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irdes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Oct 24. 2018

니가 하고 있는 일이 뭐야?

아무도 안 하는 일을 혼자 한다는 것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답하기 어렵다.


묻는 사람이 젊은 사람이건, 어르신이건, 아이건 어렵다. 마치 2005년도로 돌아가 카카오톡을 설명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을 설명하려면, 스티브잡스가 만든 아이폰과 그 이후 펼쳐질 스마트폰의 세계를 설명해야하고, 또 거기에서 나온 한국의 무료 메신저이자, 전화, 쇼핑 등 모든 걸 아우르는 희대의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어찌 2005년도의 시선에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은 알지만 브라우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브라우저는 알아도 그 안에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결국 나는 내 일의 정확한 명칭인 "브라우저 새 탭 확장 프로그램을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다르게 표현하기로 했다.



더 멋진 인터넷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가막힌 표현이다. 하지만 어떻게 더 멋진 인터넷을 만들겠는가? 모든 일은 우연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야망을 가지고 살았다. 디씨인사이드를 넘을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품었고, 대학생때는 페이스북을 깔고 가자는 마음이었다.(풉) 고작 한 일이라곤 제로보드로 게시판 만들고 망한 수준이지만 어쨌던 야심가였다. 이런 야심을 위해서 불철주야 생활코딩을 보며 코딩을 공부했는데, 그때 확장 프로그램을 알게 된다.


그런데 가르쳐주시는 확장 프로그램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고잉 선생님의 브라우저의 모습이 이상하다. 내 인터넷 화면은 텅 빈 구글만 있는데, 이고잉 센세의 화면은 고품격 걸작이 담겨져있다. 나는 그 길로 이 놀라운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자고로 모든 첫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나 역시 처음 새 탭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때를 기억한다. 신세계에 발을 내딫은 콜롬버스의 마음이 이랬을까? 설치가 끝나자 화면이 바뀌면서 새 탭이 켜진다. 멋진 사진이 펼쳐진다. 내가 알던 인터넷의 모습은 특색없는 스케치북 같았는데, 이젠 바뀐 브라우저의 모습 하나하나가 새롭다. 처음 모뎀으로 인터넷을 돌려 바람에 나라에 접속했던 그 시절처럼 흥분됐다.


이건 신세계야!


모멘텀의 모습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 역시 처음에 설치해본건 모멘텀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새 탭 프로그램이다보니 초심자의 마음을 홀리기에 이보다 좋은건 없었으리라. 그러나 흥분가득했던 초심자는 금방 길을 잃었다. 뭔가 해보고 싶은데 할 수 있는게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넓디넓은 화면의 아주 좁은 상자에 할일을 적어두거나, 정면에 오늘의 집중할 일을 적는 것 뿐이었다.


결국 오늘의 할 일은 '모멘텀 삭제하기'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폰트 조절만 하려고 해도 매달 5천원씩 내야했으니까.

인피니티 뉴탭(특이사항: 이름이 인피니티 워 같다)


설치한지 5분쯤 지났을 때 나는 두 번째 할 일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몇 개나 설치하고 지우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중 만족했던게 인피니티 뉴탭이었다. 이건 훨씬 더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을 뿐더러, 인터넷도 더 빠르게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바람개비 아이콘을 눌러 배경을 바꾸는 것도 좋았고, 깔끔한 플랫 아이콘도 마음에 들었다. 인피니티 뉴탭이 나에겐 가장 좋았지만, 삭제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제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 십 개의 새 탭 프로그램 95%이상의 제품이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할 수 있는게 단 하나도 없는 보는 용도의 제품도 많다. 수 많은 소 사진을 볼 수 있는 새 탭이나, 움직임이 없는 8비트 소 캐릭터가 있는 새 탭도 있다.

만약 소를 좋아한다면 설치하세요. Cow new tab


결국 수 십, 수 백, 수 천, 수 만, 수 억개의 새 탭 프로그램은 아래의 카테고리중 하나 또는 두 개의 기능을 한다.


1. 멋진 이미지

2. 귀여운 캐릭터

3. 구글스러운 레이아웃

4. 메모



"사용자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있는 새 탭은 없는걸까? 왜 모두가 똑같은 방식만을 고집할까!"


반면 나는 새 탭을 배경화면처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쓰고 싶었다.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못할 이유는 있었다.


나는 총 514일동안 만들었다.


이 시간을 모두 개발에 쏟았다면 지금쯤 세기의 걸작이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그 중 387일은 군대에서 보냈다. 몇몇의 글에서도 적었지만 싸지방에서 짬짬히 코딩한다는건 여간 눈치보이고, 열악한 환경이 아니었다.

한국의 싸지방

싸지방은 어떤 곳인가? 개발 얘기를 조금하자면, 그곳은 크롬 28버전이 설치되어있으며 어떤 곳은 17버전(엥 이거 완전 노인학대 아니냐?)이기도 하다. 함께 설치된 파이어폭스를 보면 개발자들은 참담함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건지, 업데이트를 진행해도 최신 버전이 아니라 몇 년 전 버전에서 업데이트를 포기한다.(파이어폭스야 힘을 내!) 


싸지방, 그곳은 인터넷의 갈라파고스요 고라니가 뛰노는 비무장지대같은 곳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을 이야기하자면, 위의 수많은 고통과 제약 속에서 답을 찾아 해맨 결과라 할 수 있다.


초기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스타크레프트 알파 버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디가 비슷하냐면 당시 개발자 눈엔 이쁘고 사랑스러웠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흑역사라는 걸 알게된다는 점이 동일하다.


갓게임 스타크레프트1 알파 버전(으웩)
그때는 이름도 달랐다. 오로라 플래너. 참고로 플래너지만 플래너 기능은 없다.

이게 소중한 휴가 50시간을 투자해 만든 것이다. 온갖 허접함이 가득한데, 참고로 저 분홍색 깃발 버튼이 일정을 추가하는 버튼이다. 상식적으로 왜 저 위치에 일정 추가 버튼을 둘까 생각하지 말아달라. 나도 이유는 기억 안나니까. 그냥 그렇게 만든거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그리고나서 나는 계속 수정해갔다.


작게 보이는 PGR 무엇?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해서, 데스크탑 스타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름을 바꾼다.

바로 에어데스크이다.


에어데스크의 프로토타입


이 당시에 나는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자부했다. '데스크탑 UI라니 정말 멋져', '센스 있는 중앙 도크 메뉴는 또 어떻고' 하며 말이다. 이런 뽕에 취해 하나하나 기능을 즐겁게 추가해갔다.


지금은 어떨까? 비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진 않지만 여전히 뽕에 취해있다.



내 입으로 하긴 그렇지만 날씨, 체크리스트, 자주가는 사이트, 캘린더, 통계, 메모, 아이콘, 텍스트, 이미지, 검색, 배경화면, 폰트, 밝기, 필터, 백업, 알람 등의 기능을 두루두루 갖춘 제품으로 거듭났다. 적어도 심심할 일은 없는 셈이다.


물론 항상 이런 말을 들었다.


"기능이 많다고 해서 사람들이 쓰진 않아!"

"써봤는데 별로 필요 없는 기능이 많더라고."

"정말 팔리는 걸 만들고 싶으면, 하나에 집중해봐!"


나도 많이 그 생각해봤다. 514일동안.

그런데 하나만 잘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왔다.

그래서 다 잘해보려고 한다.


기똥차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