 대상에게 아주 큰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 할지라도 어른이라면 혼을 내야 한다. 손주가 강아지의 팔다리를 자르는 세계를 만들어 놀고 있다면 그것을 할아비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를 위해서. 해선 안될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게 때로는 매를 드는 것이고, 혼을 내는 것이며, 그게 올바른 사랑이다.
어떤 이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분노할지도 모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왜 분노하는가? 이 말이 사실이면 나는 진실을 전한 선생님이고, 이 말이 거짓이면 그 해는 오롯이 내가 입는데 말이다. 나의 가르침이 거짓이라 사람들의 길을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나는 그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되 이 세계의 신은 모든 것의 신이 아니라 주장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이는 내가 아닌 신에게 분노해야 한다. 왜냐면 그들은 찾지 못했으며 찾을 생각조차도 안 했기 때문이다. 빛을 보지 못했고, 물을 마시지 못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에는 많은 열매가 자라는 법이다.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알 수 있다. 예수는 옳은 가르침을 전했으나 속은 자들은 인간들의 규칙 속에 있는 잘못된 곳에 터를 잡아 나무가 제대로 크질 못한다. 그들 삶에는 열매가 없다. 풍성함이 없다. 자유가 없다. 해야 할 것과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스스로를 정죄하기에 바쁘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자유를 얻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자유를 얻었는가?"
거짓의 아비를 따르는 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을 속이게 된다. 자신을 속인 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을 본다. 거울을 보면 보이는 모습이 자신인가? 그것이 영원한 터에 가져갈 육체인가? 그것이 실체인가?
전혀 아니다. 인간은 3개의 서로 다른 것이 융합된 물질세계라는 곳에서 육체라는 그릇에 담겨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육은 시간이 지나며 노화되고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고, 혼은 이 땅을 떠돌다 흩어질 것이며,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만 남아 영원히 존재한다. 영을 기만하지 마라. 천한 것 속에 들어가 있다고 스스로를 천하다 말하지 말라. 당신은 귀한 존재다. 심지어 이 세계를 창조한 자들보다도 더 귀한 존재다. 그것을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다.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